[윤용진의 귀촌일기 118]
“에고~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막 캐어낸 생강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처음부터 싹수가 노래보이긴 했어도 이정도 망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생강이 원래 발아가 늦은 작물이지만 심은 지 석 달 만에 비로소 가냘픈 줄기 몇 개가 보였으니, 올해 생강농사는 폭삭 망했음을 진즉에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마땅한 대처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일할 의욕도 잃었던 것 같다. 한여름의 타들어가는 뜨거운 햇빛 아래서 뭔들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나부터 하루 종일 에어컨 튼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을. 봄에 꿈만 야무지게 꾸었지 막상 농사에 필요한 조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올해 뽑아놓은 생강 줄기. 생강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윤용진
예전에는 생강을 심으면 꼭 볏짚을 구해서 덮어주곤 했다. 볏짚을 덮어주면 습기도 유지되고 온도도 적당히 조절되니 발아가 잘 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땅히 볏짚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추수가 끝나면 사람들은 볏짚을 사료로 쓰려고 둥글게 말아 놓았다. 나는 볏짚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커다란 볏짚뭉치를 살 수도 없고. (겨울이면 들판에 뒹구는 커다란 공룡 알이 바로 볏짚뭉치다)
볏짚이 없으니 차선책으로 검은 비닐을 씌우고 생강을 심었는데, 올해는 유난히도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가뜩이나 뜨거운 햇빛에 검은 비닐 속은 펄펄 끓었을 것 같다. 그늘이 지도록 차광막이라도 쳐 줬어야 했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생강 때문에 차광막까지 살 수는 없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서리한번 맞더니 생강 잎이 하얗게 시들어버렸다. ©윤용진
그런데 정말 뜨거운 햇빛에 데었는지 8월이 되어도 싹이 몇 개 나오지도 않았다. 더구나 겨우 나온 싹들도 뒤늦게 쏟아진 비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때쯤이면 누가 봐도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망했네, 생강이 저 모양이니 어디 제대로 수확이나 하겠어?” 나 역시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씨눈이 일부 살았는지 날씨가 시원해지자 느지막하게 새순들이 몇 개 더 나오긴 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생강이 커지기에는 너무 늦었다.
서리가 한 번 내리더니 생강 잎들이 하얗게 시들어버렸다. 더 기다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수확을 해야겠다. 뭐, 수확이랄 것도 없다. 쇠 포크로 몇 번 땅을 파기만 하면 끝이니까. 10분도 안 돼 생강 수확을 끝냈다. 양이 적으니 일은 빨라서 좋다. 수확한 생강의 무게를 재어보니 6kg이 조금 넘는다. 생강을 심은 이래로 가장 적은 수확량이다. 몇 년 전에는 생강 400g 심어 22kg까지 수확해 봤는데, 올해는 1kg 심어 6kg 수확이라니! 아무래도 내년에는 차광막이라도 사서 쳐 줘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그 정도면 우리 식구 일 년 먹을 건 돼. 작년에 수확한 생강도 아직 남았거든!” 그나마 다행이다.
생강 1kg 심어 6kg 조금 넘게 수확을 했으니 일 년 농사 망한 셈이다. ©윤용진
반면에 김장배추를 심을 때는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김장배추는 우리식구 일 년 내내 먹어야 할 소중한 음식이니까. 배추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거금을 투자할 용의도 있다. 배추 모종을 심는 8월 말에도 무더위가 계속되자, 배추 밭에 씌어줄 한랭사까지 미리 구입했으니까 말이다.
남들은 뜨거운 햇빛에 배추모종이 죽어 두 세 차례나 보식(식물이 죽거나 상한 자리에 보충하여 심음)을 했다는데, 우리 집은 거의 죽은 모종도 없이 한 번에 끝냈다. 나중에 보니 보식으로 시기를 놓친 이웃집보다 우리 집 배추가 두 배는 더 커 보이기도 했다. “역시 한랭사를 씌어주길 잘한 것 같아!” 돈 몇 푼 아끼려다 농사를 망치느니, 차라리 투자를 좀 하는 게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비가 온 게 아니고 거의 20일은 계속 내린 것 같다. 물이 마를 시간도 없이 계속 비가 쏟아지니 이번에는 무름병이 나타났다. 물 빠짐이 좋은 우리 집 틀 밭에도 무름병이 나타난 것을 보면, 틀림없이 다른 분들 배추밭에도 무름병이 많이 나타났을 것 같다.
초기에 배추는 죽은 것도 없이 잘 자랐다. 남들보다 거의 두 배 크기였다. ©윤용진
일단 무름병이 나타나면 치료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무름병 증세가 보이는 배추는 재빨리 뽑아버리고 더 이상 병이 퍼지지 않도록 관리해 주는 게 최선이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비에 녹아내린 배추 아래 잎들을 떼어내고, 무름병 약도 뿌려주었다.
겨우 무름병이 잡혔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점무늬병이 발생했다. 그간 배추농사 지으며 점무늬병이 발생하긴 처음이인데, 병명도 챗GPT를 통해 알게 됐다. 챗GPT에게 병든 배추사진을 찍어 보여줬다. “이건 배추 세균성 점무늬병 증상과 아주 비슷합니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왔나요?” 와, 똑똑하네!
하지만 이미 배춧속이 차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은 살균제를 뿌려줄 수도 없다. 건강한 채소를 먹자고 짓는 텃밭농사인데, 늦게까지 농약을 뿌려줄 거면 뭐 하러 힘들여 농사를 짓겠는가 말이다. 결국 농약은 포기하고 비싼 친환경 살균제를 사서 뿌려주었다. 또 잎이 튼튼해지라고 칼슘과 붕소가 들어있는 영양제도 몇 차례 뿌려주었다.
이런 식으로 농사짓다가는 밑천 뽑기도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때쯤 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죽어가는 농작물을 보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게 농사꾼의 마음이니까. 어쩌면 아마추어 농사꾼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친환경 살균제는 예방효과는 있어도 농약만큼 효과가 강력한 건 아니다. 배추에 더 이상 병이 퍼지지 않고 지금 상태로 멈추기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그 좋던 배추가 이렇게 망가졌다. 그래도 반타작은 하겠지. ©윤용진
“올해 배추 몇 포기 김장할 거야?” 아내에게 물어봤다. “한 30 포기 정도?” 겨우 김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김장 배추를 70포기 심었는데 이미 뽑아 버린 게 10포기는 되고, 나머지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다. 그래도 반타작은 하겠지!
그 쉬워보이던 농사가 요즘 들어서는 만만치가 않다.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자라는 생강이었는데 올해는 보기 좋게 망했고, 그토록 정성을 들인 김장배추도 계속되는 비로 속절없이 망가졌다. 이럴 때면 내 스스로 위안하며 하는 말이 있다. ‘아마추어 농사꾼이니 그럴 수도 있지!’
TV에 나온 썩어가는 배추 밭에서 한숨을 쉬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하늘 탓만 할 수는 없고, 어떻게든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기상이변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고, 또 하루 이틀 짓다가 그만둘 농사도 아니니까.
오랫동안 지어온 텃밭농사가 쉽기는커녕 해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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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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