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1011년(고려 현종 2)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을 담아 목판(木板)으로 조성되기 시작해 1087년(고려 선종 4) 완성됐다. 중국 북송의 개보칙판대장경(開寶勅版大藏經)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대장경이며,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인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보다 222년 앞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판(經板)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다가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의 2차 침입으로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석가모니의 말씀과 불교의 계율이 담긴 경판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후 수백 년 동안 더 이상 인쇄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초조대장경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65년 두루마리 형태의 인쇄본 1천800여 권이 다행히 일본 교토 남선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려대장경연구소가 2004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이어, 2010년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제작에 나섰다. 초조대장경을 조성할 당시 인쇄본은 5천924권이었으나, 상당수가 사라지는 바람에 DB 구축 당시에는 45% 가량인 2천657권만 전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대 다수인 2천440권이 일본 교토 남선사와 대마도 역사박물관, 이키섬 안국사 등에 소장돼 있었으며, 국내에는 217권만 남아 있었다. 이 가운데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2천40권이었다.
초조대장경 조성이 시작된 지 꼭 1천 년이 지난 뒤인 2011년 3월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이어, 일본 교토 남선사에서 ‘한·일공동 고려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봉정식’이 잇따라 열렸다. 봉정식은 복원 간행된 초조대장경을 부처님께 봉정하는 의식이다. 동화사 통일기원대전에서 열린 봉정식 이후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2천40권 중 1차분 100권이 고려시대 모습 그대로 대구시민에게 공개됐다. 이를 두고 시민들은 “초조대장경이 1천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환호했다. 이어 2014년 초조대장경 인쇄본 2천40권 전질의 복원 간행이 완료되면서 대구 팔공산은 초조대장경의 본향으로 옛 명성을 되찾게 됐다.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제작
팔공산 동화사 약사여래대불 맞은편에 자리한 통일기원대전에 들어선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 안쪽에 자리잡은 갈색 나무상자인 경함(經函) 안에는 두루마리 형태의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2천40권이 고이 모셔져 있다. 이 곳에 봉안된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고려대장경연구소 주도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진한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사업의 결과물이다.


초조대장경이 대구 팔공산으로 1천 년 만에 돌아온 과정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종림 스님이 초대 이사장을 맡은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을 디지털화하고 연구하기 위해 1993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설립됐다. 연구소는 고려대장경 DB를 구축해 고화질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 검색 등을 제공하고 있다. 구축된 DB에는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두루마리 2천40권(경판 6만여 판 분량)을 비롯해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대장경 경판 16만2천516판, 돈황 불교문헌 341롤, 화엄석경 1만3천여 점이 저장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소는 고려대장경의 세계화를 위해 학술연구와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간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한·일공동 초조대장경 디지털DB 구축 및 영인본 출판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본 남선사 소장본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초조대장경 인쇄본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DB 구축을 진행했다. 이어 2010년 대구시, 일본 남선사와 함께 ‘한·일공동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위원회’(위원장 종림 스님)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2014년까지 매년 동화사와 남선사에서 연차별 복원간행본 봉정식을 가졌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는 2011년 세계적 석학들을 초청해 고려대장경 1천 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으며,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특별전도 마련됐다. 2012년에는 대구 중심가에서 초조대장경 이운행사도 열렸다.


고려대장경연구소 관계자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초대 이사장인 종림 스님이 그동안 사라졌다고만 믿었던 초조대장경을 찾아 전산화 작업을 거치면서 초조대장경이 주목받게 됐다”면서 “우리나라 초조대장경은 1천 년의 문화유산으로, 당시 고려의 인쇄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려주는 명품 대장경”이라고 강조했다.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사업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현존하는 초조대장경 인쇄본 2천40권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필름으로 인쇄한 뒤 실크스크린 천을 제작하고, 먹물로 한지에 인쇄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장기 보존이 가능하도록 일반 잉크가 아닌 먹을 사용해 인쇄했으며, 제본방식과 대장경을 담는 경함 등도 최대한 고려시대 원형대로 복원했다.

인쇄는 전통인쇄술을 보유한 대장경문화학교(대표 안준영)가 맡았다. 경남 함양에 있는 비영리문화단체인 대장경문화학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대장경 제작과정에 대한 연구와 목판 문화유산의 복원, 판각 및 고인쇄 전문인력 양성, 전시 등을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남덕유산 자락에서 이산책판박물관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북 전주시가 위탁한 전주한옥마을 내 완판본문화관과 전주목판서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시대 초조대장경 인쇄본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 화공약품을 전혀 쓰지 않은 전통한지를 사용했다. 한지는 문경에서 활동 중인 국가무형유산 김삼식 한지장이 생산한 한지가 채택됐다. 김 한지장의 한지 생산라인과 도구는 일부 만 현대화됐을 뿐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닥을 재배하고 잿물을 내리고, 닥을 삶고 두드려 종이를 뜨는 모든 작업이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땅에 닥나무를 심어 사용하고 있다. 한지는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전통한지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김 한지장의 작품은 초조대장경 복원 간행사업과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에 채택됐을 뿐만 아니라, 2019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 보존처리용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1천 년 만의 귀환’⋯ 활용방안 모색해야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던 고려가 국가 차원에서 문화적 역량과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해 조성한 초조대장경은 대구의 문화적 자산이므로 효과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하지만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은 자칫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복원된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려 대구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복원 간행이 마무리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뚜렷한 활용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복원간행사업이 추진될 당초에는 초조대장경 경판이 봉안됐던 부인사 옆에 역사공원을 조성해 초조대장경을 전시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한 문화해설사는 “부인사에는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금강반야바라밀경과 어제비장전 변상도 한 점씩 있을 뿐이고, 복원 간행된 초조대장경은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있다”며 “문화유산이란 원래 제 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에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을 원래 있던 부인사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공동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위원회를 주도했던 종림 스님이 2012년 대구 국채보상공원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초조대장경 맞이 이운퍼레이드’에서 언급했던 발언을 되새겨 본다. 종림 스님은 인사말에서 “대구시민과 국민들의 힘으로 초조대장경이 복원될 수 있었다”며 “이를 계기로 계층간, 국가간 갈등과 분쟁을 뛰어넘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도 환영인사에서 “고려대장경에는 서양의 르네상스를 이끈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지성인도 깜짝 놀랄 만한 문화콘텐츠가 담겨져 있다”며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를 천 년만에 복원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분의 언급은 모두 국보급 문화유산의 복원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두교 역할을 기대한 내용이다.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했던 고려시대 사회를 하나로 통합했던 초조대장경이 오늘날 다시 대한민국의 역량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구지역에서도 초조대장경 경판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3년 전쯤 대장경문화학교가 동화사 포교당 보현사와 함께 기획한 초조대장경 판각 초급반 강좌가 그것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시간에 20여 명이 목판에 대장경을 새기는 공부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오래 가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는 “초조대장경의 존재와 가치를 아는 대구시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대구가 출판문화의 거점이란 사실과 함께, 우리 선조의 문화와 정신을 담은 초조대장경을 널리 알리고 교육해야 복원간행본을 만든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진 기자 sjkim@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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