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303]
잡곡, 내 건강에 맞춰 먹으려면?
건강을 생각해 흰쌀밥에 잡곡을 넣어서 먹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귀리, 수수, 조, 팥, 콩 등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잡곡의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그런데 막상 잡곡을 고르려고 하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종류가 많을수록 몸에 무조건 좋은 거 아니야?”, “우리 엄마가 당뇨 있으신데, 어떤 잡곡을 먹어야 하는 거지?”, “나 요즘 살찌고 혈압도 높은데, 살 빠지는 잡곡이 따로 있나?”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조건 많이 섞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입니다. 잡곡은 종류에 따라 들어있는 영양소와 기능성분 함량이 저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곡물의 가짓수만 늘리는 겉보기식 혼합이 아니라, 내 현재 건강 상태와 관리 목표에 맞춰 스마트하게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잡곡, 비슷해 보여도 성분은 천차만별!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지닌 잡곡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 들어있는 성분의 종류와 건강 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곡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양적 ‘필살기’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인데요.
귀리에는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인 베타글루칸이 풍부하여 콜레스테롤 수치 조절에 도움을 주며,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는 특별한 성분인 ‘아베난쓰라마이드 C’가 들어있습니다. 수수에는 우리 몸의 유해산소를 제거하고 세포 노화를 방지하여 젊음과 활력을 지켜주는 폴리페놀 및 플라보노이드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합니다. 콩과 팥에는 양질의 식물성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식후 천천히 소화되며 든든한 포만감을 주어 과식을 막아줍니다.
또한 조와 기장에는 우리 몸의 기본 대사에 꼭 필요한 칼슘, 마그네슘, 철분 등 다양한 무기질 성분이 듬뿍 들어있습니다. 곡물들이 하나로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놀랍게도 곡물 종류와 혼합 비율 등에 따라 당뇨병, 고혈압 등과 같은 대사증후군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혈당 스파이크 잡는 잡곡, 어떤 조합일까?
탄수화물이 풍부한 밥이나 빵을 먹으면 소화 과정을 거쳐 포도당이 생성되고 자연스럽게 혈당이 오릅니다. 식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가 반복되면 혈당 조절을 담당하는 우리 몸에 큰 부담이 되므로 단순히 먹는 양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탄수화물이 소화되는 속도를 천천히 늦춰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림1. 항당뇨·항고혈압 활성 우수 잡고 최적 혼합비율 © 국립식량과학원
이에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진이 정밀 분석한 결과 귀리, 수수, 손가락조(또는 조), 팥, 기장을 각각 ‘30 : 30 : 15 : 15 : 10’의 비율로 섞었을 때 간세포의 포도당 흡수율이 높아지고 공복 혈당이 감소하는 탁월한 효과를 확인했습니다.(Han et al., 2024) 이렇게 개발된 ‘항당뇨 혼합잡곡’은 단순한 곡물 조합을 넘어 특허 등록과 기술이전을 통해 실제 제품으로도 출시되어 연구실에서 시작된 똑똑한 건강 관리를 우리 집 매일 밥상 위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국립식량과학원
혈압이 걱정될 때도 똑같은 잡곡을 먹으면 될까요?
혈압과 혈당은 둘 다 식습관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 몸에서 조절되는 원리 자체는 완전히 다릅니다. 혈압은 짜게 먹는 습관 외에도 체중, 운동 부족, 스트레스, 음주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높은 혈압이 지속되면 심장과 혈관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평소 관리가 필수적이지요.
연구진은 혈당 관리용 혼합잡곡과 별개로 혈압 관리에 특화된 우수한 국산 잡곡들을 따로 선발하여 손가락조(또는 조), 수수, 팥을 ‘30 : 35 : 35’ 비율로 섞었을 때 혈관내피세포의 산화질소 생성량을 높이고 수축기 혈압을 낮추는 등의 효능을 확인(Jeong et al., 2024)하였습니다. ‘항고혈압 혼합잡곡’ 역시 특허 등록과 기술이전을 거쳐 고혈압 환자용으로는 국내 최초 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출시되는 등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밥상을 넘어 일상으로 : 선식부터 특수의료용도식품까지, 잡곡의 화려한 변신
이러한 연구 성과는 단순히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우리 일상 속 다양한 제품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특허 출원된 최적 혼합비율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10건의 기술이전을 완료했으며, 이를 통해 총 15종의 다채로운 가공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그림2. 항당뇨·항고혈압 혼합잡곡 제품화 사례 © 국립식량과학원
바쁜 현대인을 위한 간편 선식과 죽, 건강 간식인 잡곡 과자와 떡은 물론, 혈당과 혈압 관리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특수의료용도식품(음료)과 고령친화식품(냉동밥)으로까지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제 잡곡은 번거롭게 밥에 섞어 먹는 식재료를 넘어,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챙겨 먹는 ‘맞춤형 건강 라이프스타일 식품’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잡곡밥을 처음 먹는다면?
© 국립식량과학원
잡곡밥을 처음 시작할 때는 거부감이나 소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체 쌀 양의 10∼20% 정도부터 가볍게 시작해 소화 상태에 맞춰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콩이나 팥처럼 단단한 잡곡은 미리 충분히 불려 짓고 개봉 후에는 밀폐용기에 담아 서늘한 곳이나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해야 신선함이 오래 유지됩니다.
다만 잡곡은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건강관 리를 돕는 ‘식품’일 뿐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이 아니므로 당뇨나 고혈압 등으로 치료 중이시라면 반드시 꾸준한 병원 치료 및 운동을 병행해야 합니다. 특히 신장 질환이 있거나 소화 기능이 많이 약한 분은 잡곡 양을 늘리기 전 전문 의료진과 먼저 상담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많이 섞는 잡곡에서 나에게 맞는 잡곡으로!
잡곡은 오랫동안 우리 밥상에서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채워준 고마운 전통 식량자원이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섞어 먹는 곡물을 넘어 혈당·혈압 등 개인의 건강 목적과 고민에 맞게 골라 먹는 똑똑한 맞춤형 식품소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국산 잡곡의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항당뇨·항고혈압 혼합잡곡을 개발하고 특허 및 기술이전까지 성공시켰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여가고 있습니다.
잡곡을 가장 똑똑하고 건강하게 먹는 방법은 무작정 많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섞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건강 목적에 맞춰 과학적으로 조합된 잡곡을 적절한 양으로 꾸준히 섭취하는 지혜입니다. 오늘 우리 집 밥상 위에 올라가는 따뜻한 밥 한 공기부터, 내 몸에 딱 맞춘 맞춤형 잡곡밥으로 가볍고 건강하게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김현주 국립식량과학원 품질관리평가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 참고문헌
– Han, N., Woo, K. S., Lee, J. Y., Lee, H. G., Lee, J., Lee, Y. Y., Kim, M., Kang, M. S., & Kim, H. J.(2024). Comparative study on the effects of grain blending on functional compound content and in vitro biological activity. Scientific Reports, 14 : 12638.
– Jeong, E., Yun, D., Baek, Y., Kim, H. J., & Lee, H. G. (2024). Antihypertensive effects of the combined extract of Sorghum bicolor, Vigna angularis, and Eleusine coracana in spontaneously hypertensive rats. Scientific Reports, 14 : 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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