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거라면 측정할 수는 없을까?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은 연구 끝에 사랑과 연관이 있다는 일부 호르몬을 발견했다. 쾌감의 도파민이니, 행복감의 엔도르핀이니, 애착의 옥시토신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은 특정 호르몬 몇 개로 설명할 수 없는, 알다가도 모를 개념이다.
산부인과 의사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난 ‘hCG’가 사랑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주로 임신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우리가 임신 테스트기로 검사하는 바로 그것이다.
hCG의 정식 명식은 ‘사람 융모성 성선 자극 호르몬 (human chorionic gonadotropin)’이다. 이름은 어렵지만, 결국 태반 조직에서 분비된다는 뜻이다. 태반은 보통 임신이 되어야 형성되니 이 호르몬이 검출된다는 건 임신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hCG의 발견은 임신 진단에 혁명을 가져왔다. 1910년대, 여러 의과학자들이 ‘태반이 단순한 탯줄뿌리가 아니라 무언가 분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불씨를 피웠다. 1928년, 독일 내분비학자 젤마르 아슈하임과 독일 태생의 이스라엘 산부인과 의사 베른하르트 존데크가 임산부의 소변에서 hCG를 처음 분리하며 드디어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엔 매우 비싼 연구 시설로 5일이나 걸리는 검사였으나, 오늘날에 와선 손바닥보다 작은 소변 임신 테스트기로 5분 만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의료 기술 발전의 정수가 담긴 검사인데, 우린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듯 사용하고 있다.
개인차가 있으나 월경주기는 평균 28일 정도이다. 월경이 규칙적인 여성이라면 다음 생리가 없을 때 소변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는데, 임신 주수는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이때가 임신 4주(28일)인 시점이다.
소변으로 hCG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임신인 게 ‘아마도’ 맞을 것이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으므로 다음 단계로 산부인과에 가서 ‘정상’ 임신을 확인한다. 병원에 바로 오시는 분도 있지만, 요즘은 의료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임신 5주는 되어야 초음파로 아기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산모분도 잘 알아서 기다렸다가 오시기도 한다. 아무튼, 병원에서 초음파로 아기집이 자궁 안에 잘 위치한 걸 확인하면 일단 안심이다.
그러나, 자궁 내 아기집이 안 보이면 고민하게 된다. 아직 초음파로 확인하기엔 너무 이른 걸까? 혹시 초기 유산이나, 자궁외임신 같은 비정상 임신은 아닐까? 특히 자궁외임신은 진단이 너무 늦어지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문제는 임신 초기에는 감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지표가 되어 주는 것이 beta-hCG 혈액 검사이다.
beta-hCG는 hCG의 종류 중 하나로 혈액 내 수치로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소변 임신 테스트기는 beta-hCG가 50 mIU/mL 정도만 되어도 두 줄이 뜨지만, 아기집을 보려면 보수적으로 잡아 3000 mIU/mL 정도는 되어야 한다. 또한 수치가 오르는 속도도 중요하다. 정상 임신이라면 팍팍 증가해야 하는데, 뭔가 지지부진하게 오르거나 심지어 떨어지면 결과가 좋지 않다.
hCG에서 사랑을 떠올린 건 사랑의 결과가 임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상 임신’을 확인하는 초기 과정이 마치 과거 실패했던 내 연애사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마음 한편이 불안했던 애매한 순간들 말이다.
고백해서 상대가 받아들였으면 된 거 아닌가 싶었던 어떤 연애는 어느 날 상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게 들키면서 와장창 끝나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데이트하던 모습을 다른 쪽 남자가 우연히 발견하여 나중에 여자를 추궁한 것이었다.
발각된 김에 정리당한 나는 “그저 잠깐 ‘썸’ 좀 탔던 사이였을 뿐이라고 하던데?”라고 그쪽 남자에게 ‘전달’ 받았다.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것 같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하면서도 이상하게 싸한 느낌을 받았던, 그러나 딱히 어찌 할 수 없으니 외면했던 순간들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빠진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이었다.
애매함은 결국 ‘비정상 연애’를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시작은 했으나 팍팍 오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된 beta-hCG 수치처럼. 결론은 연애도 임신도 일단 시작했으면 안정기까진 거침없이 달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관계는 hCG 수치가 얼마일까? 잘 증가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나겠지만, 좀 더 일찍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검사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물론 검사할 필요도 없는 게 가장 좋다만,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연애도 hCG처럼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글쓴이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산모입원 전담 임상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아이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따라가며 시기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아울러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생각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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