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전기 스포츠 SUV인 RZ 600e 공개
가상 변속기로 ‘손맛’살려
낮아진 차체, 카본 파츠 등 마니아들 심금 울린다
전동화 시대에는 낭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기음은 사라졌고, 변속 타이밍에 맞춰 등허리를 밀어붙이던 충격도 사라졌다. 버튼을 누르면 조용히 출발하고, 페달을 밟는 대로 가기 바쁜 전기차는 더 이상 나와 호흡을 맞추는 기계가 아니라 빠른 가전제품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 끄덕거리던 고개를 바로잡아야 할 차량이 공개되었다. 일본 프리미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렉서스가 RZ 600e F 스포츠 퍼포먼스를 공개한 것이다. 조용하고 얌전한 이미지로 기억되던 렉서스가, 전동화 시대에 오히려 ‘운전의 감각’을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렉서스는 흔히 연비 좋고 정숙한 차만 만드는 브랜드로 인식되지만,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현대차보다 더한 짙은 스포츠 드라이빙 DNA를 지닌 제조사다. IS200, 내수명 알테자로 더 잘 알려진 이 차는 후륜구동 기반의 스포츠 세단으로 등장해 지금까지도 드리프트 마니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렇게 쌓아온 렉서스의 ‘운전 재미’에 대한 집착이, 이제 전기차라는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렉서스 내에서 숨 쉬는 ‘스포츠 DNA’
렉서스 RZ 라인업은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전용 라인업으로, 2023년 RZ 450e와 함께 처음 공개됐다. 렉서스는 이 라인업을 두고, 브랜드가 오랜 시간 다듬어 온 ‘렉서스 드라이빙 시그니처’를 전동화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RZ 600e F 스포츠 퍼포먼스는 기존 RZ를 기반으로 주행 성능과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 스페셜 에디션이다.

차량은 기존 렉서스의 차량인 RZ550e F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 차량에서 출력만 끌어 올린 차량은 아니다. RZ550e 를 기반으로 주행 성능과 완성도를 전면적으로 끌어올려 스포츠 드라이빙을 원하는 소비자를 정조준한다. 또한 토요타 배지를 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렉서스 라인업으로 등장한 만큼, 실내 마감과 품질, 프리미엄 옵션 구성 역시 빠짐없이 챙겼다. 이로 인해 경쟁 구도 역시 아이오닉 5 N보다는 제네시스 GV60 마그마 쪽에 더 가깝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RZ 600e F 스포츠 퍼포먼스는 76.96kWh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525km의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앞뒤 차축에 각각 모터를 배치한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각 모터는 224마력과 27.3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시스템 합산 출력은 425.5마력에 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4초다.

출력이 올라간 만큼 제동 성능 역시 대폭 강화됐다. 20인치 대구경 브레이크 로터와 알루미늄 모노 블록 6피스톤 캘리퍼를 적용해 고속 주행과 반복 제동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제어력을 확보했다. 이는 렉서스가 ‘달리는 법’을 제대로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직선 주행만 빨라서는 결코 ‘빠른 차’가 될 수 없다. 제대로 달리고, 제대로 서야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과 카본으로 빚어낸 예술
RZ 600e F 스포츠 퍼포먼스는 기존 RZ 550e F 스포츠를 기반으로 개발됐지만, 외형과 주행 감각은 확연히 다르다. 전용 공기역학 파츠를 적용해 다운포스를 강화했고, 기본 모델 대비 차고를 20mm 낮춰 공기저항을 줄이는 동시에 핸들링 안정성을 끌어올렸다. 숫자보다 체감에 집중한 셋업이다.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운전석에서 드러난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스티어링 휠은 기존 렉서스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예고한다. 여기에 인터랙티브 매뉴얼 드라이브가 결합되며, 전기 스포츠 주행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인터랙티브 매뉴얼 드라이브는 렉서스가 개발한 가상 수동 변속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마치 기계식 8단 변속기를 조작 패들 시프트를 사용해 모터 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마치 기계식 8단 변속기를 패들 시프트를 사용해 조작하는 듯한 ‘손맛’을 살려냈다. 렉서스가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감각을 전기차로 옮기는 데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렸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관에는 경량화를 위한 노력이 곳곳에 반영됐다. 21인치 알루미늄 휠을 비롯해 카본 후드, 카본 스포일러, 카본 헤드램프 베젤, 카본 루프, 카본 윙까지 스페셜 에디션 전용 파츠가 대거 적용됐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공차중량은 2,140kg으로 억제됐다. 아이오닉 5 N의 2,200kg과 비교하면 소폭 가벼운 수치다.
전기차의 ‘낭만’을 쌓아가는 렉서스
지금까지 전기 스포츠 SUV 시장은 사실상 현대차의 독무대에 가까웠다. 아이오닉 5 N은 강력한 성능과 7천만 원대라는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모델이었고, 같은 가격대에서 정면으로 맞설 상대를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 GV60 마그마는 600마력 대 출력과 3.3초의 제로백이라는 숫자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순수 성능만 놓고 보면 RZ 600e가 이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에는 다소 불리해 보인다.

그럼에도 RZ 600e F 스포츠 퍼포먼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기차에 수동 변속의 감각을 이식한 인터랙티브 매뉴얼 드라이브, 스티어 바이 와이어를 통한 민첩한 조향 감각, 그리고 마니아들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각종 카본 파츠까지. 이 차는 기록보다 감각을, 숫자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1억 2천만 원대로 확정된 가격은 분명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렉서스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전기차에 이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 기술과 철학이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가격대로 내려온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처럼 ‘내연기관의 낭만’이 아닌 ‘전기차의 낭만’을 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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