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기 픽업의 수요 둔화
비싼 가격, 부족한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 한계
EV 전환은 아직 더딘 현실
미국에서 전기 픽업은 한때 ‘EV 전환의 최전선’으로 불렸다. 대형 배터리를 깔고 모터를 더하면 고출력과 즉각 토크, 그리고 정숙성까지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드 F-150 라이트닝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픽업인 F-150의 전기 버전이지만, 2025년 10월 말 기준 판매량은 약 1만 대 수준이였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 모델은 68만 대 이상 팔렸다. ‘베스트셀러의 전기화’조차 시장을 흔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기 픽업이 마주한 여러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가격과 실사용의 간극

전기 픽업의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이다. 대형 배터리 팩과 냉각 시스템, 고전압 구동 부품이 차량 원가를 끌어올려, 내연기관 모델보다 월등하게 비싸다. 트럭을 ‘일하는 도구’로 여기는 소비자에게는 이 격차가 치명적이다.
실제로 포드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면, 가솔린 F-150의 시작가는 37,450달러, 전기 버전인 F-150 라이트닝은 54,780달러로, 기본형 기준으로도 약 1만7천 달러의 차이가 난다.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업무용 운전자나 플릿(상용) 고객에게 이 차이는 곧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격 문제와 함께 가장 자주 언급되는 요소는 주행 거리다. 픽업의 본질은 견인과 적재다. 하지만 전기 픽업 트럭은 대용량 하중을 싣거나 트레일러를 끌 때, 실제 주행 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는 무거운 화물을 운반해야 하는 상업용 사용자에게 전기차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는 배터리 효율이 낮아지고, 히터 혹은 보조 전장 장치가 추가로 전력을 소모하면서 주행 거리가 더욱 짧아진다. 실제 운행에서는 제조사가 제시하는 수치보다, 하루 운행 중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거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사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무거운 배터리 팩 자체가 적재용량을 감소시켜, “배터리 무게만큼 짐을 덜 싣는다”는 불만도 있다.
충전 인프라의 한계와 제조사의 전략 고민

또 다른 벽은 충전 인프라다. 도심의 급속 충전소는 늘고 있지만, 트레일러를 연결한 대형 트럭이 접근할 수 있는 충전소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출발 전부터 “충전 가능한 루트를 짜야 한다”고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한 번 충전이 꼬이면 일정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상용 운전자들은 전기 픽업을 “계획이 필요한 차량”이라고 부른다. 전기차 충전이 단순 편의성 문제를 넘어, 운용 효율과 비용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시장 반응에 따라 제조사들도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포드는 2024년 1월 ‘전기 픽업 수요 둔화’를 이유로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2024년 4월부터 단일 시프트로 줄였으며, 같은 해 11월부터는 생산을 잠정 중단했던 바가 있다. 스텔란티스 또한 ‘북미 대형 전기 픽업 수요 약화’를 이유로 2025년 9월에 전기 Ram 1500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보류했다.
여러 업체들이 배터리 경량화와 고출력 충전 인프라 확충, 소프트웨어 효율 개선 등으로 대응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도입 단계에 이르다.

전기 픽업은 실패한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혁신의 상징’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숙하고 즉각적인 가속, 높은 출력 등 ‘전기화의 장점’은 분명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장이 요구하는 건 그보다 현실적인 것이다. 실사용 효율성과 운용 편의성에서는 여전히 내연기관 트럭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트럭이란 본래 멀리 가고, 무겁게 싣고, 언제든 달려야 하는 차다. 이 본질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전기화는 단순한 변신일 뿐 진정한 진화라 할 수 없다. 결국 전기 픽업의 해답은, 현실에 맞는 균형점을 찾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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