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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12코스, 평화누리길, DMZ 사색(四色)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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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옥녀봉 그리팅맨/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연천 옥녀봉 그리팅맨/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투어코리아=정명달 기자]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DMZ 접경 지역(김포, 고양, 파주, 연천) 4개 시군을 잇는 최북단 도보 여행길이다. DMZ 인근 철책선을 따라 걸으면서 분단 현실을 체감하는 것은 물론 뛰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길로도 유명하다. 2010년 개장한 평화누리길은 총 12개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길이는 약 189km 안팎이다. 김포 3코스, 고양 2코스, 파주 4코스, 연천 3코스로 구성돼 있다.

DMZ와 인접한 평화누리길은 사계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절별 색깔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다”는 점에서 경기도는 ‘DMZ 사색(四色)하다’라는 주제로 월별 가볼만한 평화누리길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달은 설 연휴를 앞두고 겨울철 가볼만한 평화누리길 12코스를 소개한다.

■ 연천군에 자리한 통일이음길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한 평화누리길 12코스의 이름은 ‘통일이음길’이다.

이 길은 대한민국의 허리를 관통하던 철도, 경원선을 따라 걷는다. 신탄리역, 대광리역, 신망리역. 지금은 잠시 멈춰있는 기차 대신 사람의 발걸음만이 이어지는 세 개의 역은 분단의 시간과 일상의 풍경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한때 북으로 향하던 철길이 멈춘 자리에서, 통일이음길은 묵묵히 남과 북을 잇는 상징 같은 길이 되었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멈춰 선 역사 위를 천천히 되짚는 경험이다.

고대산 역고드름/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고대산 역고드름/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 연천 고대산 자락에서 만난 ‘역고드름’

통일이음길의 인상적인 시작은 강원도 철원과 맞닿은 끝자락, 폐터널 속 ‘역고드름’이다. 연천의 역고드름은 경원선 철길 아래 남아 있는 오래된 터널에서 만날 수 있다. 터널 바닥에는 수백 개의 고드름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마치 얼음 숲에 들어온 듯하다.

이 신기한 풍경은 2005년, 마을 주민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전쟁으로 터널 상판에 생긴 균열 사이로 스며든 물이 얼어붙으며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그때 밝혀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는 이유는 두 가지다. 떨어진 물이 바닥의 얼음 위에 반복해 맺히며 위로 자라기도 하고, 얼음 표면의 미세한 물분자가 지하의 물을 끌어올려 고드름을 키우기도 한다.

위아래로 자란 고드름이 맞물린 터널 안은 마치 입을 벌린 상어의 이빨처럼 보인다.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만날 수 있는 이 풍경은,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 떼처럼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 역고드름처럼 거슬러 걷는 길

평화누리길 12코스는 역고드름처럼 ‘거슬러’ 걷는 길이다. 자연과 시간, 역사를 거슬러 걷는 느낌이 이 코스의 매력이다. 길은 고대산 자락을 스치듯 지나간다. 고대산 자연휴양림의 겨울 풍경은 조용하고 단정하다. 눈 덮인 숲길과 차분한 공기가 걷는 이를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든다.

신탄리역에서 대광리역, 다시 신망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동두천~연천 전철화 사업으로 전철1호선이 연천역까지 연장 운행되어 현재는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있다. 대신 차탄천 천변길이 걷는 이의 동반자가 된다. ‘차탄천’이라는 이름은 ‘수레여울’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초, 이방원이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가던 길에 수레가 빠졌다는 설화도 함께 흐른다.

길은 옥계리로 이어진다. 이곳은 한때 38선 이북, 북한의 땅이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제4사단이 전진 배치되었고, 이후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이 번갈아 오가며 전선이 수없이 바뀌었다. 지금은 조용한 마을이지만, 땅속에는 치열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종착 무렵, 평화누리길 어울림센터가 나타난다. 종주자들의 쉼터이자 인증샷 명소다. 어울림센터에는 평화누리길 12개 코스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인근 연천 로하스파크를 지나 옥녀봉에서 노선을 잠시 벗어나면 ‘그리팅맨’ 조각상이 길손을 맞는다. 1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 이 조형물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상징한다. 해발 205m의 옥녀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연천 전경은, 걷는 동안 쌓인 생각을 말끔히 씻어준다.

평화누리길 어울림센터/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평화누리길 어울림센터/투어코리아뉴스 정명달 기자

■ ‘거꾸로·느림의 미학’과 함께 걸어보는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은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지가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이 쌓이는 길이다.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처럼, 이 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방향을 다시 묻게 만든다. 멈춘 철길 위에서 이어지는 발걸음,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다.

걷다 보면 ‘통일’이라는 단어를 굳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그 의미가 부풀어 오른다. 역이 세 개나 이어지는데도 기차 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 바람 소리와 발밑 자갈 소리, 차탄천 물소리가 길을 채운다. 이 고요함이 오히려 많은 말을 건다. “우리는 무엇을 잇고 싶었을까, 무엇을 멈춰 세웠을까.” 통일이음길은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기는 길이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연천의 겨울이 끝나갈 무렵, 너무 멀리 떠나지 않고도 ‘걷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싶다면 평화누리길 12코스는 꽤 좋은 선택이다. 특히 역고드름이 남아 있는 2월이라면, ‘거꾸로’라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 길을 걸을 이유가 충분하다. 한 걸음씩 걸어 내려오며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코스, 걷고 나면 괜히 누군가에게 “한번 걸어봐” 하고 권하고 싶어지는 길. 통일이음길은 그렇게, 오늘의 우리 일상 속에서 조용히 ‘잇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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