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254]
인공수분부터 AI 판별까지…좋은 배를 만드는 ‘꽃가루 활력’
꽃가루가 부족해요! 인공수분의 숨은 고민
배나무의 모습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대부분의 배나무는 자신의 꽃가루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불화합성’ 특성이 있다. 원래는 벌·나비 같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 주며 자연수분이 이뤄져야 하지만, 요즘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수분 곤충 개체 수가 줄고 곤충들이 배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많은 배 재배 농가에서는 사람이 직접 꽃가루를 묻혀 주는 ‘인공수분’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꽃가루를 묻혀 주는 ‘인공수분’ 방법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공수분을 제대로 하려면 좋은 꽃가루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에 수분수(꽃가루를 제공하는 나무)를 심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농가 고령화, 인건비 상승, 봄철 서리 같은 이상기후로 국산 꽃가루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 배·사과 꽃가루의 농가 자급률은 약 8.8%로 추정된다. 부족한 물량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문제는 수입 꽃가루에 의존하다 보면 교배 친화성이 떨어지는 꽃가루를 사용해 착과율이 떨어지거나 전염병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쓰는 꽃가루가 정말 괜찮은 지에 대해 답해 줄 화분 활력(꽃가루의 생명력) 검사법이 필요하다.
꽃가루 활력, 어떻게 검사해 왔을까?
인공수분용 꽃가루는 냉동·냉장 보관을 거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활력(발아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용 전에 “이 꽃가루가 아직 살아 있나?”를 확인해야 한다.
사람이 직접 꽃가루를 묻혀 주는 ‘인공수분’ 방법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기내 발아법(in vitro germination)이다. 꽃가루를 발아용 배지에 뿌리고, 일정 시간 배양한 다음 현미경으로 얼마나 많은 꽃가루가 싹을 틔웠는지(발아했는지)를 직접 세어 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단점이 있다. 작물·품종마다 발아에 맞는 최적 조건을 일일이 다시 잡아야 하고 현미경을 보며 수작업으로 발아율을 계산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며, 검사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꽃가루가 배지 위에 고르게 퍼지지 않으면 밀도가 낮은 부분은 실제보다 발아율이 더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배꽃가루 발아력검사 발아율 ‘불량’(좌), 발아율 ‘양호’(우)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기내 발아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염색약(염료)을 이용해 꽃가루의 상태를 색깔로 평가하는 비색법도 개발되었다. 테트라졸륨염(탈수소효소 활성), 아닐린블루(세포벽 성분인 칼로스를 염색), 아세토카민(핵산 염색), 알렉산더 염색(세포질 성분 염색), 플루오레세인 디아세테이트(에스터라제 효소 활성 확인)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들 방법은 빠르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어 겉보기에는 화분 활력 평가에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죽은 화분에서 나온 효소나 물질에도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보다 활력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인공수분을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화분 활력 검사법이 꼭 필요하다.
콩고 레드에 염색된 발아된 화분(A)과 비발아 화분(B)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콩고 레드는 식물 세포벽을 관찰할 때 쓰는 염료이다. 속씨식물의 화분관 세포벽에는 칼로스(callose)라는 다당류가 많은데, 칼로스의 하이드록실기(–OH)와 콩고 레드의 아미노기(–NH₂) 사이에 수소 결합이 생기면서 서로 잘 붙는다. Yang et al.(2019)은 이 원리를 이용해, 발아한 꽃가루에서 자라 나온 화분관에 콩고 레드가 결합하면서 배양액의 색(흡광도)이 변하고, 그 변화가 꽃가루 농도와 연관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발아를 억제한 그룹(NC군)과 발아가 잘 되게 한 그룹(PC군)을 나누고, 꽃가루 알맹이 자체의 염색은 배제하고 화분관에서 나타나는 염색 정도를 활력 지표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즉, “얼마나 잘 발아했는지”를 배양액의 색 변화로 간접 측정하는 아이디어이다.
콩고레드 탈색에 따른 화분 활력 검정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산화효소(peroxidase)와 아조 염료 사이의 반응에 주목한 방법도 있다. 식물의 과산화효소는 과산화수소를 분해할 뿐만 아니라 슈퍼옥사이드와 과산화수소를 이용해 하이드록실 라디칼을 만들어낸다. 콩고 레드 같은 아조 염료의 질소 이중결합은 이 하이드록실 라디칼에 의해 산화·파괴되어 탈색된다. Speranza et al.(2012)은 키위 꽃가루가 발아 초기 단계에서 배양액 안에 과산화수소를 축적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Song et al.(2019)은 “콩고 레드를 섞은 배지에서 꽃가루를 발아시키면, 발아한 꽃가루의 과산화효소가 염료를 탈색시켜 색의 변화만 봐도 활력이 있는지 없는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즉, “잘 발아하는 꽃가루일수록 배지가 더 많이 탈색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5만 개 꽃가루를 한번에! 유세포분석과 딥러닝의 등장
Yang et al.(2019)은 유세포분석(Flow cytometry)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꽃가루를 정량적이고 대량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세포분석에서는 입자 크기(FSC)와 입자 내부 구조의 복잡도(SSC)라는 두 가지 값으로 입자를 표현한다. 연구에서는 활력이 다른 두 샘플(NC군, PC군)을 분석했을 때 크기(FSC)–복잡도(SSC) 점그래프(dot plot)의 밀도 분포가 뚜렷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곧 꽃가루 샘플 간의 화분관 성장 차이가 크기(FSC), 복잡도(SSC) 값으로 구별될 수 있고, 이를 이용해 발아 여부에 따라 개별 화분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방법은 한 번 분석에 약 5만개의 꽃가루를 사용하므로, 200~300개 정도의 꽃가루를 세는 기내 발아법에 비해 재현성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유세포분석 후에는 이 5만 개 꽃가루의 크기(FSC), 복잡도(SSC) 좌표값(raw data)을 정제해, 신경망 분류에 적합한 ‘꽃가루 발아 이미지’로 변환하게 된다.
화분 발아율 분석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여기서 사용된 딥러닝 모델이 바로 합성곱 신경망(CNN)이다. Lecun et al.(1998)의 논문에서 소개된 이 모델은, 기존의 완전연결 신경망과 달리 이미지의 공간 구조를 유지한 채로 학습을 진행한다. 여러 개의 필터가 이미지를 스캔하면서 선·모서리 같은 기본적인 특징부터 복잡한 패턴까지 단계적으로 학습한다. 중간중간 풀링 계층을 통해 특징맵의 크기를 줄이고 중요한 정보만 남겨 계산량을 줄인다. 마지막에는 추출된 특징들을 모두 모아 완전연결 계층에서 최종적으로 “이 이미지는 어떤 클래스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이렇게 합성곱 신경망(CNN)은 이미지 속 패턴을 찾아 분류하는 데 매우 강력한 모델이지만, 분류 결정이 이미지의 어느 부분을 보고 판단했는지 설명이 어려운 ‘블랙박스’ 문제가 있다. 그래서 모델이 진짜 중요한 부분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각화가 필요하다.
CNN 모델에서 생생된 특징 시각화, Grad-CAM(Yang et al., 2021)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합성곱 신경망(CNN)이 이미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법이 바로 Grad-CAM(Gradient-weighted Class Activation Mapping)이다. Grad-CAM은 합성곱 신경망(CNN)의 마지막 합성곱 계층이 특정 클래스를 예측할 때 어느 위치의 특징맵을 강하게 활성화했는지를 계산해 이를 색깔로 표현한 지도(활성화 맵)로 보여준다. 색이 짙은 부분일수록 “모델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봤다”는 뜻이다.
미래의 농업, 인공지능과 함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콩고 레드를 이용한 화분관·과산화효소 기반 비색법, 유세포분석과 딥러닝(CNN)을 결합한 대량 화분 활력 분석 시스템, Grad-CAM을 활용한 모델 해석, 검증은 모두 인공수분용 꽃가루의 활력을 더욱 정확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배꽃의 모습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앞으로 이런 기술들이 더 발전하면, ‘꽃가루 활력검정 키트’가 등장할 수도 있고 인공지능이 작물·품종별로 최적의 인공수분 전략을 제시해 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게임이나 자율주행만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과일 한 개를 위해서도 쓰일 수 있다. 농업과 과학이 만날 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글=양웅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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