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 일기 131]
오래된 시골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보수공사를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데크가 망가지고, 보일러가 고장 나고, 갑자기 지하수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큰 공사야 전문가를 불러 해결하지만, 소소한 문제들은 내가 직접 처리하곤 했다. 시골에서는 전문가를 찾는 게 쉽지가 않고, 또 매번 전문가를 부르려면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이 시골에 살다 보니 집에 웬만한 공구는 없는 게 없고, 내 집수리 기술 역시 많이 향상된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고장이 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있으니 바로 심야전기 온수기와 보일러다. 다른 건 그럭저럭 고치겠는데 아직도 그들만큼은 내 능력 밖이다.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있는 물통을 분해할 수도 없고, 도대체 물통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도 없다. 거기에다가 한 번 고장 났다 하면 무조건 목돈이 들어간다.
매번 보일러로 목돈이 들어간다고 투덜대자 지인 한 분이 말씀하셨다. “도시 아파트에 살아도 관리비를 내잖아요. 시골서는 관리비를 모았다가 고장 날 때 한꺼번에 내는 거죠!”
집 짓고 곧바로 만든 데크. 18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다 뜯어고쳤다. ©윤용진
몇 년 전에도 전기온수기가 고장 났다. 새벽에 세면대 물을 틀었는데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엥? 분명히 찬물을 틀었는데? 너무 놀라 주방으로 달려가 싱크대 물도 틀었는데, 그곳에서도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우리 집이 온천이 되었을 리는 만무하고,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
일단 심야전기 온수기 전원부터 차단했다. 이런 내 모습이 꽤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갈팡질팡했는데 이제는 자주 겪다 보니 이골이 났나 보다.
갑자기 온수관과 냉수관이 바뀌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역류한 것 같다. 집 밖에 있는 수도를 틀어놓고 10분쯤 지나자 비로소 찬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세면대에서도 싱크대에서도 찬물이 나왔다. 천만다행이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온수기가 폭발하거나 배관이 다 녹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지하수도 새면 내가 고친다. 그까짓 땅 파는 일 쯤이야… ©윤용진
우리 집 온수기가 빨리 망가진 이유는 지하수 때문이다. 나중에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지하수에는 미네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온수기 안에 침전물이 쉽게 쌓인다고 한다. 아마도 그 때문에 센서가 물 온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나 보다.
결국 온수보일러를 새것으로 교체했는데, 나중에 뜨거운 물이 역류한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싱크대 수전에서 물이 졸졸 새기 시작했고, 세면대 수전에서도 물이 새기 시작했다. 결국 수전들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거실 화장실에서 샤워하는데도 문제가 발생했다. 물 새는 곳도 없고 찬물은 콸콸 잘 나오는데, 다만 뜨거운 물만 졸졸 나왔다. 여름에는 그럭저럭 참을만했는데, 겨울이 되자 물이 차가워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겨우내 안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언제까지 불편하게 살 수는 없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예전에 집 지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봤다. 그때 꼼꼼하게도 집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놨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슨 공사를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테니까.
아, 배관이 이랬었구나! 사진 없이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윤용진
사진 오른쪽 벽 바깥쪽이 보일러실이다. 보일러실에서 배관이 들어온 다음 집안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데, 제일 가까운 곳이 바로 거실 샤워기가 있는 곳이다. 아마도 온수보일러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까운 이곳 배관이 일부 녹아버렸나 보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이곳에서만 뜨거운 물이 졸졸 나오니까.
원인은 찾은 것 같은데 해결 방법은 쉽지 않아 보였다. 타일이 붙어 있는 샤워실 벽을 뜯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할 집인데, 불편한 채로 마냥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안방 화장실에서 샤워하면 되잖아!”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벽을 뜯어냈다. 그나마 아직 힘과 의욕이 있을 때 수리해야 한다. “천천히 일해도 일주일이면 끝날 거야!” 투덜대는 아내를 억지로 조수로 임명했다. 나 혼자서 수리하기는 벅차니까.
이제 모종도 다 심었고, 마당에는 꽃도 예쁘게 피었다. ©윤용진
어라, 그런데 이게 뭔 일이래? 분명히 쭈그러들었어야 할 엑셀 파이프가 멀쩡해 보였다. 엑셀 파이프가 미지근한 것을 보면 뜨거운 물이 잘 올라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해바라기 샤워기? 시험 삼아 다른 수전을 연결해 봤더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바로 샤워기 수전이 문제였다. 수전만 바꾸면 될 일을 벽까지 뜯어냈으니 이를 어쩐다? 멀쩡한 것을 뜯어냈으니 어이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단순해 보이는 샤워기 수전이 고장 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샤워기 수전 내부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들어있다고 한다. 너무 억울해서 무슨 고장인지 내부를 보고 싶었는데, 분해가 어려워 뜯어보지도 못했다. “내가 비싸더라도 샤워기 수전 좋은 거 사라고 했잖아!” 옆에서 조수 노릇을 하던 아내가 툴툴거렸다. 난들 이럴 줄 알았나?
사실 초보일 때 공사한 타일이라 줄눈도 삐뚤거리고, 욕실 내부를 보수할 때가 되긴 했다. 사진 속 날짜를 보니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갔다.
타일을 새로 붙이고 수전도 교체했다. 이번에는 좀 비싼 걸로. ©윤용진
공사를 마무리하는 데는 예상대로 딱 일주일이 걸렸다. 타일 뜯는데 하루, 바닥 시멘트 공사에 하루, CRC 방수 보드 설치에 하루, 방수액 바르고 말리는데 하루, 타일 붙이는데 하루, 줄눈 넣는데 하루, 끝으로 새로 산 해바라기 수전 설치에 하루. 먼지를 뒤집어쓰며 타일을 뜯어내는 일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뜯어낸 타일을 치우는 건 내가 아닌 조수인 아내 몫이었지만,
욕실 공사는 한꺼번에 후딱 해치우는 게 아니고, 천천히 말려가며 시공해야 한다. 빠른 것보다는 앞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시공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더구나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니 느긋하게 쉬어가며 일을 해도 된다. 힘은 좀 들었어도 별문제 없이 수리를 끝마쳤으니 다행이다.
새로 설치한 수전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린다.
난 아직 제법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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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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