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123]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다. 추운 날씨에 감기도 조심해야하고, 혹시 눈이라도 내리면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한다. 공연히 밖으로 나돌다 미끄러지는 날에는 어디가 부러질지도 모르니까.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니 조심 또 조심이다. 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두꺼운 옷을 껴입고라도 무조건 밖으로 나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우내 집안에서 버티려니 죽을 맛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청남대는 어때?” 아내가 제안을 했다. 집 가까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가 보지 못한 곳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청남대도 그중의 하나인데, 최근에 도로가 새로 개통되며 집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가 있다.
새해 들어 첫 눈이 왔다. 혹시 눈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윤용진
그런데 그곳에 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나? 번거롭게 예약까지 하느니 그냥 몸으로 부딪혀 보려한다. 그까짓 것 못 들어가면 드라이브한 셈 치면 되니까. 물론 믿는 구석이 조금은 있었으니 지금 같은 한 겨울에, 그것도 평일에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청남대 입장권이 매진되었을 리가 없다. 무작정 근처 맛 집을 찾아 점심부터 먹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그곳을 찾았는데 역시 내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청남대는 대청호를 끼고 만든 대통령 별장으로, 전두환 대통령 때 만들어졌고(1983년) 노무현 대통령 때(2003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대통령 별장이라니 과연 얼마나 멋있게 만들었을지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개방 후 새로 만든 대통령 기념관건물에는 청남대를 이용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과 서명, 그분들이 사용했던 물건들과 (노무현 대통령이 타시던 자전거도 있었다), 외국에서 선물로 받은 다양한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 한쪽에서는 가훈을 붓글씨로 써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겠지만 역시 평일에는 한가하다. “공짜라는데 우리도 가훈을 써 달라고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해야 했다. 우리 집 가훈을 대놓고 말하기는 조금 쑥스러웠으니까.
역대 대통령들의 서명. ©윤용진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집 가훈 얘기를 좀 해야겠다. 예전에 글을 읽다 재미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버티는 놈이 이긴다!’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깊은 인생경험이 담겨있는 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경쟁을 하며 살아왔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인지 모른다. 이기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붓는다. 그런데도 이기기는 힘들다. 또 어쩌다 이긴다 한들 계속 정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왜 유명한 선수들도 정상에 도달하면 으레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가?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하다 지치면 포기하고 돌아선다. “포기하는 게 낫겠어!” “아무래도 내 능력으론 안 되겠어!”그래서 인생은 아쉬움도 많고 후회도 많다.
그런데 만약 이길 필요가 없고,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된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다. 단지 버티는 거라면 온 힘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된다. 그냥 버티기만 했는데, 살다 보니 기회가 찾아온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니 남들이 먼저 지쳐 포기한 때문이다. 물론 버틴다고 누구나 다 성공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언젠가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는다.
대통령 가족실. TV와 전축, 피아노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윤용진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남들은 대기업을 다니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자그마한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생활비를 벌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차라리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라고 조언도 했지만, 그 친구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버티던 그 친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 대부분의 친구들은 은퇴를 하고 그럭저럭 먹고만 산다. 평생 월급쟁이해서 큰돈을 번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떵떵거리고 신나게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역시 세상은 버티는 놈이 이기기 마련이다. 나도 진즉에 그 뜻을 깨우쳤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곧바로 우리 집 가훈을 바꿨다. 귀촌 후에 만든, ‘사 먹기 비싸면 키워서 먹자!’라는 세상 사는데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우리 집 가훈을 ‘버티는 놈이 이긴다!’로 바꾸었다.
아빠의 인생철학이 담긴 가훈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아들 녀석은 킥킥거리기만 한다. 하물며 그런 가훈을 붓글씨로 써 달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더더욱 없었고.
책상 하나 덜렁 있는 집무실에 혼자 있으려면 좀 외로웠을 것 같다. ©윤용진
청남대에서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장소는 실제로 대통령들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별장은 예상만큼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물론 40년 전의 건물이고, 일반에게 개방한 이후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을 테니 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실내도 방들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빼면 그리 새로운 것도 없는 모습이었다. 건물 내부는 예전에 유행했던, 약간은 무겁고 칙칙한 색의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도 다소 작아 보였고, 전체적으로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였다. 더구나 집에서는 호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나무들을 키웠다. 보안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대통령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면서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을 거쳐 간 대통령들 중에 아직까지 살아계신 분은 아무도 없다. 한때 온갖 명예와 권력을 누렸을지는 몰라도 그 누구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다. 잠시 왔다 사라지는 것들인데, 권력을 위해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싸워야했나 싶기도 하다. 물론 권력이라곤 평생 근처에 가 본적도 없는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과연 역대 대통령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깔끔하게 단장된 정원이 대청호와 어우러져 더욱 멋있다.
한낮인데도 찬바람이 불어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조금 추웠다. 밖에서 구경을 하며 몇 시간도 보낼 수 있는 규모이지만, 이번에는 한 시간정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조경수 하나하나마저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대청호와 어우러진 정원의 멋진 모습은 봄이나 가을에 보면 더욱 멋있을 것 같다.
인생을 꼭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누구든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막상 따지고 보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에 올라서려 끊임없이 싸운다. 더욱이 우리는 역사전체를 통틀어 끝이 좋았던 권력은 거의 없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평범한 촌부인 나는 그저 오늘도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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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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