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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아는 데 반 평생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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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74)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1년째 귀촌 이야기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 알아주면 쑥스럽고 몰라주면 서운한 날, 바로 생일이다. 어릴적에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쌀밥에 미역국 때문에 기다려지고,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던 날이다.

새벽부터 울리는 생일축하 문자, 카톡, 전화에 하루가 바쁘다. 오래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으니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기쁘다. 역시 생일은 즐거운 날이다.

며칠 전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뭐 필요한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셔요. 생일선물로 사서 보내드릴게요.” “알았다. 생각해 보마, 고맙다.” 이렇게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려도 답이 없자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돈을 조금 보냈습니다. 뭐 필요한거 아버지가 직접 사셔요. 생일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이왕이면 봉투에 두둑하게 넣거라…” 역시 돈이 좋다.

생일아침이다. 아내와 둘이서 예배를 드리고 밥상을 보니 미역국이 없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도 없다. 웬일이지… “여보, 아침에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해 줘야 하는거 아녀요?” “무슨 축하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오늘이 당신 생일이예요? 어쩐담. 내 정신 좀 봐, 엊저녁만해도 미역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깜빡했네요. 여보 미안해요.”

생일 지나 받은 미역국 ©조연환

안방으로 들어간 아내가 봉투를 들고 나온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깜빡했어요. 이거 받아요.” 아내한테 생일이라고 봉투를 받기는 처음인거 같다. 미역국보다 봉투가 더 좋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돈을 좋아했을까…

멋진 후조회원들 ©조연환

오늘은 후조회모임을 하는 날이다. 산을 좋아하는 12명이 모여 오래토록 변하지 말자는 뜻으로 후조회(後操會)라 이름 짓고 두어 달에 한번 씩 모이고 있다. 지난번에 모임 날짜를 잡았는데 마침 내 생일날이다. 모른척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마침 오늘 모임을 주선하는 이 회장께서 내 생일인 줄 알았다. 아내가 차려주지 않은 미역국에 케익에 꽃다발까지… 후조회 모임이 내 생일잔치가 되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백 대표께서 오늘 점심은 자기가 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한 여성 원우가 말했다. “청장님! 오늘 점심은 제가 사고 싶어요.” “아녀요. 오늘은 백 대표께서 점심을 사기로 했어요.” “청장님, 아녀요. 오늘은 꼭 제가 밥을 사고 싶어요.” “왜 그러는데요?”

재단사무실 직원에게도 생일축하를 받았다 ©조연환

그 여성원우가 말했다. “청장님!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생일 날에는 많은 사람에게 밥을 사 주라고요. 오늘이 제 생일이거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이런게 바로 진정한 가정교육이구나. 그날 점심은 백 대표가 아니라 어머니 말씀 잘 듣는 그 여성원우가 밥을 샀다. 그리고 진심으로 밥을 살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 이제부터 생일날에는 밥을 얻어 먹는게 아니라 밥을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녹우정 꽃들도 머슴 생일이라고 아우성이다. 설강화, 크로커스, 히야신스, 상사화, 수선화 머슴생일이라 피어나고 매화, 산수유, 납매, 향길마가지 생일축하 부르는데 목련이 피어 축하 나팔을 불어준다. 꽃들이 피어나는 이 좋은 계절에 나아주신 부모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수선화 ©조연환

치아노독사 ©조연환

크로커스 ©조연환

사순절장미 ©조연환

히야신스 ©조연환

샤프란 ©조연환

치아노독사 ©조연환

매화 ©조연환

산수유 ©조연환

하지만 생일이라고 마냥 좋아라 할 수 만은 없다. 텃밭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정월 대보름도 지나고 우수 경칩 지나 춘분까지 지났는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텃밭에 내려가 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아내가 벌에 쏘여 고생을 한 뒤로 언제까지 이곳에서 텃밭농사를 지을 수 있으려나 생각이 깊었다. 하지만 올해도 그냥 여기에서 텃밭농사를 짓기로 했다. 아내에게 제발 일을 좀 줄이고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하지만 말로는 그런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다. 올해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녹우정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머슴이 이곳저곳 봄나들이 하는 동안 아내 혼자 키 큰 나무를 제외하곤 과일나무 전지를 거의 끝냈다. 모과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를 아내와 함께 다듬어 주었다. 나는 되도록 많은 가지를 자르려하고 아내는 한 가지라도 더 남기려한다.

“여보, 가지를 많이 남겨 둔다고 과일이 많이 맺히는게 아녀요. 이렇게 아래로 쳐지고 속으로 파고드는 가지는 베어내야 해요” 설명을 해도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럴 땐 아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원칙이 어디 있겠는가. 아내 말을 따르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아는데 반 평생이 걸렸다.

명주 이장이 내일 밭에 로타리를 쳐 준단다. 머슴이 바빠졌다. 퇴비를 펴 주어야 한다. 올해도 김회장께서 잘 숙성된 유기질퇴비를 한 차 갖다 주었다. 퇴비포대를 밭에 펴 주자니 허리가 아프다. 두어 포대 옮기고 한참을 쉬고 두어 포대 옮기고 스마트폰을 본다.

밭둑에 핀 백목련이 씨익 웃는다. 그래 너하고 놀자. 카메라들 들고 목련꽃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아내가 김치전에 막걸리를 들고 내려온다. “아이구, 밭에 거름 핀다고 새참을 갖고 왔더니 꽃놀음하고 있었군요.” “아녀요. 일을 이만큼 했잖아요. 오랜만에 일을 하자니 허리, 다리 안 아픈데가 없어요.” 미안한 마음에 엄살과 너스레를 떤다.

목련꽃이 씩 웃는다. ©조연환

새색씨 웃음처럼 고운 목련꽃 아래서 김치전에 막걸리 한 잔을 한다. 아내가 말한다. “올해는 고추는 조금만 심고 참깨를 더 심자구요.”

“아니, 올해 고추농사 안 짓기로 한 거 아녀요.” “하지만 고추를 안심을 수 없잖아요. 고추 100포기만 심어요.” 올해 고추 농사 안 짓기로 한 약속은 이렇게 또 무너진다. 아내 말이 언제나 옳은거니까. 퇴비향이 목련꽃 향기처럼 달콤하다. 이렇게 또 한해 머슴살이가 시작되는구나.

▼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산림청장의 귀촌일기」를 만나보세요. ▼

▼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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