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전통과 현대 감각을 결합한 이색 전시가 잇따라 열리며 시민과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흙과 다양한 소재로 새로운 의미를 담아내는 도예가 기동규의 특별전과 신라 금관과 명품 가방을 결합해 현대 소비문화를 해석한 윤경희 작가의 개인전이다. 두 전시는 서로 다른 장르이지만 공통적으로 경주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성과 현대적 욕망의 풍경을 예술적인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새로운 시선을 추구하는 시간, 기동규 도예전
경주 외동에서 활동하는 도예가 기동규는 흙과 불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로 인간 삶의 흔적을 표현해 왔다. 그의 작품은 표면이 거칠고 비정형적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비틀린 형상 속에서도 묘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작가는 “고정관념이 인간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졌다”며 “깨지고 찢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삶을 생활 주변 소재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삶 역시 작품과 닮아 있다. 그는 20여 년 전 큰 교통사고를 겪은 뒤 긴 재활 과정을 거쳤지만 도예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흙을 치대고 가마 불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전시장에는 나무를 닮은 도자기, 쇠처럼 거친 질감의 조형물, 일부러 찌그러뜨린 형태의 작품들이 놓였다. 표면에는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고, 갈라진 틈 사이로는 작가가 견뎌낸 시간의 결이 읽힌다.
기 작가는 또 경주의 공예 인프라 확대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역 예술인들이 상주하며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며 “경주 역시 유네스코 공예창의도시와 같은 문화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동규 작가의 이번 특별전은 지난 1일부터 6월7일까지 일정으로 경주 지지호텔 로비에서 ‘삶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라 금관과 명품백의 만남, 윤경희 개인전
경주 북군동 라우갤러리에서는 윤경희 작가의 개인전 ‘Simulation of Desire; 명품백의 기호학적 재해석’이 5일부터 24일까지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신라 금관의 가지 장식과 명품 가방이 결합된 회화다.
황금빛 금관 장식은 가방 손잡이로 이어지고, 왕권의 상징은 현대 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변주된다. 천년 전 신라 왕실의 권력이 오늘날 명품 소비 욕망으로 이동한 듯한 인상을 준다.
윤 작가는 “금관과 명품백의 결합은 권력의 상징이 소비의 기호로 전이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며 “오늘날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욕망이 명품 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군은 청바지 천 위에 명품 가방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노동과 일상성을 상징하는 청바지 소재 위에 고급 소비의 상징을 얹어 계층성과 욕망의 간극을 드러낸다.
전시장 내부는 비교적 차분하다. 흰 벽면 위에 걸린 작품들은 강한 색채 대신 상징 구조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관람객들은 금관과 가방의 낯선 조합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해석한다.
◆ 역사도시 경주의 현재형 문화 실험
두 전시는 각각 도예와 회화라는 다른 방식으로 경주의 역사성과 현대 사회를 연결한다. 기동규 작가는 도예라는 전통방식을 통해 인간 존재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윤경희 작가는 신라 금관을 현대 소비문화의 기호로 변환해 시대의 욕망 구조를 해석한다.

특히 신라 문화유산이 단순한 관광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현대 예술 담론 속에서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과거 왕권의 상징물이 오늘날 소비와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되면서, 경주 문화예술 역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휘 라우갤러리 관장은 “경주가 문화재 보존 중심 도시를 넘어 현대 예술 실험이 가능한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며 “지역 작가들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경주의 과거와 현재가 예술 속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천년 신라의 흔적은 이제 흙의 질감과 황금빛 가방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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