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문 닫았던 브랜드
중국 기술로 공장 다시 돌렸다
유럽차 간판 달고 나오는 픽업 정체
한때 유럽 곳곳을 누비던 자동차 브랜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들이 많다. 스페인 산타나 모터스 이야기다. 2011년 생산 중단 이후 이름조차 잊혀졌던 브랜드가, 뜻밖의 파트너와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부활의 열쇠는 중국이다. 전통적인 유럽 완성차 업체가 아닌,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과 손을 잡으며 공장을 재가동했다. ‘유럽 브랜드의 부활’이라는 말 뒤에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힘의 이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산타나의 복귀는 단순한 브랜드 재출범을 넘어선다. 유럽 생산, 중국 기술,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조합은 앞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자주 보게 될 풍경을 예고한다.
유럽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다시 숨을 쉬다

산타나 모터스는 1950년대 스페인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1958년부터 랜드로버를 라이선스 생산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차량을 수출했다. 1980년대에는 자체 모델을 개발했고, 1985년부터는 스즈키와 협업하며 SJ 시리즈 등을 생산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재정난이 본격화됐다. 공적 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2011년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다. 유럽 자동차 산업의 쇠락 사례 중 하나로 남을 뻔한 순간이었다.
상황을 뒤집은 건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이다. 산타나는 중국 동풍·정저우 닛산과 손잡고, 이들의 픽업트럭을 기반으로 한 신차 생산을 스페인 리나레스 공장에서 재개했다. 유럽 브랜드 명판을 단 중국 플랫폼 차량이 다시 유럽 땅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첫 주자는 ‘400D’와 ‘400 PHEV’ 픽업이다. 외형과 구조는 중국 Z9 픽업과 유사하지만, 산타나 엠블럼을 달고 스페인에서 조립된다. 400D는 2.3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88마력, 최대토크 50kgf·m를 발휘한다. 수동 6단 또는 자동 8단 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으며, 견인력 3.2톤을 확보했다. 유럽 픽업 시장에서 요구하는 실용성 기준은 충분히 충족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400 PHEV는 더 공격적이다. 1.5리터 엔진과 전기모터, 32kWh 배터리를 조합해 시스템 출력 422마력을 낸다. 전기모드만으로 최대 120km 주행이 가능하며, 총 주행거리는 1,000km를 넘긴다.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노린 구성이다.
가격·옵션·전략까지, 계산된 복귀

산타나가 내세운 가장 큰 무기는 가격이다. 400 PHEV는 2만9,900유로(약 4,300만 원)부터 시작하며, 디젤 모델은 4만4,700유로(약 6,400만 원)다. 스페인 기준 포드 레인저와 정면으로 겹치는 가격대다.
구성도 만만치 않다. 대형 디지털 계기판과 14.6인치 디스플레이, 통풍·열선 시트, 무선 충전,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이 기본 또는 상위 트림에 포함된다. 픽업트럭이 ‘일하는 차’에 머물러 있던 유럽 시장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접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산타나는 중국 BAIC과도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BAIC 차량을 반조립 형태로 들여와 스페인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2026년부터 2028년까지 SUV와 오프로더 라인업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초기에는 기존 BAIC 모델의 리뱃지 버전이 중심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 개발 모델도 예고했다. 플랫폼은 중국, 디자인과 브랜드 정체성은 산타나가 맡는 구조다. 과거 라이선스 생산으로 시작했던 브랜드가, 정반대 방식으로 다시 생존 전략을 택한 셈이다.
산타나의 선택은 현재 유럽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다. 독자 개발로는 경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기술과 자본을 활용해 생산 기반과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유럽차의 몰락’이 아니라, 유럽차의 생존 방식 변화에 가깝다.
부활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변수

산타나의 복귀는 감성적인 스토리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유럽 소비자들이 중국 기반 차량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브랜드 역사와 생산지가 신뢰를 보완해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하나의 변수는 가격 경쟁력 유지다. 현재는 공격적인 가격이 강점이지만, 향후 관세·정책·환율 변화에 따라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전동화 정책 변화에 따라 PHEV의 입지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하나다. 산타나는 과거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과 손잡은 유럽 브랜드라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시장에 던져졌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지금, 산타나의 부활은 낯설지만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사라졌던 다른 유럽 브랜드들의 귀환 방식도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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