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120]
과일 값이 치솟자 다시 유실수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약 값이야 좀 들겠지만 대신에 맛있는 과일을 실컷 먹을 수는 있을 테니까. 그간 주위에서 과일을 얻어먹기도 하고 마트에서 과일을 사 먹기도 했지만, 예전에 내가 직접 키워 먹었던 시절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거기에다가 아내의 부추김도 한 몫을 했다. “과일나무 좀 다시 심지 그래?” 과수원 접자고 노래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불과 3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다.
과수를 재배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하다. 바로 전지작업과 방제작업! 유실수는 가지들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전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큼직하고 맛있는 과일이 열린다. 특히 유실수는 어릴 때 수형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 전지작업을 하기도 어려워진다. 또 애써 키운 과일을 벌레에게 헌납하지 않으려면 때맞춰 방제도 해야 한다. 물론 거름을 주는 것은 농사의 기본이고.
자두나무. 현재 우리 집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유실수 중의 하나다. ©윤용진
겨우내 앙상해 보였던 가지들도 여름이 되면 무성해진다. 이른 봄, 전지를 할 때 가지를 너무 많이 남겨놓으면 나중에 서로 겹쳐 그늘이 진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잘라내면 과일이 별로 열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적당히 전지를 해줘야 하는데 그 ‘적당히’ 란 게 참 어렵다. 시골에서도 전지 전문가들의 일당이 매우 높은데, 그만큼 전지작업에는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과일은 예전처럼 철저하게 방제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판매할 목적이 아니니까. 일 년에 몇 번 방제를 하고, 적당히 상처 난 과일을 우리 식구가 먹으면 된다. 내가 ‘적당히 상처 난 과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과일은 결코 몇 번의 방제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방제를 했다가는 멀쩡한 과일은 단 한 개도 없고, 벌레가 먹다만 반쪽짜리 과일만 수북하게 쌓인다. 특히 사과나 복숭아처럼 벌레가 많이 꼬이는 유실수의 경우에는.
살구나무 (오른쪽). 너무 키가 크게 자라는 품종이라 결국 퇴출! ©윤용진
그렇다면 무슨 나무를 몇 그루나 심을 수 있을까? 이번에 없애버린 텃밭의 크기는 가로 5.4m 세로 15m로 작지 않은 면적이다. 양옆으로 그늘이지지 않도록 가운데 한 줄로 유실수를 심으면 될 것 같다.
유실수는 가급적이면 서로 다른 품종을 두 그루 이상 섞어 심는 게 좋다. 꽃가루가 많아 자가수분이 잘 되는 나무가 아니라면 옆에 수분수도 심어야 한다. ‘자가수분 가능’이라고 설명서에 나와 있어도, 막상 심어보면 ‘가능한 것’과 ‘잘 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그리고 맛도 좋고 열매도 큰 신품종치고 자가수분이 잘 되는 나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간 내가 마음속으로 찜해 놓은 나무는 복숭아 한두 그루, 사과 한두 그루 정도다. 내친 김에 예전에 뽑아버렸던 살구도 한 그루 다시 심어볼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집에는 자두, 대추, 체리, 포도, 밤나무에 이어 사과, 살구, 복숭아까지 일 년 내내 과일이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온갖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시골집을 생각하면 조금 부러우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이른 봄에는 전지작업을 하고, 일 년 내내 땀을 흘리며 방제도 해야 한다. 덤으로 끊임없이 자라는 풀도 수시로 깎아줘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지난 15년간 이미 경험을 한 나로서는 유실수를 다시 키운다는 것이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아 보였다. 판매용으로 재배하는 유실수만 아니라면!
고맙게도 집에서 직접 키운 묘목 두 그루를 나누어주셨다. ©윤용진
복숭아 농사를 짓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복숭아나무를 다시 심을 생각이란 이야기를 하게 됐다. “복숭아나무는 제가 드릴게요. 집에 묘목을 만들어 놓은 게 있거든요!”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집에 예비로 묘목도 만들어 놓으시나 보다. 하긴 해마다 죽는 나무도 나오기 마련인데, 매번 원하는 품종의 묘목을 사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을 테니까.
묘목은 직접 농사를 짓는 전문가가 추천하는 품종을 심는 게 제일 좋다. 종묘사에서 추천하는 글만 보고 나무를 심었다가는 망할 수도 있다. 종묘사에서는 장점은 장황하게 늘어놓지만 정작 단점은 거의 말해 주지 않는다. 예전에 ‘서왕모’라는 품종의 복숭아를 심은 적이 있다. ‘천상의 맛’이라는 말처럼 복숭아가 굵고 맛도 좋았었다. 하지만 워낙 자연낙과가 잘 되는 품종이라 수확할 때가 되면 매달린 과일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수확도 못해보고 몇 년간 고생만 하다 결국 베어버렸다.
얻어온 복숭아 묘목을 밭에 심었다. 올겨울 동해를 입지 않아야 할 텐데. ©윤용진
이번에 얻은 복숭아나무는 ‘초황도’와 ‘단황도 네오’다. 둘 다 신품종으로 “초황도는 7월 중순이면 먹을 수 있고, 단황도 네오는 8월 중순에 먹을 수 있어요!” 하신다. 시차를 두고 복숭아를 수확할 수 있으니 여름 내내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귀하게 얻은 복숭아나무 두 그루를 곧바로 밭에 옮겨 심었다. 나무는 가을에 심으면 수확을 반년은 앞당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가을에는 뿌리 활착도 잘 되고, 가뭄이나 병충해 피해도 줄어든다. 다만 한 가지, 나무가 겨울에 얼어 죽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아무리 추위에 강한 나무라고 할지라도 어릴 때는 동해를 많이 입기 마련이니까.
이미 지난 겨울에 3년 된 복숭아나무를 얼어 죽인 경험이 있는지라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 겨울 날씨가 어디 보통 날씨인가? 올해는 신경을 써서 나무를 꽁꽁 싸매 줄 생각이다. 물론 그런다고 100% 산다는 보장도 없지만.
예전에 키우던 복숭아나무. 자연낙과가 너무 심해 뽑아버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퇴출당한 나무가 어디 한두 그루인가? ©윤용진
끝에 남은 빈자리는 사과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아직 어떤 품종을 심을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빨리 수확하는 품종(조생종)을 마음에 두고 있다. 맛으로 따지자면 늦가을에 수확하는 후지품종이 최고지만, 늦게까지 사과를 키울 자신이 없다. 9월 이후로는 병이 급격히 퍼질 테니, 아마추어는 그 이전에 재빨리 수확하고 끝내는 게 최선이다. 늦가을에 수확하는 과일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기고.
올가을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내년부터 곧바로 복숭아를 수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3년은 지나야 수확을 시작하고, 5년은 되어야 비로소 양이 제법 나온다. 명 짧은 사람은 기다리다 목청이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3년을 기다리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3년쯤은 후딱 지나간다. 올봄에 땅을 일구고 온갖 채소를 심었는데, 어느 새 한 해가 지나가고 지금은 텅 빈 밭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세월은 야속하게도 빨리 지나간다. 요즘 내가 느끼는 세월의 흐름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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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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