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69)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0년째 귀촌 이야기
김장을 하니 텃밭농사 끝이다. 빈 밭에 버려진 무, 배춧잎이 나뒹글고, 잘라낸 옥수수, 수수, 콩대도 지저분하다. 이대로 겨울을 지낼 수 없다. 갈퀴와 괭이를 들고 텃밭으로 내려간다. 버려진 무, 배추잎을 알뜰하게 모으고 옥수수, 수수, 콩대를 모아 버린다. 아내가 내려와 보곤 그냥 두면 썩어서 거름이 될텐데 힘들게 치우느냐고 한마디 한다. “지저분하잖아요. 이게 무슨 거름이 되겠어요. 깔끔하게 정리해야지…”아내는 이런 내가 별나다는 표정을 짓는다.
농사 끝난 밭에 버려진 무, 배추와 폐비닐이 널브러져 있다. ©조연환
깔끔하게 정리하니 속이 시원하다. 흙도 좋아하겠지… ©조연환
고추대는 봄까지 두어야겠다. 눈 내리면 눈꽃이 맺히라고… ©조연환
이젠 비닐을 걷어야 한다. 숭숭 구명이 뚫리고 찢긴 비닐이 널브러져 빈 밭에 흩날린다. 바람에 날려 전봇대에도 냇가에도 가로수에도 비닐이 펄럭인다. 농사 끝난ㅁㅂ 밭에 폐비닐이 버려져 있는 모습이 참 보기 흉하다. 요긴하게 잘 썼으면 깨끗하게 정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득 내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비닐을 걷다 말고 시를 읊어 본다.
자식 놈에게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
비닐조각 널려있다
찢기고 상처 난 비닐 들
바람에 쫓기는 방랑자이더니
냇가 나뭇가지에 걸려 깃발이 되었구나
제 몸 찢기며 길러 낸 곡식들
고추, 마늘, 무, 배추, 고구마, 옥수수……
알뜰하게 거두어 갈무리하면서도
저들 길러 낸 비닐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들판에 버려져 있다
비닐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비닐이 있어 농사짓기 수월해졌다고
수확량도 늘고 때깔도 좋아졌다고
비닐 예찬론이 한창이더니
이젠 돌보는 이 없어 빈 들판을 떠돌고 있다
바람은 차고 눈보라는 몰려오는데
빈 밭에 널브러진 비닐을 주우며
산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한다
그래,
나도 한 땐 쓸모가 있었지
능력이 있다고 재주가 좋다고
당신이 없으면 조직이 안돌아 간다는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
비록, 오늘은 쓸쓸히 홀로 산을 오르지만
애비야,
가을걷이가 끝나면
비닐을 깨끗하게 거두거라
마지막 모습이 추하지 않도록
이 애비가 떠날 때 말이다
– 졸시: 자식놈에게 –
텃밭 정리를 끝냈으니 이제 꽃밭을 돌봐야 한다. 아내는 튤립 구근을 심고 머슴인 나는 추위에 약한 장미, 석류나무, 감나무, 불칸목련, 백일홍나무를 싸 주어야 한다. 재작년까지는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나무를 싸 주었는데 볏짚을 구하기도 어렵고 이엉을 엮는 일도 힘들어 작년부터는 보온덮게로 싸 준다. 일하기 쉽고 깔끔하지만 웬지 어울리지 않고 추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할 것 같아 나무에게 미안하다.
불칸목련나무 ©조연환
석류나무 ©조연환
장미 ©조연환
대봉감나무 ©조연환
배롱나무 ©조연환
감나무 ©조연환
올해도 모과가 많이 열렸다 ©조연환
단풍이가 머슴이 일하는걸 지켜본다 ©조연환
내 집은 어디예요??? ©조연환
텃밭과 꽃밭 월동준비가 끝났다. 이제 봄까지는 방학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야 겨울에도 쉴 틈이 없겠지만 아내와 함께 취미로 텃밭 농사 짓는 머슴에게 겨울은 참 고마운 계절이다. 올 겨울에는 뭘 하지…
아내와 함께 파크골프를 즐겨야겠다. 아내도 파크골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파크골프장이 4개나 있다. 36홀을 돌면 8,000보 가량 걷는다. 예약없이 언제나 갈 수 있고 돈도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쩌다 아내가 버디를 하면 골프장이 떠나가도록 ‘버디다~~’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본다.
방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한 겨울에도 풀을 뽑는 아내에게 파크골프 말고도 취미를 만들어 줘야겠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국단편소설을 골랐다. “여보, 당신 심심할 때 이 책 좀 봐요.” 웬 책이냐며 시큰둥하게 책을 받아든 아내가 쇼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책을 보는 아내도, 책을 끼고 자는 아내도 사랑스럽다… ©조연환
꽃을 좋아하는 아내 … ©조연환
젊었을때 앞치마를 두르고 씽크대에 서 있는 아내가 참 예뻐보였는데 나이 팔십 된 아내가 책 읽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내 옆에서 같이 책을 읽다 슬며시 일어나 항아리에 넣어둔 무를 꺼내 깍아서 아내에게 주니 좋아라 한다. ‘여보, 무가 달고 맛있네요.“ 무 한 조각을 먹고 책을 보던 아내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책을 꼭 껴안고 잠든 아내 모습이 참 평화롭다.
잠든 아내에게 담요를 덮어 준다. “여보, 우리 오래토록 이곳에서 꽃 심고 채소 기르며 살자꾸요. 그게 당신이 원하는 삶이잖아요. 그러려면 건강해야해요. 몸 아껴가면서 일해요. 내년엔 농사도 좀 줄이고 풀하고 더불어 살아가구요. 알았죠. 머슴도 이제 팔십이 다가오니 힘이드네요. 여보, 사랑해요.”
눈 덮인 남천 ©조연환
눈 쌓인 목련잎이 꽃같다 ©조연환
이제 봄까지 긴 방학이다 ©조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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