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255]
안토시아닌부터 사포닌까지…과학이 밝힌 식탁 위의 ‘기능성분’
PTFI 국가 연구실 허브(한국 포함), 우수센터, 파트너쉽 연구소 ©국립식량과학원
요즘 마트와 시장의 진열대를 보면, 우리 농산물은 더 이상 단순한 “칼로리 공급원”에 머물지 않고 있다. 색이 진한 채소와 곡물, 향이 강한 뿌리채소와 씨앗, 그리고 발효식품까지, 하나하나가 몸의 특정 기능을 돕는 다양한 기능성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과 국립식량과학원은 이러한 성분을 국제 표준에 맞춰 분석하고, 국제 식품성분정보 공동연구사업(PTFI) 국가 연구실 허브로서 세계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되는 ‘기능성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또한 2026년도까지 현미·귀리·상추·고추·버섯 등 한국인이 실제로 많이 섭취하는 농식품 약 700점의 특수기능성분 정보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며, ‘K-농산물’의 가치를 숫자와 근거로 확인하는 기반을 넓혀가는 중이다.
색이 진할수록 강해지는 항산화력
블루베리·상추·고구마·현미·열무, 그리고 곡류 카로티노이드
진한 색을 만드는 안토시아닌, 플라보노이드, 카로티노이드 같은 색소 성분 계열은 대체로 항산화·항염 효과와 연관된다. 국산 블루베리는 품종에 따라 안토시아닌의 조성과 함량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 항산화·혈관 건강 등 효능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하였다. 이는 앞으로 기능성이 우수한 블루베리 품종을 육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일상 식탁에서 자주 만나는 상추는 플라보노이드·페놀산·안토시아닌 등 총 30종의 페놀화합물 유도체가 확인되었고, 특히 청색보다 적색 잎상추에서 페놀화합물 총량이 약 1.1~3배 높았다. 상추 추출물은 세포·동물실험에서 콜레스테롤 저하, 항염, 항당뇨 효과가 보고된 바 있어 돼지고기, 소고기 등 쌈을 싸 먹을 때 적색 상추를 고르는 선택이 건강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고구마의 경우 달다고 해서 단순 탄수화물로만 보기 어렵다. 확인된 30여 종의 페놀산 유도체가 품종과 부위에 따라 함량 차이가 뚜렷하였고, 특히 껍질 부분은 과육보다 훨씬 높은 페놀산을 함유하고 있어, 껍질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활용하는 조리법이 항산화 성분 섭취에 유리하다.
국산 현미(삼광)의 페놀산 주요 성분 및 최초 성분의 화학구조와 크로마토그램 ©국립식량과학원
국산 현미에서 확인된 5종의 페놀산 배당체는 시험관 실험에서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파골세포 분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입증되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주식으로서 현미 섭취가 뼈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김치 재료로 익숙한 열무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지상부에서 쿼세틴(quercetin)과 캠페롤(kaempferol) 계열 중심의 플라보노이드 배당체 18종이 확인되었고, 이 중 12종은 열무에서 처음 보고된 성분이었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산화·항염·대사 조절과 관련된 물질로 알려져, 평범한 열무김치 한 접시가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성분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곡류의 카로티노이드 연구를 위해 국산 쌀·보리·밀·옥수수·귀리 38종을 조사한 결과, 카로티노이드 함량은 옥수수, 흑미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옥수수는 특히 눈 건강에 중요한 제아잔틴(zeaxanthin), 흑미는 루테인(lutein)을 주성분으로 가지고 있다. 카로티노이드는 체내에서 프로비타민 에이(provitamin A), 황반을 보호하는 루테인·제아잔틴 등으로 작용하며, 노화 관련 황반변성, 심혈관질환, 뇌졸중 위험 감소와 관련된 연구 결과들이 보고돼 있다.
씨앗·뿌리·새싹에 농축된 사포닌
귀리·도라지·두릅
식물은 씨앗과 뿌리, 새싹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성분을 축적하는데, 사포닌이 대표적인 성분이다. 먼저 곡물인 국산 귀리 7품종에서 아베나코사이드 에이(avenacoside A)를 주성분으로 한 스테로이드계 중심의 사포닌 배당체 22종이 확인되었고, 이 중 7종은 귀리에서 세계 최초로 보고된 화합물이다. 귀리 사포닌은 면역개선·뼈건강·항암 등 다양한 약리 효과가 보고되어 있으며, 향후 의료식(메디푸드) 소재 개발에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RDA 기능성분 DB 3.0(사포닌 편) 표지 및 내용 ©국립식량과학원
전통적으로 기침·기관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도라지는 뿌리뿐만 아니라 새싹·잎·줄기에서도 플라티코딘 디(platycodin D) 등 30여 종 이상의 사포닌이 확인되었다. 특히 뿌리를 데쳤을 경우 사포닌 함량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고, 염증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예방에도 효과가 있어, 향후 호흡기 건강 관련 기능성 소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봄철 인기 산채인 두릅 역시 사포닌이 풍부하다. 참두릅 순에서는 50여 종 이상의 사포닌 배당체가 확인되었고, 이 중 상당수는 처음 보고된 성분들이다. 생두릅 100g에는 800mg을 웃도는 사포닌이, 살짝 데친 두릅에도 그에 버금가는 양이 남아 있어, 살짝 데쳐 쌈이나 무침으로 먹어도 성분 손실이 크지 않다. 두릅 사포닌은 면역강화, 항염증 등과 관련된 연구가 보고돼 있다.
이처럼 씨앗·뿌리·순 부위는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고농도 방어 성분의 저장고이다. 전통적으로 약초나 나물로 이용되어 온 소재들이 과학적으로도 높은 기능성 잠재력을 가진 자원임이 하나씩 증명되고 있다.
맵고 쓴 맛, 지방 속에 숨은 대사·뇌 건강 성분
고추·율무의 알칼로이드, 버섯의 파이토스테롤, 육류·가금류의 인지질
맵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알칼로이드와 지방과 함께 존재하는 지질계 파이토스테롤, 인지질도 중요한 기능성분이다. 매운맛을 내는 고추 열매에는 캡사이신(capsaicin)·디하이드로캡사이신(dihydrocapsaicin) 등 캡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 계열 알칼로이드가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이들 성분은 지방산 산화를 촉진해 체지방 분해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청양고추 100g에 28.7mg, 꽈리고추에 21.1mg의 알칼로이드가 확인됐으며, 디하이드로캡사이신은 캡사이신보다 위 자극이 적으면서 체중 조절과 신경 보호 효과가 잘 유지된다는 보고가 있어, 다양한 매운맛 고추 품종의 기능성 가치를 뒷받침한다.
율무 씨앗에서는 스퍼미딘(spermidine) 계열 알칼로이드 3종이 주요 성분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화합물은 혈액순환을 돕고 뇌 신경세포 염증을 억제해 노화에 따른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데 긍정적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율무차, 율무밥이 단순 잡곡을 넘어 뇌 건강을 위한 소재로도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다만 알칼로이드의 경우, 과량 섭취 시 부작용 우려가 있는 성분도 있으므로, 적정량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식습관이 중요하다.
지질계 기능성분의 대표인 파이토스테롤은 식물성 콜레스테롤로 불린다. 우리 식단에서 많이 먹는 곡류·채소·버섯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파이토스테롤은 특히 구운 버섯에 풍부했다(100g 기준, 새송이 66mg, 표고 64mg, 팽이 46mg). 현미밥이나 보리밥에도 18~25mg 수준으로 존재해, 곡류 역시 콜레스테롤로 인한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파이토스테롤은 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방해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인지질은 뇌와 신경 건강에 핵심적인 성분이다. 치매 예방과 관련된 5종의 인지질을 조사한 결과, 전반적으로 삶은 육류·가금류에서 높은 함량이 나타났고, 특히 닭 간(1193mg), 심장(615mg)처럼 부산물 부위가 두드러졌다. 곡류와 채소에도 상당한 양의 인지질이 들어 있어, 잡곡밥·채소·적정량의 육류를 함께 섭취하는 전통 한식 식단이 인지질 공급에도 균형 잡힌 구조임을 보여준다.
발효와 조리로 달라지는 기능성
청국장, 버섯, 곡류 카로티노이드
농산물의 기능성은 가공·조리·발효 과정을 거치며 또 한 번 변신한다. 대표적인 예가 청국장이다. 이소플라본 유도체 38종이 확인되었는데, 발효 전후를 비교해 보면 숙신산(succinate)·인산(phosphate)과 결합한 새로운 배당체들이 발생하여 증가했다. 일부 숙신산 결합 이소플라본은 동물실험에서 골 손실 억제 효과가 보고된 바 있어, 청국장이 뼈 건강에 도움 주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앞서 소개한 버섯의 파이토스테롤도 생버섯보다 구웠을 때 더 높은 함량을 보였는데, 이는 수분이 줄어들며 성분이 농축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곡류의 카로티노이드는 밥이나 오트밀처럼 열을 가하는 조리 과정을 거치면 24~85%까지 감소하는 경향이 있어, 조리법 선택에 따라 성분 섭취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어떻게 먹느냐”는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발효와 조리는 단순히 맛을 바꾸는 과정을 넘어, 특정 기능성분을 새로 만들거나 농도를 조절하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다.
기능성분 지도로 여는 K-농산물의 미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농산물에는 폴리페놀·카로티노이드·사포닌·알칼로이드·파이토스테롤·인지질·이소플라본 등 다양한 기능성분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농촌진흥청과 국립식량과학원은 국제 표준에 맞춰 우리 농산물에 대한 정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하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는 국민에게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강한 식단 선택 기준, 농업·식품 산업에는 고기능성 품종 육성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의 출발점, 연구자에게는 새로운 기능성 소재 발굴의 씨앗이 될 것이다.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화학식과 수치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밥상 위의 한 끼가 과학이 밝힌 기능성분을 품은 “K-농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다. 앞으로도 기능성분 데이터가 더 축적되고 촘촘해질수록, “기능성분이 우수한 우리 농산물”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글=김헌웅 국립식량과학원 식생활영양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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