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291]
색은 같지만, 맛은 제각각…우리 녹색배의 3색 매력
‘설원’·‘슈퍼골드’·‘그린시스’, 매력 넘치는 녹색배 이야기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낯선 초록빛 배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국내에서 육성한 배 품종 ‘그린시스’이다. 처음에는 생소한 이름과 외형에 궁금증을 보이던 출연자들은 배를 맛본 뒤 풍부한 과즙과 식감에 감탄했다. 방송을 통해 그린시스의 독특한 외관과 맛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소개된 순간이었다.
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황갈색 껍질의 ‘신고’ 품종을 먼저 떠올린다. 이 때문에 초록색 배를 보면 아직 덜 익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잘 익은 뒤에도 싱그러운 녹색을 유지하는 배 품종이 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설원’, ‘슈퍼골드’, ‘그린시스’가 대표적이다.
이들 세 품종은 모두 초록빛 과피를 지녔지만 맛과 식감, 활용성은 서로 다르다. 달고 아삭한 배부터 은은한 산미(신맛)를 지닌 배,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배까지 취향과 용도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겉모습과 맛의 반전이 매력적인 ‘설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설원’은 8월 말부터 9월 초에 수확하는 녹색배 품종이다. ‘설원(雪圓)’이라는 이름에 맞게 과육이 눈처럼 하얗다. 평균 과중은 약 600g으로 큼직하고, 당도는 14.0°Bx 내외로 높다. 초록색 과피에 갈색 코르크 무늬가 나타나 외관이 다소 투박해 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슈렉배’라는 재미있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한입 맛보면 외관에서 받은 인상은 금세 달라진다. 단맛이 뚜렷하고 과육이 아삭하며 과즙도 풍부하다. 투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산뜻하고 깔끔한 맛을 지닌 반전 매력이 ‘설원’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과육의 갈변이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설원’ 배는 껍질을 깎아 놓아도 색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돼 컵과일이나 샐러드, 급식용 후식 등 조각과실로 활용하기 좋다. 저장성이 좋고 과실 간 품질도 비교적 균일해 가정에서 먹는 생과뿐 아니라, 신선편이 과일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달콤함에 산뜻함을 더한 ‘슈퍼골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슈퍼골드’는 9월 초에 수확하는 녹색배로, 평균 과중은 약 570g, 당도는 13.6°Bx 내외이다. 이 품종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 배에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은은한 산미(신맛)이다. ‘슈퍼골드’라는 이름은 녹황색 배 중에 가장 맛이 좋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슈퍼골드’는 배 특유의 단맛에 부드러운 신맛이 더해져 새콤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맛을 낸다. 과즙이 풍부하고 아삭한 식감이 좋으며, 먹은 뒤에도 단맛만 무겁게 남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달기만 한 배보다 산뜻하고 입체적인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 잘 어울린다.
이러한 차별화된 맛은 소비자뿐 아니라, 경매사와 중도매인 등 유통 관계자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익숙한 배의 맛에 은은한 산미와 청량감을 더한 ‘슈퍼골드’는 녹색배가 단순히 과피색만 다른 배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품종이다.
동양배와 서양배가 만난 ‘그린시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전지적 참견 시점」에 등장해 눈길을 끈 ‘그린시스’는 9월 중순에 수확하는 녹색배 품종이다. 동양배 ‘황금배’와 서양배 ‘바틀렛’을 교배해 육성한 국내 최초의 동·서양배 교잡 품종으로, 평균 과중은 약 460g, 당도는 12.3°Bx 내외이다. 이름은 ‘초록색(green)’, ‘오아시스(oasis)’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그린시스’는 동양배 특유의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과즙을 지니면서도 석세포가 거의 없어 과육이 부드럽고, 배를 먹을 때 느껴지는 까슬한 알갱이감과 이물감이 적다. 또한 검은별무늬병에 저항성이 있어 약제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재배 안정성이 높다.
저장성도 우수해 수확 후 장기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저온 저장을 통해 출하 시기를 넓힐 수 있어 유통 측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고 과즙이 풍부해, 기존 배의 거친 식감을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품종이다.
녹색배의 갈색 무늬, 맛에는 문제가 없어요
이처럼 맛과 개성이 뚜렷한 녹색배를 처음 접한 소비자는 껍질에 보이는 갈색 점이나 무늬를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배가 상했거나 병이 든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이 갈색 무늬는 녹색배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과피 코르크화’이다. 과실이 커지는 동안 큐티클층과 표피가 미세하게 손상되면, 그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코르크 조직이 형성된다. 이것이 과피 표면에서 갈색 점이나 얼룩처럼 보이는 것이다.
갈색배는 과피 전반에 갈색의 코르크화된 조직이 발달해 부분적인 무늬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반면 녹색배는 매끈한 초록색 과피와 갈색 코르크 조직의 색 차이가 크기 때문에 무늬가 더욱 눈에 띤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과피 코르크화는 병이나 부패와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외관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지만, 당도와 아삭한 식감, 과즙 등 과육의 내부 품질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녹색배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과피의 특징인 셈이다.
과피 코르크화는 재배 환경에 따라 발생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며, 통풍과 물 빠짐, 나무 세력과 열매달림 양을 적절히 관리하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과피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약간의 갈색 무늬만으로 배의 맛과 품질이 떨어졌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같은 초록빛 속에 담긴 서로 다른 매력
‘설원’, ‘슈퍼골드’, ‘그린시스’는 겉으로 보면 모두 비슷한 녹색배처럼 보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각자의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높은 당도와 큼직한 크기, 아삭한 식감이 돋보이는 ‘설원’. 은은한 산미가 더해져 새콤달콤한 ‘슈퍼골드’. 풍부한 과즙과 저장성이 장점인 ‘그린시스’. 같은 녹색배 안에서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맛과 용도는 이처럼 다양하다.
배를 고를 때 과피가 얼마나 매끈한지만 살펴보기보다는 품종이 지닌 고유한 맛과 식감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녹색배 표면에 보이는 자연스러운 갈색 무늬 너머에는 ‘설원’의 달콤함, ‘슈퍼골드’의 산뜻함, ‘그린시스’의 풍부한 과즙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올가을에는 그간 익숙했던 배와는 다른 초록빛 국내 육성 품종을 만나보기 바란다.
글=김금선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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