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 일기 130]
4월 중순에 모종을 사러 장에 갔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 대파처럼 추위에 강한 모종들만 샀다. 요즘은 장에 가면 모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서로 경쟁하듯 급하게 모종을 사려는 것 같다. 마치 지금이 모종을 심는 마지막 시기인 것처럼!
하지만 언제 어떻게 날씨가 변덕을 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이야 한여름 같은 날씨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서리가 내릴 수도 있다. 특히 고추나 토마토는 서리를 한 번 맞아도 끝이다. 차라리 팍 죽으면 다시 심기라도 하는데, 그냥 비실거리기만 하면 뽑아버리기도 애매하다. 문제는 어려서 냉해를 입은 모종은 키워봤자 성장도 느리고 두고두고 속을 썩인다는 점이다.
혹시 다른 지역은 따뜻한데 우리 집만 유별나게 추운 건가? 우리 집은 며칠 전에도 새벽에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다. 이번 주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낮에는 기온이 20도를 넘나들지만 5월 초순까지도 새벽에는 10도 이하다. 아무래도 눈 딱 감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추위에 강한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 대파, 쌈 채소 모종을 먼저 샀다. ©윤용진
새로 산 모종들을 심고 텃밭을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묘목들은 초록색 새순이 솟는데, 유독 올해 심은 사과 묘목만큼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신품종(이지플)이라고 비싸게 산 묘목인데 뭔가 잘못됐다. 묘목의 작은 가지를 꺾어봤다. 엥? 가지에 물이 오르기는커녕 말라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흥분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세심하게 묘목을 살펴봤다. 묘목 아랫부분에 긴 홈이 파이고 갈색으로 줄기가 말라 있었다. 이렇게 증세가 보일 정도라면 이 묘목이 살아나기는 힘들다. 또 설령 살아난다고 해도 제대로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차라리 새로 교체하는 게 낫다. 아직 4월이니 더 늦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한다.
차를 타고 묘목 시장 가는 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만약 묘목을 바꿔주지 않겠다면 어쩌지? 돈으로 따지자면 몇 푼 되지 않지만, 묘목을 다시 사려니 억울하다.
사과 묘목이 말라가고 있었다. 묘목 아랫부분에 상처가 보인다. ©윤용진
혹시 내가 묘목을 잘못 심어 죽은 거라고 한다면? 묘목 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도 아니니 반박할 증거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간 내가 심어 온 나무만 해도 몇백 그루가 넘는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나무를 잘못 심어 죽인 적이 한 번도 없다.
냉해를 입어 줄기가 갈라진 거라고 한다면? 냉해야 천재지변이니 파는 사람 잘못이 아니다. 추운 곳에 묘목을 심은 내 잘못이 더 크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은 이상하다. 물론 3월 중순에 나무를 심어도 냉해를 입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사과보다 추위에 약한 복숭아나무도 피해를 봤어야 한다. 하지만 사과나무 옆에 나란히 심은 복숭아 두 그루는 멀쩡하다. 더구나 3월 이후로는 날씨가 그다지 추웠던 적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묘목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묘목을 빨리 키우려고 과다하게 비료를 사용하면 조직이 물러져 냉해를 입기 쉽고, 그 후유증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또는 바이러스에 묘목이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 상처 부위를 보면 꼭 부란병 증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4월 중순에 심은 채소들이 뿌리를 내리고 부쩍 크기 시작했다. ©윤용진
심호흡을 하며 묘목 시장에 들어섰다. 내 잘못이라고 우기면 조목조목 설명하며 따지려고. 가져간 사과 묘목을 보여줬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려는데 주인이 먼저 말을 했다. “돈으로 돌려 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묘목으로 가져가실래요?” 어라? 너무 쉽다.“다른 묘목으로 가져갈게요!” 엉겁결에 대답했다.
전시장에 남은 사과 묘목이라곤 아오리와 꽃사과뿐이다. 그래서 아오리 묘목을 가져왔다. 가격 차이만큼 다른 꽃도 집어 왔다. 그리곤 이지플을 심었던 자리에 아오리를 심었다. 죽어가던 이지플도 뿌리 쪽은 멀쩡해 보였으니(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닌 것 같다), 같은 자리에 아오리를 심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잘 됐다. 모르는 품종을 심어 고생하느니, 잘 아는 나무를 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오리는 꽃이 워낙 많아 자가수분도 잘된다. 또 아오리라고 하면 파란 사과만 생각하는데, 아오리도 익으면 약간 붉은빛을 띠며 맛이 훨씬 좋아진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공연히 혼자 끙끙거렸던 것 같다. 또 사과나무가 죽는 일은 없겠지! 한 그루뿐인 우리 집 사과나무는 ‘이지플’이 아니라 ‘아오리’다.
매발톱은 보랏빛 꽃을 피웠고, 작약도 꽃 몽우리가 터지기 직전이다. ©윤용진
한숨 돌리고 텃밭을 보니 어느새 우리 집 텃밭도 절반은 채워졌다. 물론 추위에 강한 작물들로만.
마늘과 양파는 키가 거의 다 자랐고, 지금부터는 구근이 굵어지는 비대기다. 앞으로는 질소(N) 성분은 중단하고 가리(K) 위주로 시비해야 한다. 물론 비대기에는 물도 충분히 줘야 한다.
완두콩은 다시 모종을 심어야 했다. 작년에 수확한 완두콩을 종자로 심었는데 거의 발아되지 않았다. 종자에 문제가 있었나? 새로 씨앗을 심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고, 어쩔 수 없이 모종을 사서 심어야 했다. 하지만 완두콩은 모종보다는 씨앗을 사서 심는 게 더 낫다. 일하기도 편할뿐더러 가격도 싸게 먹힌다. 3월 말에 씨앗을 심으면 냉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브로콜리와 양배추도 심었는데 꿋꿋이 잘 자라고 있다. 이들은 추위에 워낙 강한 채소니까. 양배추를 보고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많이 심어 다 뭐 하려고?” 지금 말은 그렇게 해도 나중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 나누어 주는 게 누군데?
오래 묵은 비트 씨앗도 발아가 되지 않아 모종을 한 판 새로 사야 했다. 비트는 원래 씨앗을 하나만 심어도 모종이 두 개가 나온다. 모종을 꼼꼼하게 떼어냈더니 모종 한 판(72포기)이 두 판(150여 포기)으로 늘어났다. 힘은 들었어도 모종이 두 배로 늘어났으니 됐다.
양파와 마늘은 구근이 굵어지는 비대기에 들어섰다.
5월 초순에 장에 가서 마지막으로 모종들을 살 생각이다. 모종들은 곧바로 밭에 옮겨 심지 말고 며칠간 밖에 두었다 심는 게 좋다. 온실에서 자란 모종들이 갑자기 외부에 노출되면 심한 몸살을 앓게 된다. 따라서 먼저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머지않아 우리 집 텃밭은 빼곡히 채워질 테고, 다시금 평범한 시골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올해 농사도 절반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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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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