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67)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0년째 귀촌 이야기
날씨가 추워졌다. 곧 얼음이 얼 것이다. 아내는 저녁마다 무 밭에 비닐을 씌워야하나 걱정이다. “이 정도 날씨에는 괜찮아요.”하면 아내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밤에 많이 춥다는데…” 라며 안절부절 못한다. “애미야! 김장을 해야 하는데 언제 시간이 나냐?” “네, 어머니, 저희가 이번 금요일에 내려갈게요.”
드뎌, 김장하는 날이 잡혔다. 아들, 며느리에 갓 취업한 예은이까지 내려온단다. 야호! 신난다. 며느리하고 통화한 날부터 아내는 바쁘다. 아내에게 김장은 1년 농사 마무리이자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다. “여보, 모항수산에 새우 주문하고 통영수산에는 굴 2kg 주문해 줘요.” 아내 지시에 따라 새우와 생굴을 주문했다. 올해는 오징어는 안 넣는가 보다.
아내 혼자서 마늘을 깐다. 슬며시 아내 옆에 앉아 마늘을 깐다. “당신은 2층에 올라가 당신 일이나 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옆에서 함께 마늘을 까니 좋은가 보다. 물에 불린 마늘이 잘 까진다. “여보, 올해 마늘 농사도 잘 지었네요.” “이 마늘은 문경이네 마늘이예요. 마늘이 얼마나 실한지 칼이 들어가질 않네요.”
눈물을 훔쳐가며 마늘을 다 깠는가 했더니 아내는 생강을 꺼내온다. 생강 1만 원 어치를 사다 심었는데 이만큼 캤다고 좋아한다. 생강을 물로 씻고 칼로 껍질을 벗겨낸다. 이 많은 양을 아내 혼자 언제 다 하랴 싶어 칼을 들고 아내 옆으로 갔다. “생강도 까 주려구요?” 아내가 반기며 언능 자리를 비켜준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데 채소 망신은 생강이 시키는 꼴이다. 울퉁불퉁 생긴데다 혹이 툭툭 불거져 칼로 껍질을 까기 여간 성가시지 않다. 냄새 마져 독해서 눈이 따갑다. 이 고생을 하며 김장을 꼭 담아야하는걸까. 올해도 아내에게 김장을 담지 말고 사 먹자고 제안했었다. 맛있는 김치를 내가 책임지고 주문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하지만 아내는 대꾸도 않고 배추모종을 한 판 사다가 심었다.
처음에는 배추가 잘 자랐다. 여든 포기 넘는 배추를 보며 이 많은 배추를 다 어쩌나 걱정되었다. 하지만 가을비가 쉬지 않고 내리더니 배추가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추무름병이란다. 약을 사다 쳐 주었지만 무너지는 배추를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서른 포기 남짓 건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해 배추무름병으로 80포기 심어 30포기 수확했다 ©조연환
아내와 함께 배추, 무를 뽑으러 밭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무를 뽑고 나는 큰 칼로 배추를 잘랐다. 무름병을 이겨낸 배추는 아주 실하게 잘 자라 주었다. 올해 이 정도면 6식구 김장은 충분하다. 아내는 무를 뽑으며 말한다. “여보, 올해 무 농사가 참 잘 되었어요. 이 것 봐요. 이렇게 커요. 언제 이렇게 크게 자랐죠.” 이 맛에 농사를 짓는다. 시장에서 무, 배추를 사다 김장을 담는 분들이 이 기쁨을 어이 알랴.
무농사는 참 잘 됐다 ©조연환
뽑아 놓은 배추, 무를 리어카로 실어다 쌓아 놓으니 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고추는 태양초 마흔 근을 해서 빻아 놓았고 마늘, 생강도 까서 씻어 두었고 주문한 새우와 생굴도 도착했으니 김장 담을 준비를 모두 마쳤다. 며느리가 오기 전에 아내와 함께 시내에 가서 수육할 삼겹살과 며느리가 좋아하는 홍시를 한 상자 샀다.
“어머니, 예은이하고 저는 지금 출발했구요. 애비는 퇴근하고 고속버스로 내려오기로 했어요.” 아침 일찍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녹우정 김장하는 날이다. 매년 여러 사람이 와서 김장을 도와주었는데 올해는 5식구가 김장을 한다. 십 년 가까이 김장을 도와주던 우보 친구 내외가 함께 하지 못하는게 못내 아쉽고 허전하다.
소금에 절여지고, 짜고 맵고 강하고 비린 것들에 버물려 감칠 맛 나는 김치가 된다 ©조연환
김장을 준비하는 중에도 아내는 예은이 생각뿐이다. “여보, 저녁에 고기를 구울까요 아님 매운탕을 할까요?” “예은이 한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 그래요. “예은이 한테 물어보니 할미가 해 주는 건 다 맛있다고 했어요.” 그렇다. 예은이는 할미가 해 주는 건 무조건 다 맛있단다. 할머니가 해 주는 것만큼 맛있는게 없단다. 그러니 할미한테 사랑을 받는다.
아들, 며느리, 예은이 함께 둘러 앉아 5식구가 김장을 한다. 평상 위에 김장용 비닐멍석을 펴놓고 그 위에 무생채, 쑥갓,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멸치액젓, 새우를 넣고 버무린다. 짜고 맵고 쓰리고 비린 양념이 아내 손 안에서 하나가 된다. 고춧가루 샛깔이 곱다고, 올해 고추농사 잘 지었다고 아내가 몇 번이고 말한다.
시아머니, 며느리가 사이좋게 김장을 한다.©조연환
양념을 버무리며 아내가 간을 좀 보란다. “됐어요. 딱 맞아요.” 그러면 당신은 믿을 수 없다고 작년에도 간이 딱 맞다고 하더니 김장이 싱거웠다고 며느리에게 간을 보란다. “어머니, 간이 딱 맞아요.” 며느리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하늘이 참 파랗다.
소금에 절인 배추에 양념을 넣는다. 배추 잎 하나하나에 골고루 양념을 넣어 주어야 한다.애비가 하는 건 다 잘했다 하고, 예은이가 한 것 다 예쁘다 하고, 내가 한 건 맘에 안 든단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 5식구 옹기종기 둘러앉아 웃고 떠들고 흉도 보면서 김장을 하는 이 모습이 바로 천국인 것을…
부부란 이렇게 손을 맞춰가는 것이다.©조연환
아들이 하는건 다 잘하고, 예은이가 하는건 다 예쁜데 내가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든단다…©조연환
김장하는 날 군고구마를 빼 놓을 수 없다 ©조연환
양념을 너무 많이 넣는다고, 양념이 너무 적게 들어간다고 지청구하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배추는 어이 짜고 맵고 쓰리고 비린 것들을 받아들여 감칠 맛 나는 김치가 되는 걸까? 싱싱하던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짜고 맵고 쓰리고 비린 것들이 제 몸 괴롭힐 때에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그걸 꾹 잘 참아내니 이리 맛난 김장김치가 되는 것이리라.
6식구 김장이 이리 많다. ©조연환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단풍보다 짙다. ©조연환
‘그래, 배추처럼 살아야겠다.’ 아내가 억지소리를 한들 어떠랴. 남들이 몰라주면 또 어떠랴. 그렇게 믿었던 벗이 돌아선들 어떠하랴… 이런 생각에 빠진 내게 “당신 김장하다 말고 뭐해요.” “응, 당신 생각하느라고, 당신 오늘 따라 엄청 예쁘네.” “어구, 싱겁기는…”
“애미야, 올 김장 싱겁거든 네 시아버지 탓인 줄 알아라!” “네, 어머니…” 녹우정 김장하는 날, 단풍이 참 곱다. 하늘이 참 맑다. 아내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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