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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실종 시대…‘스마트 양봉’이 제시하는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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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289]

상자 속 수만마리 꿀벌의 신호…이젠 데이터 기반의 양봉 시대

작은 상자 하나에 수만 마리가 산다. 여름이면 2만 마리에 이르는 꿀벌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하며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곳, 바로 벌통이다. 여왕벌은 하루에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일벌들은 꽃을 찾아 수 킬로미터를 오가며 꿀과 꽃가루를 나른다. 어린 벌은 애벌레를 돌보고, 다른 벌은 날갯짓으로 벌통 온도를 조절한다. 이 모든 일이 나무 상자 하나 안에서 쉼 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벌을 기르는 사람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벌통은 늘 닫혀 있고, 그 속은 침묵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을 확인하려면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여는 순간 애써 유지해 온 온도와 습도가 흐트러지고 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양봉은 오랜 세월 ‘감(感)’과 ‘경험’에 의존해 온 생업이었다. 노련한 양봉가는 벌통을 두드리는 소리, 드나드는 벌의 기세, 손에 얹히는 무게만으로 봉군의 상태를 가늠했다. 그 감각은 놀랍도록 정교했지만, 사람의 몸과 세월에 갇혀 있어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해지기 어려웠다.

경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와 이상기상, 응애의 약제 저항성 확산, 밀원식물의 개화 불안정 등 여러 원인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대규모로 사라지고 있다. 꿀벌은 단순히 꿀을 만드는 곤충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작물의 상당수가 꿀벌의 꽃가루받이(화분매개)에 기대고 있으니, 꿀벌의 위기는 곧 농업 전체의 위기다.

이런 국면에서 개인의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힌다.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벌통 수에는 한계가 있고, 경험이 쌓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마트양봉’이다. 양봉에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해, 벌통을 열지 않고도 그 안을 들여다보고, 눈에 보이지 않던 신호를 데이터로 바꿔 판단하는 ‘데이터 기반 디지털 양봉’으로의 전환이다.

초보자도 전문가 수준의 관리를 할 수 있게 하고, 숙련된 양봉인에게는 더욱 정밀한 도구를 쥐여 주는 것 — 이것이 스마트양봉이 지향하는 목표다.

벌통이 스스로 말하게 하다 – 센서와 스마트벌통

스마트양봉의 출발점은 ‘벌통이 스스로 상태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벌통 안에 여러 종류의 센서를 심으면, 침묵하던 상자가 비로소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벌통 내외부의 온도는 여왕벌의 산란과 봉군의 건강을 알려주고, 습도는 벌통 환경과 산물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 농도는 봉군의 환경과 건강을, 벌통 전체의 무게 변화는 저장된 꿀의 양과 봉군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심지어 내부의 진동과 날갯소리는 봉군의 건강과 특정 행동을, 출입구를 드나드는 벌의 수는 활동량을 말해 준다. 사람이 뚜껑을 열어 어림하던 것들을, 이제 벌통이 스스로 숫자로 이야기하는 셈이다.

스마트벌통사진 ©국립농업과학원

국립농업과학원에서 개발한 꿀벌 스마트벌통은 이러한 센서들을 하나로 통합했다. 라즈베리파이라는 소형 컴퓨터를 도입해 가격을 낮추면서도 성능을 높였고, 방수·방진 기능을 더해 습한 현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수집된 정보는 무선으로 서버에 전송되고, 양봉가는 스마트폰 앱으로 언제 어디서든 벌통의 상태를 확인한다. 통신 방식도 크게 개선되었다. 기존의 고가 LTE 라우터 대신 전국 어디서나 쓸 수 있는 NB-IoT 방식으로 바꾸면서, 연간 통신비를 18만 원에서 1만 원 수준으로 95%나 줄였다. 별도의 라우터나 인터넷 설정 없이 바로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효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딸기 시설재배 농가에서 겨울철 벌통 내부 온도를 비교했더니, 스마트벌통은 관행 벌통보다 7~14℃ 높은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표준화된 관리를 적용한 결과 봉군의 수명은 관행보다 무려 68일이나 늘어났다. 벌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자, 벌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 응애를 잡아내고 벌통을 나르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한층 흥미로워진다. 대표적인 것이 꿀벌응애 실시간 검출장치 ‘비전(BeeSion)’이다. 응애는 월동 꿀벌 대량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골칫거리다. 몸길이 1mm 남짓한 이 기생충을 사람이 벌집판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찾아내는 일은 고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좌) 벌집판 거치 꿀벌 응애 검출장치 / (우) 벌통운반보조장치 ©국립농업과학원

비전은 AI 영상분석 기술로 벌집판 한 장을 30초 이내에 분석해 응애를 찾아낸다. 기존 육안 검사가 2분 이상 걸리던 것을 크게 앞당긴 것이다. 검출 정확도는 97.8%에 이르며, 응애뿐 아니라 날개기형꿀벌·백묵병 등 16개 항목을 진단해 최적의 방제 시기까지 알려준다. 150벌통 기준 연간 860만 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몸을 지키는 데에도 쓰인다. 무거운 벌통을 나르는 일은 양봉가, 특히 고령 농업인에게 큰 부담이며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AI가 벌통을 인식하고 로봇팔로 집어 자동으로 옮기는 벌통 자동운반 보조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AI가 벌통을 스스로 알아보고, 로봇팔이 벌통을 선택해 옮기면, 양봉가는 벌통을 살피는 핵심 작업에만 집중한 뒤 벌통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힘든 노동은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판단과 돌봄에 전념하게 하려는 것이다.

벌통 밖으로 넓어지는 시선

이동양봉정보제공시스템_하드웨어 ©국립농업과학원

스마트양봉의 시선은 벌통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동양봉가를 위한 위치기반 서비스는 벌통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달아 이동 경로와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아까시나무와 밤나무 꽃을 따라 전국을 이동하는 벌통들의 흐름을 데이터로 확보하면, 밀원의 개화 시기에 맞춰 더 효율적으로 꿀을 거둘 수 있다.

(좌) 정밀온도측정장치 / (중) 드론 말벌 / (우) 인공월동시작기 ©국립농업과학원

나아가 벌통의 벌집에 60개의 온도센서를 촘촘히 심어 벌통을 열지 않고도 봉군의 움직임을 연중 관찰하는 정밀 모니터링 기술, 농작물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등검은말벌에 초소형 센서를 부착해 드론으로 그 벌집을 추적하는 기술, 이상 고온에도 꿀벌이 안정적으로 겨울을 나게 하는 실내 안정월동시스템까지, 연구의 지평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팜커넥트_ces1 ©국립농업과학원

“닫힌 상자를 여는 새로운 기술”

해외에서는 이미 2014년 무렵부터 이스라엘의 비와이즈(Beewise), 미국의 비히어로(BeeHero) 같은 스타트업들이 로보틱스와 데이터 기술을 앞세워 큰 투자를 유치하며 시장을 키워 왔다. 우리나라의 스마트양봉 기술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화분매개용 스마트벌통은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벌통 안에서는 지금도 수만 마리의 작은 생명이 쉼 없이 일하고 있다. 그 부지런한 침묵을 데이터의 언어로 번역하고, 인공지능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 — 그것이 스마트양봉이다. 오래된 양봉가의 감각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을 데이터로 이어받아 누구나 나눌 수 있게 하는 일이라 해도 좋겠다. 꿀벌의 보전과 농업생태계의 안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양봉산업의 발전을 향해, 닫힌 상자를 여는 새로운 기술이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글=이경용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농업연구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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