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 및 디자이너 출신들 모인 스타트업 ‘엔코어’
‘초심’ 잃은 로터스 대신, 초기 창립자의 이상 수호
007 시리즈 속 스포츠카, 현대적 기술로 부활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가 중국 지리(Geely)자동차에 인수된 후 전기차 브랜드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에비야(Evija)나 엘레트라(Eletre)와 같은 고성능 전기차와 SUV를 선보이며, 로터스 초기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인 ‘경량화(Lightweight)’와는 거리가 먼 ‘고급화’와 ‘전기화’의 길을 걷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과거의 아날로그적 유산’과 초기 로터스의 정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 로터스 출신의 베테랑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뭉쳐 ‘진짜 로터스 정신’을 되살린 레스토모드(Restomod) 차량을 선보여 화제다. 영국 자동차 스타트업 엔코어(Encor)는 로터스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에스프리 S1을 현대적인 기술로 재해석한 ‘시리즈 1(Series 1)’을 공개했다. 이들은 로터스의 창립 이념을 수호하는 ‘청지기’ 역할을 자처하며, 과거의 클래식 아이콘에 현대적인 성능과 감성을 불어넣는 ‘리마스터링’ 작업을 전문으로 한다.
영화 007의 상징, 에스프리 S1의 현대적 재해석

엔코어의 첫 작품인 엔코어 시리즈 1은 전설적인 스포츠카 로터스 에스프리 S1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해당 모델은 영화 007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서 잠수정으로 변신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1970년대의 상징적인 쐐기형(wedge-shaped) 디자인을 따른다.

엔코어 시리즈 1은 원본이 되는 에스프리 S1를 설계한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디자인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컴퓨터 지원 설계(CAD)를 통해 밀리미터 단위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특히 차체 패널은 모두 탄소 섬유 모노코크로 제작되어 오리지널 S1의 유리 섬유 쉘보다 훨씬 높은 강성과 정밀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성능 면에서는 후기형 V8 에스프리의 3.5리터 트윈 터보 V8 엔진을 기반으로 재설계되어 약 40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약 4초 만에 도달, 최고 속도 280km/h를 목표로 한다. 실내 역시 가죽, 알칸타라, 알루미늄 가공 부품을 사용해 고급스럽게 마감되었으며, 애플 카플레이, 360도 카메라 등 최신 편의 사양까지 갖추어 아날로그 감성과 현대 기술의 조화를 이뤘다.
후기형 섀시 활용과 로터스 출신 베테랑들의 만남

엔코어 시리즈 1의 개발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리마스터링’에 가깝다. 이 차량은 클래식 S1 모델의 뼈대를 그대로 활용하지 않으며, 대신 구동계와 섀시를 기증할 실제 운행 가능한 후기형 V8 에스프리(주로 S4) 차량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엔코어는 기증받은 V8 에스프리의 스틸 백본 섀시(backbone chassis)를 완전히 분해하고 보강하여 현대적인 성능 기준에 맞게 강화한다. 이 강화된 섀시 위에 S1의 디자인을 재현한 새로운 탄소 섬유 차체를 얹는 것이다. 이는 클래식 S1의 디자인은 살리면서도, 후기형 V8의 강력한 성능과 강화된 섀시를 활용하는 영리한 레스토모드의 전형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고난도 프로젝트를 이끄는 엔코어는 로터스 어드밴스드 퍼포먼스 디렉터 출신인 사이먼 레인(Simon Lane)이 공동 창립했으며, 로터스의 최신작 에미라(Emira)의 리드 디자이너 출신인 다니엘 듀란트(Daniel Durrant)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는 등 로터스 출신 핵심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파가니, 코닉세그, 포르쉐 등 다른 권위 있는 브랜드 출신 전문가들까지 합류하여, 이들의 전문성은 고성능 차량 엔지니어링 및 맞춤형 제작에 맞춰져 있다. 이 차량은 단 50대만 한정 생산되며, 기증 차량 가격을 제외하고도 약 43만 파운드(한화 약 7억 5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초고가 모델이다.
잊혀진 ‘경량 스포츠카’ 정신을 되살리려는 열망

엔코어의 공동 창립자인 사이먼 레인은 현재의 로터스 경영진과의 관계는 좋다고 밝히면서도, 엔코어의 설립 목적이 로터스의 ‘잊혀진 유산’을 기리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로터스는 전기차 중심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에바이야(Evija) 전기 하이퍼카나 엘레트라 전기 SUV 등은 채프먼의 초기 철학인 ‘경량화’와는 거리가 먼, 고성능 및 고급 전기차 시장을 지향한다. 엔코어 팀은 이러한 새로운 로터스의 방향성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과거의 아날로그적 유산’과 채프먼의 초기 정신을 현대적인 기술로 부활시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클래식 로터스 디자인의 “청지기(steward)”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며, 클래식 에스프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구현하기 위해 엔코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성공적인 결합

엔코어 시리즈 1의 등장은 현대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동화’라는 대세 속에서 과거의 ‘경량화’와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로터스의 진정한 정신은 어떻게 계승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엔코어는 디자인은 S1을, 기술적 기반은 후기형 V8 모델을 사용하며, 클래식 디자인과 현대적인 성능 및 안전 기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로터스 DNA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로터스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는 별개로 과거의 명차에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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