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121]
연말이라는데 내 주위의 세상은 조용하기만 하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고사하고 동네 분들 얼굴 보기도 힘들다. 추운 날씨에 외출조차 귀찮다는 듯, 모두들 집에 틀어박혀 지내시는 것 같다. 하긴 내 나이에 아직도 막내인 우리 동네에서 무슨 활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 집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예전에는 아들 녀석에게 잔소리하느라 생기가 돋았는데, 아들이 분가한 이후론 침묵 속에 지내고 있다. 이럴 때면 나는 혼자 노는데 익숙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면, 그 기나긴 시골의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지 끔찍하다. 사람들이 은퇴 후에 하는 취미활동을 꼽자면, 산책, 등산, 자전거타기, 사진, 영화감상, 텃밭 가꾸기, 여행, 그림, 독서, 목공 등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며 사는 건 아니고, TV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바깥활동이 줄어드는 한겨울에는.
유목이 냉해를 입을까봐 부직포와 사료포대로 싸주었다. ©윤용진
시골의 겨울은 마치 깊은 겨울잠을 자는 것 같다. 보이는 거라곤 수확이 끝난 텅 빈 들판과 언덕뿐이다. 우리 집 텃밭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초록색의 쪽파와 비닐로 덮어준 마늘, 양파가 보인다. 며칠 전 혹시 냉해를 입을까봐 부직포와 사료포대로 몇몇 유목들을 싸주었다. 큰 나무들에는 흰 페인트(수성)를 칠해주었는데, 페인트만 칠해도 동해방지에 제법 효과가 있다. 이제 농사에는 완전히 손을 놓은 채 내년 봄까지 텃밭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따금 하던 목공작업도 멈춘 지 오래다. 지붕만 막아놓은 작업실이라 겨울이면 자동으로 휴업에 들어간다. 예전에는 매서운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공작업을 했는데 이젠 열정도 좀 식었고, 또 급할 것도 없으니 내년 봄을 기약한다. 추운 겨울이 되면 집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다른 취미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그림 그리기.
아내는 해마다 지역 문화센터에서 여러 강좌를 듣는다고 바쁘지만, 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낯선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이다.
텃밭에 남은 거라곤 양파와 마늘, 그리고 쪽파뿐이다. ©윤용진
날씨도 포근한데 집에 있으려니 답답해졌다. 어디 갈 만한 곳이 없을까? 이미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으니 멀리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집 주변만 돌아다니는 것도 이젠 지겹다. 강원도는 추울 테고, 남부지방은 당일치기로는 힘들다. 한 두 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이미 웬만한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교통 혼잡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에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그러다가 문득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과 ‘하회 마을’이 떠올랐다. 아직 그곳은 가 본 적이 없으니 한 번쯤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바람 쐬러 어디 다녀올까?” 아내는 어디가 됐든 나들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따라나선다. 적어도 밥 안 하고 하루를 보낼 수는 있으니까.
분천 산타마을.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 되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아쉽다. ©윤용진
그런데 도산서원 가는 길이 낯설지가 않다. 올여름에 다녀온 분천 ‘산타마을’과 가는 길이 같다. 지도를 찾아보니 두 곳이 불과 45km 떨어져 있었다. 올여름, 산타마을에 처음 갔었는데 텅 빈 거리에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여름에 산타마을을 찾는 정신없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 되었으니 사람들로 북적이겠지?”아내의 이 말 한마디로 중간에 계획을 바꾸었다. “도산서원 대신 산타마을에 다시 가 볼까?”
옛 건물 몇 채만 세워져 있을 썰렁한 서원을 찾기 보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타마을이 백 배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그곳에 가면 수많은 인파로 연말 분위기도 날 테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도 많을 것이다. 딱히 목표를 정해놓고 떠난 여행도 아니니 중간에 얼마든지 목적지를 바꿔도 된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산타마을로 달려갔다.
얼마 전 눈이 오고, 눈꽃이 활짝 피었다. ©윤용진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 기껏 찾은 산타마을이 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없다.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즌인건 맞나? 거리는 화려하게 단장을 마치고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만 왔으면 영락없이 동화 속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았고, 몇몇 가게만 장사를 하고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아니면 요즘 경기가 어렵다고 다들 집에만 있는 건가? 사람들 틈에 끼어 연말분위기를 느껴보려던 우리 부부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곳은 수도권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힘든 곳이다. 주변은 인구소멸지역들뿐이고, 산타마을을 좋아할 어린아이들은 찾기도 어렵다. 교통이 그리 편한 것도 아니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누구든 이곳을 목표로 여행을 오기는 힘들 테고,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러보는 곳인가 보다. 사실 밥 먹고, 사진 찍고, 한 바퀴 둘러보는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까. 그나마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면 좋겠다.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 텅 빈 거리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근본적인 인구 유입 대책 없이는, 돈 몇 푼 들인다고 지역이 활성화되지는 않나 보다.
지인들과 카페를 찾았다. 그래도 연말 분위기를 내려고. ©윤용진
연말이 다가오니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를 넣는다. “어쩌다 보니 올해 한 해도 다 지나갔네! 건강하고 내년에 날씨 풀리면 보자!” 은퇴를 했는데도 서로 뭐가 그리 바쁜 건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힘들다. 사람 사는 게 뭐라고!
새해를 시작하며 올해도 평범한 한해가 되기를 원했었다. 그리 놀랄 일도 슬퍼할 일도 없는, 평범한 나날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졌으면 했다.
봄에는 여느 때처럼 땅을 갈아주고 온갖 채소를 키웠다. 괴팍한 날씨로 조금 고생을 했지만, 그럭저럭 우리 식구 먹을 채소를 수확할 수 있었다. 때로는 목공작업도 했고, 작년에 끝내지 못한 마당공사도 마무리했다. 아내와 여기저기 구경도 다녔고, 이따금 친한 친구들도 만났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특별히 몸이 아픈 곳도 없었다. 특히 올해는, 늘 걱정거리였던 아들이 결혼을 하여 분가를 했으니 한시름 놓게 됐다. 따지고 보면 올해는 평범하기 보다는 아주 기쁜 한 해였던 것 같다.
인생이란 건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다. 가슴이 떨릴 정도로 재미있고 보람된 일들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날 뿐이고, 대부분의 시간들은 소소한 일상들로 채워진다.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오늘도 무엇을 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지 눈을 반짝이며 궁리를 한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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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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