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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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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70)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1년째 귀촌 이야기

녹우정에 병오년이 밝았다 ©조연환

봉황천이 꽝꽝얼었다. 어릴적 손녀들 스케이트장이었는데…©조연환

이 추위에 납매가 피어 향기를 날린다. ©조연환

떨어지지 않은 영산홍잎이 꽃처럼 곱다. ©조연환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감사가 넘친다. 아내를 마님으로 모시고 녹우정에서 꽃심고 채소 기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내가 벌에 쏘여 위급한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건강하게 한 해를 마무리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월이네 식구는 주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종일 녹우정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닌다. ©조연환

무릎주사를 맞아가면서도 풀 뽑고 씨앗 뿌리는 아내에게 무리하지 말고 살살 하라는 말도 이젠 하지 않는다. 말한다고 듣지도 않을뿐 아니라, 못 견디게 아프면 하라고 해도 못할테니 할 수 있을 때 맘껏 하도록 내버려 두려고 한다.

할 일 없는 겨울동안에 소설책을 보라고 했더니 요즘은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텃밭에서 일하는 아내보다는 소파에서 책 읽는 아내가 훨씬 아름답다. 신혼 때는 앞치마를 입은 모습이 예뻐보였는데 팔순되어 책보는 아내가 참 보기 좋다. 제발 꽃피는 봄이 와도 책에 빠져 풀이 자라는 것도 모르면 얼마나 좋을까.

소파에서 책을 읽는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조연환

아내가 파크골프에 재미를 붙이는 것도 참 다행이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파크골프장이 5개나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 18홀을 돌면 4,000보 가까이 걸으니 얼마나 좋은가. 거기다 돈도 들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는 거 같다. 열심히 훈련해서 올봄에는 송곡 친구 내외와 내기골프를 해야겠다.

아내가 파크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참 다행이다. ©조연환

올해는 텃밭을 줄이자고 아내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 우선 김장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일년 내내 골고루 맛있는 김치를 사오겠다고 큰소리 쳤다. 맛있다고 소문난 김치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두 식구 먹을 김치를 못 구하랴. 사실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게 더 많다. 지난해에도 김장김치가 물러서 거의 다 버렸다. 얼마나 아까운가. 올 김장김치도 싱겁고 맛이 별로다, 아내 손맛이 변했나보다.

김장을 하지 않으면 텃밭농사가 쉬워진다. 우선 고추는 몇 십 포기만 심어 물고추만 딸 것이다. 몇 년간 고추 180포기를 심어 태양초를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말이 태양초지 사람이 말라야 고추가 마른다는 말이 실감난다. 볕이 좋을 때는 재미가 있지만 가을 날씨가 항상 좋을 순 없다. 해가 안 나거나 비가 오면 말리던 고추를 싸들고 명주이장네 건조기 신세를 져야한다. “아이구! 청장님네 고추때갈이 어쩜 이리 고울까요.“ 이런 칭찬이 사람을 잡는다.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머슴은 벌써 신바람이 난다.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신청 박회장한테 물어보니 음나무를 심으란다. 그냥 심어놓고 봄에 순을 자른 다음 비료만 주면 된단다. 대신 물빠짐이 잘 되게 골을 깊이 파야한다고 일러준다. 묘목은 박회장이 준단다. 귀가 솔깃하다.

아내는 감나무를 심자고 한다. 대봉감은 추위에 약하니 단감나무를 심자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감나무를 심고 싶다. 다른 과일보다 약을 덜 쳐도 될 것 같아서다. 밭에 복숭아나무 두 그루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지난해 복숭아도 많이 달렸지만 사과나무에서 사과 50여 개를 첫 수확했다. 향기가 나고 달콤한게 사과맛이 아주 좋다.

하지만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는 고추약을 칠때마다 약을 쳐주어 그마나 과일을 따 먹을 수 있었다. 고추농사를 짓지 않으면 1주일에 한번씩 약을 치기는 쉽지 않을 듯 한다. 편히 살려고 고추농사를 안 짓는 건데 과일나무 심어 놓고 농약통을 메고 다니긴 싫다. 무슨 나무를 심지? 아내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100평 남짓 텃밭이 하늘만하다.

귀촌하던 해, 아내는 이곳에서 일흔살까지 살고 싶다했다. 일흔이 되니 일흔다섯, 일흔다섯이 되니 팔십까지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고 한다. 이제 팔십이 되었다. 아내의 마음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나 또한 이곳이 좋다. 할 수 있으면 이곳에서 건강하게 산촌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아침마다 밥상을 놓고 아내와 기도한다. 오늘도 건강하게 지켜주옵소서.

신년예배에 참석했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조연환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자식놈이, 지인들이 걱정을 한다. “이제 시골살이 걷고 서울로 오셔야죠.”귀촌한지 25년이 넘었으니 시골살이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아내가 벌에 쏘여 위급상황을 맞았을때 많은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의사는 벌 알레르기가 있으니 벌에 쏘이면 10분 내로 병원으로 곧바로 와야 한다고 엄히 말했다. 그것도 모든 병원에 벌알러지해독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병원에 미리 알아봐야 한다고도 일러주었다.

지인이 신년축하 난을 보내주었다. ©조연환

시골에 살면서 뱀이 무섭고 지네가 무서웠는데 벌이 이렇게 무서운줄 몰랐다. 사방에 벌이 널려 있다. 언제 벌에 쏘일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아내가 혼자 있들 때 벌에 쏘이면 어쩔 것인가. 주위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119를 부른다해도 20분이 더 걸릴텐데…

“여보, 이곳 생활을 정리할 때가 온거 같아요.” 아내는 말이 없다. “서울로 갑시다.” 역시 아내는 말이 없다. 갑갑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가겠다고 금방 갈 수 있는게 아니다. 서울집 전세금으로 이 땅을 샀고 그간 전세보증금 올려 이곳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했다. 서울집으로 들어가려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한다. 서울 변두리여서 전세보증금이라야 서울아파트 한 달치 월세 만큼도 안 되지만 내겐 큰 돈이다.

결국 정든 집과 땅을 내놓아야 한다. 요즘같은 시기에 시골땅이 팔리기나 하겠는가. 팔린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세금을 내고나면 손에 쥘 돈은 몇 푼 되지 않을테니… 결국 땅과 집만 잃게되는 형국이 될 것이다. 갑갑한 마음에 전원주택 매매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매물이 넘쳐 흐른다. 어찌해야 할까…

새해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한다. 고추농사는 확 줄이고 김장도 하지 않을 것이다. 텃밭에는 감나무를 심을 것이다. 아내는 꽃밭만 가꾸고 텃밭에는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한다. 서울집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한다. 무리해서라도 적금을 부어야 할까. 대출을 알아볼까. 주식이 호황이라니 주식을 살까. 이곳 집과 땅을 그대로 놔두고 서울집에 들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구하면 주신다고 했으니 새해 열심히 기도해야겠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이곳 땅과 집 팔지 않고 서울집에 들어가게 해 주옵소서. 아멘. ©조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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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69) 김장을 하니 텃밭농사 끝이다. 빈 밭에 버려진 무, 배춧잎이 나뒹굴고,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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