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공모전
장려상 : 박영순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삶
농업과 농촌은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콘텐츠 공모전’에선 경남 산청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을 대상으로 치유농업을 통한 회복과정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주신 참기름 한병에 담긴 감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25년엔 기존의 글 콘텐츠 부문이외에 웹툰 부문을 추가했습니다. 1월부터 더농부·농다락 블로그에서 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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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아, 산청에서 래프팅 사업 한번 해보면 어때?”
2005년 봄, 남편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35년을 산 나에게 ‘산청’은 지도에서나 보던 곳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볼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름이면 남편은 산청에서 래프팅과 숙박업으로 바빴다. 나는 부산에, 그는 산청에. 신혼인데도 여름 내내 따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목욕탕 하나 지어야겠다. 손님들이 너무 불편해하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밥도 겨우 하는 사람한테 뭔 목욕탕이고.” 그러자 남편이 덧붙였다. “3년만 해보자. 그때 다시 내려가면 되지.” 그 말을 믿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청으로 향했다.
계획도 확신도 없었다.
다만 ‘떨어져 살 순 없다’는 마음 하나였다.
산청에서의 삶은 낯설고 두려웠다. 건물 대신 산이 있었고, 자동차 소리 대신 벌레 소리가 들렸다. 밤이면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목욕탕이 열리자 새벽부터 밤까지 청소하고 식당 일을 했다. 손에는 기름때가, 팔에는 데인 자국이 남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혼하자.”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렸지만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버텼다. 이미 삶은 시작됐고, 돌아갈 길은 없었다.
세월은 쉼 없이 흘렀다. 처음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지만, 어느새 손님 맞는 일도 익숙해졌다. 남편이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생강이고, 저건 벼다.” 흙에서 자라는 생명이 그렇게 신기할 줄 몰랐다. 호박씨를 심고 싹이 돋는 걸 보며 웃었다. 봄엔 상추, 여름엔 오이, 가을엔 무, 겨울엔 갓을 심었다. 햇살의 단맛이 밴 채소 맛을 그제야 알았다.
이웃들도 마음을 열었다. “이거 두릅이야, 나물 해 먹어봐.” “김장할 건데 와서 도와.” 그렇게 함께 밥을 짓고 웃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정이 흙냄새처럼 번졌다.
십 년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산청에서 살아도 되겠네.’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사라졌다. 경상도 억양이 익숙해졌고,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을 척척 만들어 냈다. 빠른 도시의 시계보다 느린 산청의 시간이 더 편안했다.
스무 해가 흘렀다. 딸은 경찰 시험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들은 산청으로 돌아와 헬스장을 열었다. 처음엔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텃밭에서 채소를 따고 말린 호박고지를 준비한다. 아들이 문을 열며 묻는다. “엄마, 오늘 뭐 해 먹어?” 그 말 한마디가 지난 세월의 위로가 된다.
밤이면 별이 쏟아지고 새벽이면 안개가 강 위로 피어오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새싹이 돋는 아침, 이웃과 나누는 밥 한 끼, 노을이 산을 물들이는 저녁. 그것들이 하루를 완성했다.
쉰여섯의 지금, 나는 안다. 떨어져 사는 삶보다 함께 살아낸 시간이 더 단단하다는걸.
흙은 내 손끝에서 생명을 피웠고, 사람의 마음은 내 삶을 채워 주었다.
잠시 머무르려던 이 땅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2025 농촌진흥청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 박영순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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