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 일기 136]
올해 토마토 농사는 수확도 못 해 보고 끝났다. 하루아침에 망가진 토마토밭을 보면 속이 끓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탈하기도 하다. 원래 농작물이란 게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자라는 것처럼 보여도, 때로는 사소한 실수로 허무하게 죽기도 한다. 나 역시 그동안 수없이 많은 농사를 망쳐 봤다. 이력이 쌓인 이후 큰 실수는 하지 않는다지만, 지금도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농사가 망가질 때가 있다.
얼마 전, 토마토 잎이 말리고 새순 끝부분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됐다. “갑자기 토마토잎이 왜 이래?” 가슴이 덜컹했다. 토마토 농사를 10년 넘게 짓고 있지만 이렇게 잎이 망가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농약 피해!
몇 년 전 고추를 심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추가 아직 어렸을 때, 과수원에 사용하고 남은 농약을 고추에 뿌려주었다.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다음날 고춧잎이 말리고 새순이 불에 덴 듯 타들어 갔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농약 피해였다. 과수원에 사용하는 농약은 독한 성분이 많아서, 일반 채소에 사용하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몇 년 전 고추가 약해를 입었다. 겨우 살렸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윤용진
하지만 우리 집 토마토가 농약 피해일 리는 없다. 토마토에 농약을 뿌린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토마토나 오이와 같은 작물에는 병충해가 잘 꼬이지도 않지만, 있다 한들 수시로 수확해서 먹는 작물이니 약을 뿌릴 수도 없다. 나는 차라리 병든 잎을 떼어내거나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가지를 정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병변이 좀 심하다 싶으면 난황유를 만들어 뿌려주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괴팍한 날씨 탓인지 그 방법도 만만치가 않아졌다. 그래서 올해는 큰맘 먹고 한 병에 6만 원이나 하는 비싼 천연 살충제도 샀다. 그리고 지금까지 특별한 징후 없이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으니, 비싼 살충제가 제값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농약 피해가 아니라면 혹시 응애라도 생긴 건가? 토마토잎을 떼어내 돋보기로 세심히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유가 뭐지?
6월 중순까지만 해도 토마토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윤용진
“혹시 비료 과다 아녜요?”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다. 비료가 많아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도 아니다. 토마토에 추비를 준 적이 없으니 비료 과다는커녕 오히려 거름기가 조금 부족해 보였었다. 6월 중순까지만 해도 시든 토마토가 한 포기도 없었고, 작은 토마토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망가진다는 건 외부적인 요인이 틀림없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 AI에게 토마토 사진을 보여줬다. “갑자기 토마토잎이 말리며 새순이 타들어 가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몇몇 AI에게 물어봤는데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제초제나 호르몬계 물질 피해처럼 보입니다. 최근에 제초제를 뿌려준 적이 있나요?”
없다! 제초제라니 말도 안 된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아, 대파밭!
갑자기 토마토잎이 타들어 갔다. 눈으로 딱 봐도 약해가 틀림없다. ©윤용진
우리 집 바로 위는 3만 평이나 되는 대파 밭이다. 그리고 대파는 병충해와 잡초 관리가 까다로운 작물이라 수시로 약제를 뿌려줘야 한다. 굳이 남의 농사법을 따질 마음은 없는데, 문제는 드론으로 농약을 뿌린다는 점이다. 드론이 윙윙 날아다니며 약을 살포하면, 약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대파밭 끝자락에서 우리 집 토마토밭까지는 거리가 불과 10미터도 안 된다.
‘그렇다면 드론으로 살포한 약제가 바람을 타고 토마토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이미 토마토밭은 망가졌고, 고추도 약간은 피해가 있어 보였다. 지난 건 어쩔 수 없고, 고추밭에 더 이상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파밭 주인에게 전화했다. “저희 토마토가 약해를 입은 거 같아요. 앞으로는 드론으로 방제할 때 주의해 주셨으면 해요!”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내 나름 최대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예전의 울타리는 누군가에 의해 망가져 아예 새로 만들어야 했다. ©윤용진
그런데 대파밭 주인은 발뺌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론으로 약을 쳐도 그곳까지 날아가지 않아요!” “아뇨, 드론으로 약 뿌릴 때 집안까지 냄새가 들어와 창문을 닫은 적도 있어요!” 혹시 토마토에 탄저병이 온 거 아녜요?” “탄저병 증상이 아닌데요.” “혹시 물 빠짐이 나빠서 죽은 건 아니고요?” “우리 집 텃밭은 전체가 틀 밭으로 되어 있어 장마 때도 끄떡없거든요!” “대파밭에 남들 주는 약을 뿌린 것밖에 없는데요?” “약제에 따라서는 다른 작물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내가 피해 보상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안하다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하면 끝날 일인데 자꾸 핑계를 대니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 앞으로 주의해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파밭 주인은 끝까지 본인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까짓 토마토 수확해 봤자 돈으로 몇 푼이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봄부터 정성을 들여 키운 작물이 갑자기 죽었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자꾸 따져봤자 속만 더 상하고, 잘잘못을 따진다고 죽은 토마토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빨리 훌훌 털고 잊는 게 상책이다.
그나마 매달려 있는 몇 개 안 되는 토마토라도 잘 키워봐야겠다. 올해는 토마토를 실컷 먹기도, 병조림하기도 다 틀려버렸다. 아쉽다!
올해는 그나마 남아 있는 토마토 몇 개만 수확하면 끝이다. 아쉽다. ©윤용진
그런데 속상한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이번엔 울타리까지 망가졌다. 일찍 심은 대파를 수확한다고 큰 트럭들이 우리 집 앞을 오갔다. 급기야는 트럭이 후진으로 내려오다가 울타리를 건드려 버렸다. 하필이면 밭에서 일하던 나에게 딱 걸렸는데, 시멘트로 굳혀 만든 기둥이 흔들리고 쇠 그물망이 찌그러졌다. “미안합니다. 울타리를 못 봤어요.” “휴우~ 어쩔 수 없죠.”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보수를 해야겠다.
예전의 우리 집 울타리는 누가 그랬는지도 모른 채 다 망가졌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 따질 수도 없고, 설사 목격한다 해도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파밭 주인은 대파를 키워 밭떼기로 넘기면 끝이고, 대파를 수확해 가는 건 다른 사람이다. 물론 트럭 기사도 가면 끝이고. 그래서 시골에 살다 보면, 낯선 사람이나 차량에 은근히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되나 보다.
시골서 농사를 짓다 보면 본의 아니게 주위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금 더 조심하며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 울타리는 다시 고치면 그만이지만, 한 번 허전해진 마음은 쉽게 메워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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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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