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제한 없애면 더 안전하다?
애리조나 주의 파격 제안
미국판 아우토반 등장할까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고속도로 속도 제한을 사실상 없애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주간에는 제한 속도를 두지 않고, 야간에는 시속 80마일(약 129km)까지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독일 아우토반처럼 특정 조건을 충족한 구간에 한해 운전자 스스로 ‘합리적이고 신중한 속도’를 선택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 내에선 매우 이례적인 시도가 된다.

이 법안을 발의한 인물은 애리조나 주 하원의원 닉 쿠퍼다. 그는 이 법안이 단순한 속도 상향이 아니라, 이미 현실과 괴리가 생긴 교통 규제를 재정비 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이미 많은 운전자들이 제한 속도보다 빠르게 주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형식적인 규제가 안전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는 위험해 보이는 속도 무제한이 왜 안전을 위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지, 그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속보다 위험한 건 속도 불균형
닉 쿠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이름은 ‘합리적이고 신중한 고속도로 주행 법안(Reasonable and Prudent Interstate Driving(RAPID) Act)’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애리조나 주 내 일부 농촌 지역 고속도로에서 주간에는 제한 속도를 없애고, 야간에는 최대 시속 80마일(약 129km)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도로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5만 명 이상의 도시 외곽 지역이어야 하며, 최근 5년간 사고율이 주 평균보다 낮은 구간만 대상이 된다. 상업용 차량은 아예 제외된다.

쿠퍼 의원이 이 같은 법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해외와 미국 내 과거 사례가 있다. 독일 아우토반의 일부 구간은 현재도 법적 최고 속도 제한이 없고, 미국 몬태나 주 역시 1990년대 한때 ‘합리적이고 신중한 속도’라는 기준 아래 주간 속도 제한을 두지 않은 적이 있다. 쿠퍼 의원은 이들 사례를 분석한 결과 속도 제한이 없는 환경에서 오히려 운전자들이 비슷한 속도로 주행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약 80% 이상의 운전자들이 시속 75~80마일 부근에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췄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제한 속도가 있는 구간에서는 규정을 무시하는 차량과 이를 지키는 차량 간 속도 차가 커지고, 이 상대 속도 차이가 사고 위험을 키운다는 것이다. 반면 제한이 없는 환경에서는 운전자들이 주변 흐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위험 요소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규칙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현실에 맞는 규칙으로 바꾸자는 주장에 가깝다.
무제한에도 조건은 있다
법안에는 ‘아무 도로나 무제한으로 풀겠다’는 접근은 담겨 있지 않다. 도로 설계 기준과 차로 수, 시야 확보, 교통량 등 인프라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주 교통 당국이 별도의 안전 기준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곧바로 전면 시행되지 않는다. 애리조나 주 남부 I-8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시범 운영을 거칠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확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런 논리가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몬태나 사례 역시 초기에는 사고율이 낮았지만, ‘합리적이고 신중한 속도’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결국 법적 문제에 부딪혔고, 다시 수치화된 제한 속도로 돌아갔다. 단속 기준이 모호해질 경우 오히려 법 집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려 요소로 남아 있다.
주민 반응은 냉담
현지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주민들은 ‘속도 제한이 있어도 위험한 운전자는 이미 많다’며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미친 아이디어’, ‘무섭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제한 속도가 사라지면 난폭 운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크다. 특히 대형 트럭이나 경험이 부족한 운전자와 마주칠 경우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이 법안은 속도에 대한 논쟁이라기보다, 규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숫자로 정한 제한이 안전을 담보하는지, 아니면 운전자의 판단과 도로 환경을 더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애리조나의 시도가 실제로 미국판 아우토반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하나의 논쟁적 실험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법안이 단순한 과속 허용이 아니라 기존 교통 정책 전반을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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