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KBS 다큐인사이트 ‘슈퍼 다이닝’
이들은 어떻게 까다로운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1월 22일 퇴근 후 무심코 켠 TV에서 오랜만에 공중파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KBS ‘다큐인사이트’에서 방영한 ‘슈퍼 다이닝: 뉴욕의 한식 셰프들’이었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 TV를 시청한다는게 다소 어색하고도 반가웠습니다.
시청한 프로그램에서는 뉴욕이라는 세계 미식의 중심에서 한식 셰프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재해석하고, 까다로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지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방송에 소개된 뉴욕의 대표적인 한식 파인다이닝 식당들과, 그곳을 상징하는 인기 메뉴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글을 써내려 가겠습니다.
주옥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를 설득하다
주옥의 신창호 셰프의 모습 ©KBS 다큐
이름부터 정말 ‘주옥’같습니다. 주옥은 사실 한국에서 이미 정상에 오른 뒤, 다시 뉴욕으로 향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방송에서 신창호 셰프는 2016년 서울에서 주옥을 열어 미쉐린 2스타를 받은 뒤, 2024년 가을 전 직원과 함께 뉴욕 이전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철학을 뉴욕에서도 증명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죠.
주옥의 요리는 한국의 미학과 상징을 음식에 그대로 담습니다. 대표 메뉴인 색동 만두는 아이의 색동저고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두피에 문양을 입힌 요리입니다. 단순히 맛을 넘어, 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까지 함께 전하죠.
색동저고리를 연상하게 하는 만두피 제작 모습 ©KBS 다큐
꿩만두 ©KBS 다큐
또 하나의 핵심은 들기름입니다. 버터 중심의 서양 파인다이닝과 달리, 곡물과 들풀 향이 진한 들기름을 적극 활용해 주옥만의 깊은 풍미를 만듭니다. 신창호 셰프는 서양 분들이 처음에는 들기름을 낯선 음식으로 인식했지만 뉴욕 현지인분들의 입맛에는 ‘상쾌함’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느낄 정도로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들기름 제조 과정 모습 ©KBS 다큐
들기름 메뉴 완성 모습 ©KBS 다큐
주옥은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게된 계기는 한국에 단순히 고여있는 식당보다 입맛이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은 뉴욕 셰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식당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방송을 보며 재밌는 부분으로 주옥은 뉴욕 근교에서 다른 한식 셰프들과 공동 농장을 운영하며 깻잎, 쪽파, 무 등을 직접 재배한다는 겁니다. 농장을 운영하면서 식당에 올라갈 재료도 하나하나 직접 재배하며 요리하는 예술가적인 면모를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옥만의 집념은 결국 뉴욕 이전 2년 만에 다시 미쉐린 2스타를 받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뉴욕 블루밍버그에서 농장을 운영 중인 셰프들의 모습 ©KBS 다큐
정식 뉴욕
한식 파인다이닝의 기준을 만들다
정식 뉴욕은 뉴욕 한식 파인다이닝의 출발점으로 불립니다. 임정식 셰프는 2011년, 한식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 뉴욕에 식당을 열었고, 현재까지 14년 넘게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식도 프렌치처럼 격이 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증명한 곳이라 볼 수 있죠.
처음 뉴욕에서 식당을 오픈했을 당시, 뉴욕 현지인들의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국제 요리계에서 무모한 실험을 한다, 지나치게 야심찬 컨셉 아니냐 등의 평을 받았었죠. 이러한 평가들을 극복하고 뉴욕에서 자리잡기까지 만든 메뉴만 수백 가지가 넘었다고하네요.
과거의 아픈 경험을 설명하는 임정식 셰프의 모습 ©KBS 다큐
정식 뉴욕의 인기 메뉴는 단연 김밥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릴 때 소풍 가면 챙기는 음식처럼 추억이 서린 음식이지만, 이곳에서는 김밥 한 줄에 스토리와 철학을 담은 요리로 볼 수 있습니다. 임정식 셰프는 과거에 머문 음식이 과연 한식인가에대한 의문점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임 셰프는 한식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하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음식이 한식이라는 한국음식의 비전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임 셰프의 철학들로 인해 전 세계 미식가들이 김밥을 파인다이닝의 대표 메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정식 뉴욕의 김밥 메뉴 ©KBS 다큐
또 문어 요리에 고추장 볶음의 풍미를 더하거나, 전통 장의 감칠맛을 세련되게 풀어낸 메뉴들도 꾸준히 사랑받는 한국 메뉴입니다. 익숙한 맛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이 정식 뉴욕의 강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문어 머리를 이용해 진한 바다 향을 더하고 마늘과 채소 그리고 고추장을 더하여 깊고 절제된 매콤함의 균형을 완성시킨 메뉴입니다.
정식 뉴욕의 문어 요리 ©KBS 다큐
이곳은 동시에 ‘한식 셰프들의 사관학교’로도 불립니다. 정식 출신 셰프들이 뉴욕 곳곳에서 독립해 미쉐린 스타를 받으며, 한식의 저변을 넓혔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강한 식당입니다.
주아
기억과 추억을 요리로 풀어내다
정식 뉴욕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김호영 셰프 모습 ©KBS 다큐
정호영 셰프 인터뷰 모습 ©KBS 다큐
주아는 정식 뉴욕에서 수셰프로 일했던 김호용 셰프가 운영하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이곳의 요리는 화려한 기술보다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셰프 개인의 유년 시절과 한국에서의 경험이 메뉴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메뉴는 불맛을 살린 생선 요리입니다. 바닷가 아궁이에서 구워 먹던 생선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생선을 소금물에 절여 반건조한 뒤 숯불에 천천히 굽습니다. 인위적인 훈연이 아닌, 한국식 불맛이 핵심이죠.
숯불로 굽는 생선의 모습 ©KBS 다큐
주아 식당의 대표 메뉴 농어 ©KBS 다큐
또 하나 인상적인 메뉴는 ‘죽’입니다. 아플 때 먹던 전복죽에서 착안해, 맑은 닭 육수에 푸아그라를 더해 위로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주아 식당의 죽 메뉴 ©KBS 다큐
주아의 정호영 셰프가 바라본 ‘죽’의 이미지 ©KBS 다큐
이러한 코스의 구성은 한국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한 상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식의 끼니를 챙기던 어머니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메주
발효로 증명한 한식의 힘
단지, 메주라는 두 곳의 식당을 운영 중인 후니 김 셰프 모습 ©KBS 다큐
여러분은 본인 스스로 누구인지 아시나요? 후니 김 셰프는 본인의 식당을 차리기 전 본인 스스로가 누구인지에대한 정의가 필요했다고 설명합니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일식을 배우고,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음식을 사랑하는 그는 자아를 다듬어내기 힘든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뿌리인 한식을 선택하고 한식당을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맡았던 된장과 간장의 냄새였습니다. 후니 김은 장의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장이 주는 냄새와 어렸을 때의 추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합니다.
한국의 ‘씨간장’을 뉴욕 현지인들에게 소개해주는 모습 ©KBS 다큐
단지의 요리는 화려함보다 발효에 집중합니다. 10년 이상 숙성한 간장과 된장을 주재료로 삼아, 와인 숙성처럼 장의 가치를 부여해줍니다. 트러플이나 캐비어 없이도 충분히 깊고 고급스러운 요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죠.
발효가 진행 중인 장독대, 된장의 모습 ©KBS 다큐
단지 식당의 불고기 버거 메뉴 ©KBS 다큐
대중적인 인기 메뉴로는 불고기 미니 버거가 있습니다. 불고기와 파채, 오이소박이를 작은 번에 담아, 한식을 처음 접하는 뉴욕커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던 것이죠.
덕분에 단지는 전통 한식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어 하는 뉴욕커들로 늘 붐비는 식당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의 음식을 두고 ‘속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맛’이라고 평합니다.
뉴욕에서 다시 쓰이는 한식의 정의
뉴욕의 한국인 셰프들이 농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모습 ©KBS 다큐
이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인 이유는, 한식이 더 이상 ‘변형된 아시아 음식’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들 셰프는 서양의 기준에 한식을 맞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음식이 지닌 재료, 발효, 기억, 정체성을 무기로 지금도 뉴욕 미식의 기준 자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한식은 K푸드,음악 등 이미 세계 무대 한가운데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식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셰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다큐인사이트를 시청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더농부 인턴 이진우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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