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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트로피보다 더 값진…오늘 또 한알의 씨앗을 심는다

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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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상 : 유영석

링 위에서 흙으로, 나의 두 번째 라운드

농업과 농촌은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콘텐츠 공모전’에선 경남 산청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을 대상으로 치유농업을 통한 회복과정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주신 참기름 한병에 담긴 감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25년엔 기존의 글 콘텐츠 부문이외에 웹툰 부문을 추가했습니다. 1월부터 더농부·농다락 블로그에서 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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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뽀얀 안개가 덜 걷힌 사과밭의 공기는 사이렌 소리와 매연으로 가득했던 도시의 그것과 밀도가 다릅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는 이곳에서 단단한 흙을 밟고 서면, 치열했던 링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지난날의 제가 아득해집니다. 사과나무에 보석처럼 맺힌 이슬을 닦아내다 문득 거친 제 손을 내려다봅니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힌 투박한 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꽉 쥐었던 주먹이지만, 지금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기 위해 흙을 파고 씨앗을 심습니다. 이 고요한 평화가 믿기지 않을 때면, 저는 가끔 모든 것이 소음과 경쟁이었던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을 떠올립니다. 링 위에 쓰러져 마지막 카운트 소리를 듣던 순간, 제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너짐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단단한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가장 완벽한 준비운동이었음을 저는 이제 압니다.

2025년, 청년농업인으로 선정되며 야심 차게 고향 예산에 돌아왔습니다. 스마트농법과 데이터 농업. 책과 영상으로 배운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했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농사와 온몸으로 부딪히는 농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

링 위에서는 정해진 규칙과 상대만 분석하면 됐지만, 예측 불가능한 자연 앞에서는 매일이 새로운 변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평생 흙과 함께해 온 부모님의 눈에는 스마트폰으로 토양의 산도와 예상 강수량을 검색하는 아들이 영 못 미더우셨을 터. “농사는 네모난 기계가 아니라, 흙이랑 대화하며 배우는 거다!” 혀를 차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때로는 서운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비료 포대를 나르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 흙이 잔뜩 낀 손톱으로 작물의 상태를 살피시던 그 눈빛이 그 어떤 데이터보다 정확한 교과서임을 조금씩 깨달아 갔습니다.

부모님의 오랜 경험과 저의 새로운 시도가 만나는 지점이 필요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닌, 시너지를 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저희 가족의 자부심을 담은 온라인 스토어 ‘나무와 과일’입니다. 부모님의 정성과 세월이 담긴 사과를 세상에 직접 선보이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상품을 올리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순간, ‘딩동!’ 하고 울린 첫 주문 알림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정직하게 키운 사과는 맛으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그 맛이네요. 정말 달고 맛있어요’라는 첫 후기가 달렸을 때, 링 위에서 듣던 그 어떤 함성보다 더 큰 힘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제 이름으로 땅을 빌려 사과, 마늘을 심으며, 온전히 저만의 도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는 제가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정직한 결실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매일 온몸으로 배우는 중입니다.

과거의 저는 땀의 의미를 오직 승패라는 결과로만 배웠습니다. 승자의 환호, 혹은 패자의 침묵.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곳 고향에서 흙을 만지며, 땀은 과정 속에서 더 빛나며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가장 정직한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키운 작물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건강한 한 끼가 되고, 잠시나마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면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낍니다.

그것이 지금 제게는 그 어떤 승리의 트로피보다 값집니다. ‘나무와 과일’이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처럼, 사람들에게 건강한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오늘, 저는 다시 흙에 씨앗을 심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제보다 더 단단하고 희망찬 저의 내일을 키워낼 소중한 씨우수상앗을 말입니다.

2025 농촌진흥청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 유영석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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