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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로열젤리 ‘젤리킹’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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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302]

꿀벌의 우수품종 개발과정 이야기

우리가 먹는 쌀에는 ‘삼광’, ‘신동진’ 같은 품종이 있고, 딸기에는 ‘설향’, ‘금실’ 같은 품종이 있다. 같은 작물이라도 더 맛있거나 수확량이 많고, 병에 강한 개체를 오랫동안 선발하고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꽃밭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꿀벌에도 ‘품종’이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꿀벌도 꿀을 잘 모으거나 질병에 강한 벌, 특정 양봉산물 생산에 유리한 벌을 선발해 품종으로 개발할 수 있다. 그런데 꿀벌의 품종 개발에는 다른 작물이나 가축과는 조금 다른 어려움이 있다. 여왕벌이 벌통을 떠나 하늘을 날며 여러 마리의 수벌과 교미한다는 점이다.

좋은 엄마벌과 아빠벌을 찾아냈다고 해서 둘을 한 벌통에 넣어주는 것으로 교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교미할 것인지까지 관리해야 비로소 원하는 꿀벌 품종을 만들 수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개발한 고품질 로열젤리 생산용 꿀벌 품종 ‘젤리킹’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수많은 꿀벌 가운데 좋은 부모벌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 바다 건너 섬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교배, 그리고 어렵게 만든 품종을 농가에 전달하는 과정까지. 젤리킹의 탄생 과정을 따라가 보면 꿀벌 품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젤리킹 여왕벌 ©국립농업과학원

1. 꿀벌에도 품종이 있다고?

꿀벌 한 봉군에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수벌, 수많은 일벌이 함께 살아간다. 이 가운데 다음 세대의 유전적 특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여왕벌과 수벌이다. 어떤 여왕벌과 어떤 수벌을 부모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자손들이 가진 특성도 달라질 수 있다.

꿀벌 육종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러 꿀벌 유전자원 가운데 원하는 특성을 가진 계통을 찾아내고 서로 교배한 뒤, 그 자손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평가한다. 한 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 특성이 다음 세대에서도 이어지는지, 환경이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나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해야 한다.

국립농업과학원이 주목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로열젤리의 품질이었다. 로열젤리는 어린 일벌의 머리 부분에 있는 분비샘에서 만들어지는 유백색 물질이다. 여왕벌을 기르는 데 중요한 먹이이면서 사람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양봉산물이기도 하다.

로열젤리에는 다양한 성분이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10-HDA(10-hydroxy-2-decenoic acid)는 로열젤리의 품질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 성분이다. 그렇다면 10-HDA 함량이 높은 고품질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꿀벌을 선발해 하나의 품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젤리킹의 개발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2. 수많은 꿀벌 중 F68과 D154를 찾아라

좋은 품종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좋은 부모를 찾는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보유하고 있던 다양한 꿀벌 계통을 대상으로 우수계통 선발과 생산력 검정을 진행했다. 여러 계통을 조합해 교배하고 로열젤리의 특성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조합이 나타났다. 바로 F계통 68번 봉군과 D계통 154번 봉군, 이른바 ‘F68’과 ‘D154’였다. F68과 D154를 교배한 FD 조합의 로열젤리에서 다른 교배조합보다 높은 10-HDA 함량이 확인됐다. 하지만 연구진은 여기서 바로 새로운 품종이라고 결론짓지 않았다. 선발한 F68과 D154의 자손세대를 확보하고, 이들이 가진 특성을 계속 확인했다.

2019년에는 국립농업과학원을 비롯해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충남 등 6개 지역에서 지역적응시험을 진행했다. 지역과 환경이 달라져도 결과는 이어졌다. FD 조합에서 높은 10-HDA 특성이 다시 확인됐다. 이러한 선발과 검증을 거쳐 고품질 로열젤리 생산에 특화된 꿀벌 품종 ‘젤리킹’이 탄생했다. 젤리킹의 육성내력에는 F68×D154 교배와 2016~2018년 생산력 검정, 2019년 지역적응시험이 기록돼 있다.

결국 꿀벌 육종은 단순히 ‘좋아 보이는 벌’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좋은 부모를 찾아내고, 자손을 만들고, 그 자손의 능력을 여러 해와 여러 지역에 걸쳐 확인하는 과정이다.

젤리킹 육성과정 ©국립농업과학원

3. 꿀벌의 ‘결혼식’은 왜 섬에서 열릴까?

좋은 부모벌을 찾아냈다면 이제 둘을 교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꿀벌 육종에서는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꿀벌의 여왕벌은 벌통 안에서 수벌과 교미하지 않는다. 벌통 밖으로 날아가 공중에서 여러 마리의 수벌과 교미한다. 따라서 F계통 여왕벌과 D계통 수벌을 준비했다고 해도 육지에서는 주변 양봉장에서 날아온 다른 수벌과 교미할 가능성이 있다. 몇 년에 걸쳐 좋은 부모벌을 찾아냈는데 엉뚱한 수벌과 교미한다면 그동안의 육종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연구진이 선택한 장소가 바로 ‘섬’이다.

외부 꿀벌과의 교배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서지역에 배치한 교미용 벌통 ©국립농업과학원

주변에 다른 꿀벌이 사육되지 않고 외부 수벌의 접근이 제한되는 섬에 원하는 계통의 여왕벌과 수벌만 배치하면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연 교배장이 된다. 꿀벌의 공중교미 습성을 억지로 바꾸는 대신, 교미가 이루어지는 환경을 격리해 원하는 부모끼리 만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젤리킹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려면 섬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젤리킹의 부모계통을 계속 지켜야 한다. F계통을 유지하는 곳에서는 F계통 여왕벌과 F계통 수벌을 교배하고, D계통은 D계통 여왕벌과 D계통 수벌을 교배한다. 이렇게 같은 계통끼리 교배해 다음 세대의 F와 D계통을 각각 확보한다.

F계통 ♀ × F계통 ♂ → 다음 세대 F계통

D계통 ♀ × D계통 ♂ → 다음 세대 D계통

그리고 실제 젤리킹을 생산할 때는 조합이 달라진다.

F계통 여왕벌 ♀ × D계통 수벌 ♂ → 젤리킹

여왕벌은 여러 D계통 수벌과 공중에서 교미한 뒤 수벌에게 받은 정자를 몸속의 ‘저정낭’에 저장한다. 이후 여왕벌이 낳는 수정란에서는 F와 D계통의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은 일벌들이 태어난다. 즉, 우리가 젤리킹 보급여왕벌이라고 부르는 여왕벌은 D계통 수벌과 계획적으로 교미를 마친 F계통 여왕벌인 셈이다. 좋은 부모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좋은 부모가 정확하게 만나도록 하는 것이 꿀벌 육종에서는 중요하다. 말하자면 외딴섬은 우수한 꿀벌 품종을 만들기 위해 아무 수벌이나 참석할 수 없도록 마련한 꿀벌의 특별한 ‘결혼식장’인 셈이다.

(왼쪽) 수벌군을 관리하는 모습 (오른쪽) 꿀벌 계통 유지와 젤리킹 생산 원리 ©국립농업과학원

4. 고품질 로열젤리를 만드는 꿀벌, ‘젤리킹’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든 젤리킹은 무엇이 다를까?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가장 큰 특징은 로열젤리의 품질이다. 젤리킹이 생산한 로열젤리의 10-HDA 함량은 2.75%였다. 장원벌은 1.94%, 일반벌은 1.89%로 조사됐다. 일반벌과 비교하면 젤리킹의 10-HDA 함량이 31.3% 높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젤리킹을 단순히 ‘로열젤리를 많이 만드는 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젤리킹의 핵심 육종 목표는 10-HDA 함량이 높은 고품질 로열젤리 생산이다. 양봉 현장에서는 꿀벌의 생태적 특성을 이용해 인공왕대를 조성하고 로열젤리를 생산한다. 어떤 품종의 꿀벌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산되는 로열젤리의 특성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왼쪽) 품종별 로열젤리 10-HDA 햠량 비교 (오른쪽) 여왕벌 육성과 로열젤리 생산에 이용되는 왕대 ©국립농업과학원

젤리킹은 로열젤리 이외의 특성에서도 일반벌과 차이를 보였다. 일벌 한 마리당 꿀 채집량은 16.2mg으로 일반벌의 14.5mg보다 높았고, 죽은 봉개유충을 제거하는 청소행동은 78.0%로 일반벌의 65.3%보다 높았다.

하지만 젤리킹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담겨 있는 특징은 역시 ‘고품질 로열젤리 생산에 특화된 꿀벌’이라는 점이다.

5. 좋은 품종, 개발했다고 끝이 아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품종 개발은 끝난 것일까? 사실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연구기관이 아무리 좋은 여왕벌을 가지고 있어도 몇 마리의 여왕벌만으로는 전국의 양봉농가가 이용할 수 없다. 어렵게 선발한 유전적 특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농가에 공급할 만큼 충분한 수의 여왕벌을 생산해야 한다. 농작물에서 우수한 품종의 종자를 단계적으로 증식해 농가에 공급하는 것처럼 꿀벌에도 ‘증식과 보급’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젤리킹 국가보급의 출발점은 국립농업과학원이 유지·보존하는 F와 D 기본여왕벌이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기본여왕벌 F와 D를 각각 증식해 원원여왕벌을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한 원원여왕벌을 도 농촌진흥기관에 보급한다.

원원여왕벌을 받은 도 농촌진흥기관에서는 각 계통을 다시 증식해 원여왕벌을 생산한다. 그리고 F계통 원여왕벌과 D계통 수벌을 계획적으로 교배하면 농가에 공급할 보급여왕벌 ‘젤리킹’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하는 계통끼리 정확하게 교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충남 보령 삽시도, 전북 군산 연도, 전남 영광 낙월도, 전남 진도 가사도, 경남 통영 사량도 등 5개 도서지역에 꿀벌자원육성품종증식장을 구축했다. 외부 꿀벌과의 교배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섬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부모계통을 증식하고, 농가에 보급할 젤리킹 생산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섬들은 단순히 벌통을 가져다 놓고 꿀벌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연구기관이 오랜 시간 선발한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지키고 늘려 농가까지 연결하는 ‘꿀벌 품종 생산기지’라고 할 수 있다.

꿀벌 우수품종 국가보급체계 ©국립농업과학원

6. 벌통에서 화장품까지, 젤리킹의 새로운 가능성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한 번 더 확장된다. 고품질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꿀벌을 개발하고 농가에 보급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꿀벌 품종 하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로열젤리는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양봉산물이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 국산 로열젤리의 피부 건강 개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국산 동결건조 로열젤리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로열젤리의 지표 성분인 10-HDA의 피부 관련 기능성을 조사했으며, 이후 국산 로열젤리를 함유한 화장품의 인체적용시험도 진행했다. 0.5% 로열젤리를 함유한 화장품을 12주간 사용한 결과, 로열젤리가 들어 있지 않은 제품과 비교해 피부 주름과 관련된 지표들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은 당시 주름 관련 지표가 약 14~21%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술은 산업체에 이전됐고, 이를 활용한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를 거쳐 피부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으로 등록됐다. 여기에서 젤리킹 국가보급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로열젤리의 피부주름 개선 효과를 평가하는 모습과 인체적용시험 결과 ©국립농업과학원

좋은 기능성을 가진 소재가 있더라도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일정한 품질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젤리킹의 보급이 확대되고 고품질 국산 로열젤리 생산기반이 갖춰진다면 화장품을 비롯한 다양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국산 로열젤리를 원료로 활용할 가능성도 함께 넓어질 수 있다.

이는 양봉농가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양봉산업은 벌꿀 생산 비중이 높아 꽃이 피는 시기의 기상 여건 등에 따라 생산량과 농가소득이 영향을 받기 쉽다. 로열젤리와 같은 다양한 양봉산물의 생산과 산업적 활용이 확대된다면 벌꿀 중심의 소득구조를 다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좋은 꿀벌 한 마리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우수품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꿀벌 가운데 좋은 부모를 찾아내고, 그 자손의 능력을 여러 해와 여러 지역에서 확인해야 한다. 어렵게 확보한 부모계통을 다음 세대에도 유지해야 하고, 외부 꿀벌과 섞이지 않도록 바다 건너 섬에서 계획교배도 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종에서 원원여왕벌, 원여왕벌, 보급여왕벌로 이어지는 증식체계를 거쳐야 비로소 농가가 이용할 수 있는 품종이 된다. 좋은 유전자를 ‘찾고’, 그 특성을 ‘지키고’, 필요한 만큼 ‘늘리고’, 농가까지 ‘전달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모여 하나의 꿀벌 품종이 완성된다.

‘젤리킹’은 꿀벌 품종을 개발하는 일이 연구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업과 산업을 연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이창훈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농업주사보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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