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의 이인자로서 차기 대권 주자군까지 거론됐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법원 판결로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21일 법원은 12·3 비상계엄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한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반세기 넘게 공직자로서 업적을 쌓아 왔던 그는 이날 판결로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정권과 이념을 넘나들며 생존해 온 관료 인생의 종착지가 형사처벌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1949년생인 한 전 총리는 55년 동안 공직 사회의 핵심을 지켜온 대표적 엘리트 관료였다. 보수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요직을 두루 거치며 ‘처세의 달인’, ‘처세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외교·통상 분야를 넘나들며 고위직을 맡았고 정치권에서는 “대통령만 빼고 누릴 수 있는 권력은 다 누렸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 ‘무색무취’ 이미지 역시 그의 장수 비결로 꼽혔다.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관료의 길에 들어섰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직에 올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 대사로 발탁돼 외교 통상 전문가로서 역할을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그는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이미 총리를 지낸 경험이 있었던 그는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르며 ‘연륜의 총리’로 불렸다.
여야 대립이 극심한 국면에서 윤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1,077일간 재임했고,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으로 남았다. 공직 사회에서는 ‘Mr. 공무원’이라는 별칭이 다시 회자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이 시기 거대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의 충돌이 잇따랐다.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와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거부가 이어지며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결국 국회는 다섯 가지 사유를 들어 한 전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이후 그는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87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무렵부터 한 전 총리가 내란 관련 수사에 연루될 가능성을 우려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한 전 총리가 보수 진영의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5월 초 출마를 선언하며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수사 회피 목적이라는 의혹도 동시에 제기됐다.
여론의 지지율은 낮지 않았으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단일화 약속이 무산되며 ‘후보 교체’ 파동이 일었다. 결국 그는 출마 선언 9일 만에 하차하며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 자리를 지켜왔던 한 전 총리의 공직 인생은 결국 법정에서 막을 내리게 됐다. 정치적 중립성과 처세로 상징되던 그의 이력이 중형 선고로 평가절하되면서, 관료 권력의 책임과 한계를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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