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119]
우리 집 앞 나지막한 언덕은 대파 밭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곳에 고구마를 심어왔는데, 올해는 갑자기 다른 분이 대파를 심으셨다. 나중에 고구마 밭 사장님을 만났을 때 물어봤다. “고구마 심은 지 4년 밖에 안 됐는데 올해는 왜 그만두셨어요?” 사장님은 연작피해를 막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최근에 고구마 값이 폭락한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고구마를 잘 먹지 않아요. 이젠 고구마농사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라며 한숨을 쉬셨다.
어찌 됐건, 덕분에 나는 전문적인 고구마재배에 이어 대파 재배법까지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지난 19년간 이곳에 살면서 옆에서 지켜본 작물만 해도 황기, 도라지, 인삼, 더덕, 고구마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른 봄에 대파 밭을 만들기 위해 유박과 장비들을 갖다 놓았다. ©윤용진
대파 밭주인은 이른 봄에 유박을 한 트럭이나 실어다 뿌려주었다. “대개는 유박을 뿌려주지 않는데 이번엔 특별히 뿌려줬어요. 고구마를 심었던 땅이라 척박하거든요!” 나중에 대파 밭주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하지만 그 외에 따로 비료를 주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유박은 몇 달이 지나야 분해가 될 텐데, 당장은 대파가 뭘 먹고살지?
대파 밭주인을 만나서 또 물어봤다. “비료는 안 줘요?” 꼬치꼬치 캐묻는 내가 유별나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비료는 나중에 뿌려주면 돼요. 지금은 뿌리도 거의 없으니 줘봤자 먹지도 못해요.”라고 말씀하셨다. 어차피 비료는 줘봤자 한 달도 안 되어 없어질 테고, 먹지도 못하는 비료를 굳이 돈 들여가며 미리 뿌려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다. 전문농가에서는 최대한 원가를 줄이고 이익을 남겨야 한다.
반면에 우리 집 텃밭은 아주 기름진 밭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봄이 되면 거름을 뿌려준다. 뭐든 모자라는 것 보다는 넉넉한 게 더 나은 법이니까. 뭘 심어도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아마도 땅에 남아있는 거름기도 제법 많은 것 같다. 물론 작물에 따라 주는 양은 달라지지만, 올봄에도 텃밭에 거름을 듬뿍 뿌려주었다. 비료가 날아가든 말든, 텃밭농사를 지으며 비료 값이 아까워 망설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7월 말이 되자 우리 집 대파는 이미 다 자랐다. ©윤용진
4월 중순경 대파 모종 한 판을 사다 심었다. 대파는 원래 거름을 아주 좋아하는 작물이다. 대파든 쪽파든, 파 종류는 퇴비만 줘서는 안 되고 비료도 줘야 쑥쑥 자란다. 예전에 우리 집 대파는 항상 남들보다 절반 크기였다. 하도 이상해서 동네 형님께 비법을 물어봤다.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비료를 한 주먹씩 뿌려주면 돼!” 그 이후로 우리 집 대파도 달라졌다. 대파를 재배할 때의 비법은 딱 두 가지다. 수시로 비료를 뿌려줘야 하고, 수시로 농약도 뿌려줘야 한다. 너무 작아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파에는 벌레도 많다.
7월 말이 되니 우리 집 대파는 이미 자랄 만큼 다 자랐다. 이제 수확을 하고 농사를 끝내도 된다. 작년에도 이때쯤 대파를 수확했고, 8월 말경에 대파 모종을 다시 심었었다. 8월 말에 심은 대파는 김장할 때 쓰고, 남은 건 내년 봄까지도 먹을 수 있다. 대파는 한 겨울에 죽은 듯싶다가도 봄이 오면 다시 싹이 나온다.
우리 집은 올가을에는 대파를 따로 심지 않기로 했다. 봄에 심은 대파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그 정도 양이면 내년 봄까지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윙윙 소리를 내며 드론이 날아다녔다. ©윤용진
그런데 전문가가 키우는 그 넓은 대파 밭은 7월 말에도 엉성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대파가 겨우 한 뼘 넘게 자랐을 뿐이다. “아니, 도대체 대파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우리 집은 수확을 해도 되는데 이곳 대파는 자라려면 아직 멀고멀었다. “땅에 거름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아내와 둘이서 쑥덕거렸다.
대파 밭주인이 정말 전문가가 맞나 싶기도 했다. 대파가 아직 저렇게 작으니 어느 세월에 대파를 키워 팔겠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파 밭주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틀이 멀다하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서, 이미 크게 자라있는 우리 집 대파를 보며 엄청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다 대놓고 “사장님 대파는 왜 그렇게 작아요?”라고 속을 긁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전문적인 모습도 보이긴 했다. 그 넓은 면적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우니, 드론으로 밭에 뭔가를 뿌려주곤 했다. 그 넓은 대파 밭에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농약과 제초제를 엄청 뿌려주었던 것 같다. 올 여름의 그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윙윙 소리를 내며 드론이 날아다녔다.
멀리 텐트가 몇 개 보였는데, 난 왜 텐트를 설치했는지도 몰랐다. ©윤용진
11월이 되었는데도 대파 밭은 영 조용하기만 했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는 트랙터가 오가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올해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다만 언젠가부터 멀리 대파 밭에 텐트 몇 개가 설치된 것만 보였었다.
드디어 집 앞을 지나가던 대파 밭주인과 마주쳤다. “대파는 언제 수확해요?” “지금 수확하고 있어요.” “엥? 사람도 보이지 않던데요?” “날씨가 추워 이동식텐트 안에서 작업해요. 텐트 하나에 두 사람씩 들어가 일하고 있어요.”
대파 밭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서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하게 됐다. 사람들이 대파를 많이 찾는 시기는 가을 김장철이다. 일찌감치 대파를 수확해 봤자 수요가 없으니 제값을 받지도 못한다. 더구나 대파가 빨리 자라면 억세니 가을까지 천천히 키워야 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비실대는 것처럼 보였는데, 김장철이 된 지금 대파는 어느새 딱 적당한 크기로 자라있었다. 반면에 우리 집 대파는 너무 자라 질기고, 지금은 먹을 수는 있을지언정 상품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텐트를 이동하며 그 안에서 대파 작업을 한다. ©윤용진
아마추어 농사법과 전문농가의 농사법은 이렇게 차이가 크다. 텃밭농사는 작은 땅에 다양한 작물을 심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갈지는 몰라도, 빨리 키우고 빨리 수확하는 게 이득이다. 그래야 또 다른 작물들을 심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면 비료도 팍팍 뿌려주고, 좋다는 영양제도 아낌없이 뿌려줘야 한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전문농가에서는 무턱대고 빨리 키워선 안 된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때로는 늦춰야 한다. 또 하나 배웠다.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최고는 아니다. 사람들이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쉽게 말을 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농사는 끊임없이 배우고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끝으로 “올해 농사는 잘되셨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래도 태풍이 오지 않아 평년작은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올해 같은 날씨에 평년작이라니,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인가 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난 대파 키우는 데는 내가 더 전문가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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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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