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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생활 30년, 애지중지 모았던 살림이 하룻밤에 잿더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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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상 : 이하영

어느 곰배령 농부의 치유 일지

농업과 농촌은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콘텐츠 공모전’에선 경남 산청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을 대상으로 치유농업을 통한 회복과정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주신 참기름 한병에 담긴 감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25년엔 기존의 글 콘텐츠 부문이외에 웹툰 부문을 추가했습니다. 1월부터 더농부·농다락 블로그에서 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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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농부의 새봄

나는 강원도 인제군의 곰배령 마을로 이주한 지 삼십 년이 조금 넘었다. 철 따라 피어나는 야생화들을 따라 숲을 쏘다니기도, 밭으로 나가 씨앗과 모종을 심고 풀을 뽑기도 하는 나를 보며 “너는 어쩜 하는 행동이 아버지를 닮았니?”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눈가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갑자기 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아버지가 즐겨하시던 일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한 해 한 해 나의 농토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를 ‘글 쓰는 농부’라고 소개할 수 있을 무렵 나는 치유농업사 육성과정이라는 공부를 만났다. 춘천의 농업기술원까지 왕복 4시간, 바쁜 농번기에 일주일에 두 번을 오고 가며 교육을 수료했으나 나는 치유농업사 2차 시험에 낙방하고 말았다. 재수생이 된 나는 일과의 우선순위를 치유농업사 시험공부로 정하고 읽고 쓰고 또 썼다.

열여섯 자루의 볼펜이 하나씩 비워질 때마다 나의 성취감은 그만큼 자라났다. 그리고 마침내 치유농업사 2차 시험에 합격했다. 나 자신이 무척이나 대견했다. 산골살이 삼십 년, 그동안 내가 해 보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구슬이 되어 치유농업이라는 실에 꿰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것은 꿈일까? 혹은 영화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막 봄이 들던 그해 4월, 잠결에 들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사방이 깜깜한데 자욱한 연기가 느껴졌다. 더듬더듬 딸이 잠든 방으로 가서 딸과 함께 창문을 넘어 나와보니 우리 집이 불타고 있었다. 지붕까지 적삼목으로 되어 있던 우리의 통나무집은 어찌 손 쓸 새도없이 활활 타서 잿더미가 되었다.

산골 살림 30년 차, 얼마나 많은 것을 모아들였던가? 언젠가 쓸 거라고 애지중지하며 간직하고 있던 것들은 거의 사라졌다. 마당 구석에 버리려고 던져둔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받으며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오히려 실실 웃음이 나왔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응원, 격려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다. 고맙고도 또 고마웠다.

마음이 쓰라린 날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얼굴 좀 보여줘’라고 말했다. 딸이 말없이 나를 안을 때 딸의 상실감도 함께 내 품에 안겨지곤 했다. 나의 소중한 딸과 나,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 아무도 아프게 슬프게 하지 않은 것, 그것이면 되었다 생각했다. 수용하고 지금 여기에 감사하는 이 현실이 무언지 알긴 알겠는데 나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잿더미 속에서 새싹 두 개가 올라왔다. 내가 간직했던 배추 씨앗이었다. ‘그 불더미 속에서도 살아나 이리 고운 싹을 틔우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새싹들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견하고 장한 생명에 대한 환희의 춤이었고, 지금 여기 생생히 살아있는 새싹들과 우리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눈물이 쑥 빠지고 나니 남겨진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물 밭과 블루베리밭, 허름하지만 수리가 가능한 오두막, 그리고 기억들, 우리는 기억하는 한 헤어지지 않은 거였다.

마무리 작업중인 치유농장체험

실내교육장으로 쓰일 숲속의 오두막 집 모습

배추 두 포기를 돌보며 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배추가 제법 자랐을 무렵, 나는 2025년 치유농업 육성지원사업에 선정이 되었다. 숲속의 낡은 오두막집을 실내교육장으로 고치고 지금은 실외체험장과 텃밭 정원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다.

긴 겨울을 헤치고 피어나는 곰배령의 봄꽃들처럼, 잿 더미속에 장하게 움트는 새싹처럼, 어제 이곳에 새로 이주한 사람이 되어 나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오늘도 공사 중인 곰배령의 치유농장 풀꽃세상, 곰배령에 깃들어 살며 내가 기억하는 자연의 풍경들처럼 이곳 또한 풀과 나무와 꽃과 사람들이 어울려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너처럼 다시 일어나야지…

응원과 격려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

2025 농촌진흥청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 이하영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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