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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텃밭에 감자, 수세미, 작두콩은 안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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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진의 귀촌 일기 126]

한 해 농사는 텃밭 계획을 세우는 일로 시작된다. 아직 땅이 꽁꽁 얼어있는 한겨울에 내 마음속에는 이미 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돌이켜 보면 작년에 농사를 망친 건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경험이 쌓인 올해는 분명히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막연한 기대 속에 농사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농사꾼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꿈에 부풀어 있는 지금이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처럼.

하지만 날씨는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법. 올해도 이상기후와 예상치 못한 많은 변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 배운 게 있다면, 농사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농부의 텃밭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초토화되지만, 준비가 철저한 전문가의 텃밭은 이상기후에도 기본은 해낸다.

소나무 가지를 대충 잘라줬다. 소나무 전지는 내 전문이 아니니까. ©윤용진

‘내년에는 감자, 수세미, 작두콩을 심지 말 것!’ 지난해 농사를 마치며 노트에 써 놓은 말이다.

농사 지어봤자 별로 남는 것도 없는 감자는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씨감자 살 돈이면 나중에 감자 한 박스를 살 수도 있으니까. 수세미는 아직 많이 남았고, 작두콩은 기온 탓인지 소출이 얼마 나오지도 않는다. 작년에는 늦추위를 피해 그나마 조금 수확할 수 있었는데, 비싼 모종 값 빼면 거의 본전이다. 기껏 농사지어 본전치기라면 굳이 고생할 이유가 없다.

평소에 두 이랑씩 심던 땅콩도 올해는 한 이랑만 심기로 했다. 작년에 두 이랑 심어 너구리와 한 이랑씩 나눠 먹었으니, 올해는 너구리에게 뺏기지만 않으면 된다. 마늘, 양파 밭도 세 이랑에서 두 이랑으로 줄였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우리 식구 일 년 먹을 건 충분히 나온다.

토마토도 욕심부리지 말고 한 이랑만 심기로 했다. 텃밭은 작은데 가짓과 작물(가지, 토마토, 고추, 감자)이 많으니 연작피해를 줄이려면 심는 양을 줄여야 한다. 최근에 재미 붙인 양배추는 좀 더 많이 심고, 보관이 어려운 브로콜리는 좀 줄여야겠다.

올해 텃밭 계획표. 틀린 곳은 내가 직접 고쳐야 했다. ©윤용진

우리 집 텃밭은 4년 주기로 돌려짓기를 한다. 텃밭을 4구역으로 나눠 해마다 자리를 옮기고, 5년째에 제 자리로 돌아오는 구조다. 배치도를 작성할 때는 이전 기록을 살펴 가며 고추, 토마토처럼 연작에 민감한 작물들의 자리를 먼저 정한다. 그런 다음 빈자리에 남은 작물들을 채워 넣는다. 키가 큰 작물은 가급적 뒤로 보내고, 상추와 같은 쌈 채소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고추 옆에 심지 않는다. 처음 4년간만 신경을 써서 배치도를 만들면, 그다음부터는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올해는 배치도를 좀 멋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AI에게 부탁을 해봤다. “텃밭 배치도를 작물별로 그림도 넣고 보기 좋게 만들어줘!” 그런데 내 요구가 너무 어려웠나? 기껏 그려준 배치도에는 위치도 이름도 틀리게 표시되어 있었다. 몇 번 반복해서 수정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내가 직접 고쳐야 했다. 내 사용법이 미숙한 탓이겠지만, 이런 부류의 일을 하기에는 AI에게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포도는 큰 줄기만 남긴다. 포도는 그해 새로 자란 가지에서 열린다. ©윤용진

동네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을회관 앞에 석회 고토가 있으니 가져가세요!” 3년에 한 번씩 정부에서 무상으로 주는 석회 고토다. 예전에는 몇십 포대씩 받았는데 이번에는 8포대뿐이다. 그만큼 농사 규모가 줄었다는 말이다. 양이 줄었으니 할 일도 줄어들고,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런데 적게 준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

우리 집 텃밭 토질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별문제 없이 농사를 잘 지어왔고, 이제 와서 갑자기 토질 검사를 받겠다고 멀리 농업기술센터까지 다녀올 마음도 없다. 아마도 우리 집 텃밭은 몇 해쯤은 석회 고토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무상으로 주는 석회 고토니 그냥 밭에 뿌린다. 뿌려서 밑질 건 없을 테니까.

대추도 이렇게 가지를 몽땅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굵은 대추가 달린다. ©윤용진

기상예보에 의하면 당분간은 큰 추위가 없다고 한다. 벌써 3월이니 이제부터는 농사 일정에 따라 지체 없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2월 말에 석회 고토 뿌려주기. 그다음에 나무 전지작업을 끝내고 방제를 해야 한다. 규모가 큰 농장이라면 이미 전지작업을 시작했겠지만, 각각 몇 그루뿐인 유실수들이니 천천히 작업해도 된다. 전지작업은 강추위가 지나간 2월 말에서 3월 초순에 하는 게 좋다.

제일 먼저 전지작업을 시작한 건 자두나무. 하늘로 치솟은 도장지들과 땅으로 처진 가지들을 잘라낸다. 그리고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가지들을 옆으로 펼쳐준다. 무슨 나무든 열매는 큰 줄기가 아닌 잔가지들에 열리므로, 유실수 전지를 할 때는 항상 잔가지들이 많아지도록 유인해 주는 게 중요하다. 가지를 잘라내는 거야 금방인데, 일일이 가지를 유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이른 봄에 하는 박제로 기계유와 석회유황합제가 있다. 이들은 친환경 농자재로 나무에 잎이나 꽃이 피기 전에 해야 한다. 기계유는 겨울을 난 해충 방제용으로 지금이 방제 적기다. 석회유황합제는 살균제 역할을 하는데, 기계유와 최소 1~2주 간격을 두고 살포해야 한다. 머지않아 나무에 새순이 나올 테니 자칫 꾸물거리다가는 방제시기를 놓치기 쉽다. 그리고 곧바로 3월 말에 심는 완두콩 밭도 만들어야 한다.

자두는 잔가지에서 열리므로, 잔가지들이 많아지도록 유인해줘야 한다. ©윤용진

자두나무 전지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서 몇 분이 내리셨다. 냉이 캐러 왔다는 그분들은 우리 집 자두나무를 보고는 서로 수근 거리셨다. “자두를 작게 키우니 사다리 없이도 일할 수 있겠네!” 그러자 다른 분이 “나무가 어리니 키가 작지!” 하신다.“글쎄, 나무가 어려 보이진 않는데?”라며 지나가셨다.

어린 나무라고? 사실 그 자두나무는 심은 지 18년이 되었다. 시골로 내려온 뒤, 집을 짓기도 전에 먼저 나무부터 심었으니까. 수령이 오래되었다고 나무가 꼭 커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고 보니 올해 5월이면 시골로 내려온 지 20년이 된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시골 내려온 거 후회 안 해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쎄, 별로 후회하진 않아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도시에 남아 있은들 내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다만 어느새 지나가버린 20년의 세월이 새삼 덧없이 느껴진다.

세월은 정말 후딱 지나간다.

▼윤용진 작가의 「귀농 귀촌인을 위한 실전 텃밭 가꾸기」를 만나 보세요. ▼

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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