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 : 이승환
그해 우리는 불타고 젖었지만…결국 다시 피었다
농업과 농촌은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2025년 ‘제9회 농업·농촌 스토리텔링 콘텐츠 공모전’에선 경남 산청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을 대상으로 치유농업을 통한 회복과정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주신 참기름 한병에 담긴 감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25년엔 기존의 글 콘텐츠 부문이외에 웹툰 부문을 추가했습니다. 1월부터 더농부·농다락 블로그에서 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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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부모님은 도시의 분주한 삶을 정리하고 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로 귀농했다. 산 아래 자리한 비닐하우스와 밭, 감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지만 흙냄새와 새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밝혀주어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 평화가 오래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올해 초 건조한 바람과 함께 산불이 번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마을을 삼켰고, 밤하늘은 열흘 동안 붉게 타올랐다. 낮에는 연기가 산을 뒤덮고, 밤에는 불빛이 마을의 그림자를 길게 끌고 다녔다.
아버지는 매일 물통을 들고 뛰었고, 어머니는 이웃들과 함께 불길이 밭으로 번지지 않도록 흙을 덮어 막았다.
“이 땅이 우릴 품었으니, 우리가 이 땅을 지켜야지.”
그 긴 열흘 동안 부모님은 무서움 대신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다.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 새벽, 잿빛 바람 속에서 불길이 완전히 꺼졌을 때,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마음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대형산불…공포로 물든 열흘이었다.
불길이 남긴 상처를 지우기도 전, 초여름엔 기록적인 폭우가 밀려왔다. 산불로 약해진 흙은 물을 머금지 못했고, 토사가 하우스로 들이쳤다. 비닐은 찢어지고 파이프는 휘었으며, 애써 키운 모종들은 진흙 속에 잠겼다.
“불에 타고, 물에 젖었네…” 아버지의 말끝이 떨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젖은 장화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도 흙은 살아 있어. 우리가 손을 얹으면 다시 숨을 쉴 거야.” 우리는 펌프를 돌려 물을 퍼내고, 쓰러진 화분을 일으켜 세우며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수해피해로 두 번의 시련을 겪은 모습
폭우가 그친 뒤, 마을 곳곳에는 다시 사람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불에 그을린 지붕을 함께 고치고, 물에 잠긴 밭의 흙을 고르며 사람들은 말없이 서로를 도왔다. 누군가는 김치 한 통을 건네고, 누군가는 고무장화를 내밀었다.
그런 온기 속에서 마을은 천천히 제 숨을 되찾아갔다.
그즈음 어머니는 마을의 원예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손끝으로 흙을 비비고, 작은 잎을 곧게 세우는 그 일은 마음속 균열을 조금씩 메워주었다. “흙은 사람을 탓하지 않더라. 손을 내밀면 그냥 품어주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오래된 슬픔 대신 잔잔한 평화가 배어 있었다. 이웃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나눈 웃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온기로 덮었다.
치유농업…다시 찾아온 평화
그 무렵, 아버지도 무너진 하우스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구부러진 철골을 곧게 펴고, 찢긴 비닐 위에 새 비닐을 얹었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배었지만, 그 손끝에서 흙은 다시 부드럽게 숨 쉬기 시작했다. “다시 세워야지, 그래야 꽃이 피지.”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지친 마음에 불을 밝혔다. 땀이 떨어질 때마다 흙은 조금 더 단단해졌고, 하우스 안에는 다시 생명의 온기가 돌았다.
일상으로 복귀 시도하는 모습
며칠 뒤, 불길이 스쳐 간 언덕에서 작고 하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그을린 나무 옆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괜찮다, 다시 하자”고 말하는 듯했다. 어머니는 꽃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봐라, 불에도 젖음에도 지지 않았잖아.”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물을 모두 견뎌낸 그 꽃처럼, 두 사람의 마음에도 다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들녘에는 다시 싹이 돋고 곡식이 고개를 숙였다. 수확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얼굴엔 어느 해보다 깊은 평온이 스며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웃고 노래하며 다시 시작된 계절을 맞았다. 불에 탄 나무에도 새잎이 돋고, 물에 잠겼던 밭에도 생명이 자라났다. 그것이 흙의 힘이자, 사람의 의지였다.
이제 나는 안다. 불에 타고, 물에 젖어도 꺼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흙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흙이 다시 숨 쉬듯, 사람도 그렇게 다시 피어난다. 부모님은 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그 믿음은 오늘도 우리 가족의 뿌리가 되어 땅속 깊이 자라고 있다. 넘어지고 젖어도 끝내 일어서는 이름, 그것이 삶이었다.
화염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력을 가진 작은 꽃 한 송이
2025 농촌진흥청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 이승환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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