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301]
지구의 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곰팡이
곰팡이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방치된 빵에 푸르거나 검게 피어 식품을 오염시키는 존재, 어둡고 습기 많은 가구 뒤쪽이나 벽면에 발생하여 우리의 생활을 방해하는 존재. 우리는 대개 이런 모습으로 곰팡이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곰팡이는 우리에게 피해만 끼치는 적일까요?
빵 발생 검은 아스페곰팡이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홍승범
1. 곰팡이란?
‘곰팡이’라는 이름은 ‘곰피다’와 작고 하찮은 존재를 뜻하는 ‘-앙이’가 결합한 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는 흔히 곰피는 하찮은 생물 정도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실제로 곰팡이는 하찮은 생물이 아닙니다.
곰팡이는 지구의 5대 생물 그룹 중 하나입니다. 지구에는 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생산자(식물)가 있고, 이를 먹고 사는 소비자(동물)가 있으며, 이들을 분해하는 분해자(미생물)가 있습니다. 미생물은 세균, 원생생물, 곰팡이로 구성되는데, 현재까지 보고된 미생물 종수는 약 20만 종으로 추정되며 이 중 곰팡이가 약 15만 종, 세균이 약 3만 종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곰팡이와 세균은 분해자로서 주로 상대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곰팡이는 물기가 많지 않은 곳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 물기가 적은 식물을 주로 상대하고, 세균은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 물기가 많은 동물을 주로 상대합니다.
농업은 식물을 키워 곡물, 과일, 채소 등을 얻는 산업입니다. 미생물 중 곰팡이가 식물의 파트너인 만큼, 농업은 곰팡이와 연관성이 높은 산업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곰팡이는 자연대학이나 의과대학보다 농과대학에서 주로 다루고, 세균은 반대로 자연대학·의과대학에서 주로 다룹니다.
아스페곰팡이, KACC 46500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홍승범
2. 식물병원균
그렇다면 곰팡이는 식물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될까요? 먼저 곰팡이는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먼저 알려지는 이는 흔히 사고를 치는 나쁜 사람인 경우가 많지요. 세균의 경우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종류가 훨씬 많지만, 탄저균·콜레라균·결핵균 같은 인체 병원균 먼저 알려진 것과 비슷합니다.
식물병원균도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800년대 중반 발생한 감자 역병은 약 800만이었던 아일랜드의 인구를 절반 수준인 400만대로 떨어뜨렸습니다. 약 2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일랜드 인구는 당시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자 역병균(Phytophthora infestans)은 당시 아일랜드의 주식이던 감자밭을 휩쓸었고, 이로 인해 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굶주림을 피해 당시 미개발지였던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감자 역병균은 미국에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여 산업 발전과 서부 개척에 도움을 준 셈이 되었습니다.
서양에 감자 역병균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도열병균이 있었습니다. 도열병균(Pyricularia oryzae)은 벼의 잎에 발생하면 광합성 부족으로 쌀 생산이 줄고, 이삭목에 발생하면 아예 쌀을 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자족이 국정 최우선 과제였는데, 1978년 이삭도열병이 대규모로 발생해 통일벼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그 여파로 이듬해인 1979년에는 통일벼 재배면적이 20% 이상 감소했습니다. 벼를 재배하는 농민의 수익뿐 아니라 국가 식량정책 전체가 흔들린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벼 재배에는 도열병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열병 외에도 깨씨무늬병이 호남지방 곡창지대에 발생해 벼 생산량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곰팡이는 고추·사과·포도·딸기 등의 탄저병, 토마토·오이·호박 등의 시들음병 등 다양한 작물에 병을 일으키며 농업 생산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도열병균 ©원본사진, 한국식물병명목록
3. 부생균 (분해자)
소수의 악인이 먼저 눈에 띄지만, 대다수는 평범한 존재입니다. 곰팡이 본연의 역할은 죽은 식물을 분해해 다시 토양과 공기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 순환하지 않으면 지구는 멈추고 생물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됩니다.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려면 죽은 생명체를 이루던 성분들이 분해되어 흙과 공기로 돌아가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생명체가 이를 바탕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깊은 숲속 원시림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늘을 향해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비바람에 쓰러져 누운 나무들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방금 쓰러져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어떤 것은 손으로 조각을 떼어낼 수 있을 만큼 분해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이때 나무를 분해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등공신이 바로 곰팡이입니다.
곰팡이는 어떤 생물도 분해하기 어려운 나무줄기의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을 분해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참나무 같은 단단한 목재도 수년이 지나면 곰팡이가 피고 버섯으로 발전해 결국 토양으로 돌아갑니다.
이렇듯 곰팡이는 지구의 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입니다. 다만 곰팡이는 안타깝게도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식탁 위 빵이나 냉장고 속 채소도 곰팡이 입장에서는 청소해야 할 대상일 뿐, 인간의 먹거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주택의 벽지나 가구 역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식물로 볼 뿐, 인간이 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곰팡이는 깊은 산속 나무나 집 안의 가구·벽지를 똑같은 ‘식물’로 간주해 청소에 나서는데,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침입한 행위로 여겨 미워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곰팡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술을 만들기 위해 밀을 빻아 만든 누룩이나, 장을 만들기 위해 콩을 삶아 매달아 놓은 메주에도 곰팡이가 피는데, 이 역시 곰팡이 입장에서는 청소일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유익한 산물을 만들기에 인간은 이를 ‘발효곰팡이’라 부르며 반깁니다.
결국 곰팡이는 죽은 식물을 분해하여 토양과 공기로 환원하는 분해자의 기본 역할에 충실합니다.
분해자 곰팡이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홍승범
4. 식물 공생 – 균근
곰팡이 대부분은 식물이 죽은 후 이를 분해하는 부생균입니다. 극히 일부의 곰팡이만이 살아 있는 식물에 기생하거나 이를 죽게 하는 식물병원균입니다. 그런데 곰팡이 중에는 살아 있는 식물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공생균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균근(菌根, mycorrhiza) 곰팡이입니다.
균근에서 균(菌, myco)은 곰팡이를, 근(根, rhiza)은 식물의 뿌리를 뜻합니다. 즉 균근은 식물 뿌리와 곰팡이가 만나 서로 영양분을 주고받는 두 생명체의 결합체를 가리킵니다.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 햇빛을 이용해 포도당이라는 에너지원을 만들어 냅니다. 포도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고 또한 식물체를 구성하기 위하여 인산·칼륨·미량원소 등도 필요합니다. 이들을 토양으로부터 구해와야 하는데 식물 뿌리는 이를 흡수하는 데 충분하지 못합니다.
반면 곰팡이는 균사라는 가는 실 형태로 자라며 토양 사방으로, 멀리까지 뻗어 나가기 때문에 흩어져 있는 물·인산·칼륨·미량원소를 잘 섭취할 수 있습니다. 곰팡이가 자라는 실을 물과 영양분이 이동하는 관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렇게 두 생명체가 균근을 이루면, 식물은 곰팡이로부터 물·인산·칼륨·미량원소를 얻고 곰팡이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식물에서 얻습니다.
식물과 균근균의 상호 작용 ©Wikipedia 사진 인용
이들의 협력 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굳건합니다. 지구상 식물의 80% 이상이 뿌리에서 균근곰팡이와 협력하며 살아갑니다. 식물은 탄생 시점부터 곰팡이와 함께했습니다. 원래 식물은 육지에 살지 못했고 물 위를 떠다니는 조류(藻類)였습니다. 조류는 원시적인 뿌리를 지녀 육지 생활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이때 도움을 준 것이 곰팡이입니다. 조류가 지상부를 담당하고 곰팡이가 지하부를 담당하는 형태가 원시 식물이었고, 이것이 점차 발달해 오늘날의 고등 식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식물과 곰팡이는 태생부터 공생체였던 셈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화학비료를 만들어 냈고, 인간은 더 많은 식량 생산을 위해 식물에 비료와 물을 충분하게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식물은 곰팡이라는 동반자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농경지에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산림에서는 균근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산림의 지하 세계는 곰팡이들의 세계이며, 곰팡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해 양분을 제공하고 분배하는 역할까지 합니다.
균근균은 탄소 포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26년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타일러상을 수상한 토비 키어스(Toby Kiers)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균근균 네트워크는 매년 이산화탄소 환산 약 131억 톤의 탄소를 지하로 이동시키는데, 이는 전 세계 화석연료 배출량의 1/3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그래서 세계적 환경단체 어스워치(Earth watch)는 곰팡이를 지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5대 생물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대둔산 소나무. 소나무는 균근곰팡이의 도움을 받아 바위틈의 소량 흙에서도 자랄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홍승범
맺음말
우리는 곰팡이를 식품을 오염시키고 벽지나 가구에 피어 사람을 귀찮게 하는 존재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곰팡이의 극히 일부 모습일 뿐입니다. 실제 곰팡이는 농업의 주요 대상인 작물과 매우 중요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곰팡이는 때로 식물에 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식물에 물과 영양분을 제공해 생장을 돕습니다. 따라서 곰팡이는 미생물을 이용한 친환경 농업의 핵심 소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는 곰팡이 자원을 농업 미생물은행에서 보존하고 관리합니다. 우리나라 농업미생물은행(KACC)이 3천5백여 종, 1만 5천여 균주의 곰팡이 자원을 관리하고 농업에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곰팡이는 농업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적으로만 알고 있던 곰팡이, 알고 나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동지인 것입니다.
글=홍승범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과 농업연구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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