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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들을 태운 차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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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72)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1년째 귀촌 이야기

설날이다. 아들, 며느리, 예은이와 예진이가 내려온단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며느리에게 싸 줄 물건들을 챙기고, 손녀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이럴 때 ‘머슴’인 나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빈둥빈둥 아내 곁에서 일을 거들긴 하지만, 아내는 그리 고마워하는 눈치도 아니다.

시골 사는 기쁨 중 하나는 명절마다 아들 내외와 손녀들이 내려오는 것을 반기는 일이다. 역시 명절은 시골에서 보내야 제맛이다. 집 앞 봉황천에서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하며 눈사람을 만들던 추억이 새롭다. 올해는 봉황천이 얼지도 않았고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올 설에는 예은이와 예진이가 통영에 가고 싶다고 했다. “통영 가서 뭐 하고 싶니?”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요. 싱싱한 회도 먹고 싶고요.” 결국 설 연휴 첫날 통영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들 내외와 아내가 한 차에 타고, 나는 예은이, 예진이와 함께 탔다. 둘째 손녀 예진이가 지난 여름방학 때 내려와 운전 연습을 한 뒤로 서울에서는 기회가 없었기에, 이번에 다시 운전대를 잡게 해준 것이다.

둘째 손녀 예진이가 통영까지 운전연습을 한다. ©조연환

“예진아, 언니가 옆에 타서 가르쳐 주는 게 좋지 않겠니?” “아뇨, 전 언니보다 할아버지가 옆에 계시는 게 훨씬 편해요.” “그래, 알았다.” 아내도 내가 운전을 가르쳤고, 첫째 예은이에 이어 둘째 예진이까지 내 손으로 가르치고 있다. 모두 편안하게 운전을 잘 배웠다고 하니, 진작 이 길(운전 강사)로 나갈 걸 그랬나 보다.

손녀들과 한 차로 통영에 가며 정겨운 대화를 나눴다. “예은아, 예진아! 너희는 언제쯤 남자친구를 데려올 거니?” “아직 없어요.” “너무 고르는 거 아냐? 어떤 타입을 원하는데?” “아빠 같은 남자요!” “아빠가 어떤데?” “잘 생기고 유머러스하잖아요.” “할아버지 같은 남자는 어때?” “할아버지도 좋긴 한데, 아빠만큼 유머러스하진 않으셔요.” 서운하긴 해도 사실이 그러니 어쩌랴. 예은아, 예진아, 다음엔 꼭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너라.

통영 전통시장의 모습 ©조연환

통영에 도착하니 시내가 무척 붐빈다. 설 명절을 맞아 모두 통영으로 모인 모양이다. 전통시장에 들어서니 즐비하게 늘어선 함지박마다 생선들이 펄떡거린다. 서로 제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활기가 넘친다. 발 디딜 틈 없는 시장통이지만, 이런 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다. 아내는 줄돔회를, 손녀들은 방어회를, 아들은 멍게와 해삼을 골랐다.

설 명절을 맞아 활기가 넘치는 시장…즐거운 설 명절이다. ©조연환

통영 바다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조연환

싱싱한 회를 먹고 바닷바람을 쐬고 나니 녹우정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얘들아, 저녁엔 뭘 먹을까? 대게도 있고 소고기도 있고 고추장 삼겹살도 있는데.” “당연히 할머니표 고추장 삼겹살이죠!” 내심 선물로 들어온 대게와 소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메뉴 선택권은 진작에 손녀들에게 넘어갔다. 나는 모닥불을 피우고 아들은 숯불을 피운다.

쌀쌀한 밤공기 속에 타오르는 모닥불과 숯불의 온기가 상큼하게 느껴진다. 숯불에 구운 고추장 삼겹살 한 쌈을 며느리는 시어머니 입에, 시어머니는 다시 며느리 입에 넣어준다. 예은이와 예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이서 소곤대며 웃음꽃을 피운다. 아들과 나는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모닥불과 숯불의 온기가 상큼하게 느껴진다. ©조연환

“아들아, 지난 주일 네 대표기도에 교인들이 은혜 많이 받았다고들 하더라.” “아이고, 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버지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요.”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 대를 이어 장로로 봉사하는 아들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맙다.

설날아침예배를 드린다. ©조연환

설날 아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감사예배를 드린다. 아들이 장로가 된 뒤로는 가정예배도 아들이 인도한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가 마무리 기도를 올렸다. “제게 주신 은혜와 믿음, 그리고 복을 아들 내외와 손녀들에게 갑절로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멘.”

예배 후 세배 시간. 아들 내외가 세배를 하며 봉투를 건넨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고맙다. 내 아들, 며느리가 되어주어 참 고맙구나. 믿음 안에서 큰 복 누리길 기도한다.” 예은이도 취직했다며 할머니에게 봉투를 내민다. “다음엔 더 많이 드릴게요.” “예진아! 너도 얼른 취직해서 언니처럼 용돈 많이 다오. 알았지?” 역시 봉투를 받는 기쁨은 크다. 비록 나가는 세뱃돈이 더 많을지라도 말이다.

정성껏 준비한 갈비찜과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나니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이제 가족들이 떠날 시간이다. 아내는 미리 챙겨둔 것들을 챙겨주느라 바쁘다. 직접 농사지은 것, 선물 받은 것들을 차 트렁크가 가득 차도록 실어준다. “내 먹을 건 두고 아들네 다 싸줘요.” “얘야, 묵은 김치도 좀 가져가라.” “어머니, 됐어요. 이제 더 실을 데가 없어요. 다음에 와서 가져갈게요.” “아이구, 당신이 나보다 더 며느리 챙겨주는 걸 좋아하면서 무슨 소리예요.”

가족들이 떠날 시간이다. ©조연환

네 식구가 떠난다.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마치 다시는 못 볼 곳으로 가는 듯하다. 이별의 시간이 길어진다. “이제 얼른 가거라. 차 막힐 텐데 조심하고.” 아내는 손녀들을 태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여보, 당신 올 설에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뭘요. 당신이 많이 도와줘서 수월했어요. 그래도 좀 힘들긴 하네요. 내년부터는 우리가 서울로 올라갈까 봐요.” “그래요, 그것도 좋겠네요. 그래야 당신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좋다지만, 아이들이 떠난 녹우정은 텅 빈 듯 허전하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며칠간 명절 준비로 애를 쓰더니 몹시 피곤했나 보다. 안방 문을 조용히 닫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참 맑다.

녹우정은 텅 빈 듯 허전하다. ©조연환

녹우정에서 몇 번이나 더 설 명절을 쇨 수 있을까. 바라건대, 아내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아껴가며 오래도록 꽃 심고 채소 키우며 이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여보, 올 설에도 참 수고 많았어요. 사랑합니다.

▼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산림청장의 귀촌일기」를 만나보세요. ▼

▼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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