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다 했는데…” EU의 정책 변화에 희비 교차하는 자동차 업계,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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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 내연기관 전면 금지, 사실상 철회
전동화 집중한 볼보·배터리 업계의 거센 반발
독일의 압박과 하이브리드 전략 ‘현실적 승리’
유럽연합(EU)이 애초 2035년부터 시행하려던 ‘내연기관 신차 판매 전면 금지‘ 방침이 사실상 철회되거나 대폭 완화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며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거대한 혼돈에 빠졌다. 2021년 야심 차게 발표된 이 정책은 기후 위기 대응의 상징이었으나, 2024년부터 본격화한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와 보조금 축소, 그리고 유럽 자동차 산업의 중추인 독일 브랜드들의 경영 위기가 겹치며 결국 ‘현실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는 단순히 환경 규제의 변화를 넘어, 제조사들 사이의 생존 게임 판도를 완전히 뒤흔드는 결정적 변수가 되었다.

정책 뒤집기의 서막은 2025년 5월 독일 정권 교체와 함께 시작되었다. 보수 성향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내연기관 폐지 재검토를 강력히 시사했고, 같은 해 11월 EU 집행위원회에 하이브리드 허용을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내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결국 12월, EU 집행위원회는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100%에서 90%로 하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검토하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2035년 이후에도 하이브리드와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의 생존 길이 열리게 되었다.
정책 선회와 산업 위기: 독일의 배수진이 불러온 결과

이번 정책 선회의 이면에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붕괴를 막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국가 GDP의 약 5%를 차지하는 핵심 동력이나, 최근 폭스바겐이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공식화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하는 등 전례 없는 위기론이 확산했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고, 내수 시장에서는 수요 정체로 재고가 쌓이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내연기관 폐지’라는 족쇄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 자살 행위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메르츠 독일 총리가 주도한 ‘기술 중립성’ 논리는 결국 EU를 움직였다. 2021년 대비 배출량 10% 수준 내에서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허용한다는 이번 개정안은 독일 브랜드들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폭스바겐과 BMW는 이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바탕으로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력을 재정비할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규제 일관성을 믿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은 다른 진영에는 ‘국가적 사기’나 다름없는 배신으로 다가오고 있다.
찬성파 vs 반대파의 격돌: “약속 믿은 자”와 “살아남은 자”

정책 변화에 가장 강력하게 항의하는 곳은 볼보다. 볼보는 이미 ‘2030년 완전 전동화’를 목표로 내연기관 개발을 중단하고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선집행 했다. 볼보의 에릭 세베린손 CCO는 “이미 준비를 마쳤는데 정책을 바꾸는 것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테슬라와 리비안 등 전기차 전용 브랜드들 역시 규제 완화가 미래 경쟁력을 포기하는 퇴보라며 EU에 공동 서한을 보내 정책 유지를 촉구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반면, 토요타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찌감치 “전기차만이 정답은 아니다”라며 하이브리드 중심의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고수해 온 토요타는 과거 ‘기후 낙오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자신들의 예견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독일 브랜드들 역시 하이브리드 투자 재개를 선언하며 토요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결국 규제 준수를 위해 전동화에 앞서간 브랜드는 전략적 외톨이가 되고, 변화에 저항하며 시간을 끈 브랜드가 승기를 잡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배터리 업계다. 한국의 배터리 3사(LG·삼성·SK)와 유럽의 노스볼트는 EU의 약속을 믿고 현지에 수조 원 단위의 기가팩토리를 건설했다. 내연기관 수명 연장은 곧 배터리 수요 급감으로 이어지며, 가동률 저하와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자금난에 빠진 노스볼트는 이번 정책 완화로 인해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했다. 배터리 업계는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라는 날 선 반응을 보이며 향후 손실 보상 요구 등 법적 갈등까지 예고하고 있다.
중국차 견제: “시간 벌기”인가 “주도권 헌납”인가

유럽 정치권이 내연기관 폐지를 늦춘 결정적 명분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중국 견제’다. 전기차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을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유럽이 가장 잘하는 ‘정밀 기계(내연기관)’ 분야의 수명을 늘려 유럽 자동차 생태계의 완전 붕괴를 막겠다는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볼보의 짐 로언 CEO가 경고했듯, 유럽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은 전기차 기술력을 더 고도화하거나 주행거리 2,000km에 달하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기술로 유럽의 뒷문을 공략할 시간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상황은 중국 자동차를 막으려다 중국 배터리와 부품망에 안방을 내주는 딜레마로 흐르고 있다. 독일이 지킨 ‘내연기관’이라는 성벽 안으로, 정작 하이브리드 기술력과 압도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갖춘 중국 기업들이 스며드는 형국이다. 2035년의 ‘완전 폐지’ 목표가 ‘제한적 허용’으로 바뀌면서, 유럽 자동차 산업은 당장의 공장 폐쇄는 막았을지 모르나, 볼보의 주장대로라면 미래 산업인 소프트웨어와 배터리 주도권 싸움에서는 스스로 후퇴를 선언한 꼴이 되었다.

EU의 정책 변화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가 기술이나 환경이 아닌, 철저히 ‘정치와 경제 논리’에 의해 쓰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규제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면서 소비자들은 “어떤 차를 사야 10년 뒤에도 탈 수 있을지” 혼란에 빠졌고, 제조사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흩어지고 있다. 전동화 선두 주자들이 겪는 허탈함과 뒤처졌던 자들이 누리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유럽 자동차 시장은 2026년부터 개정될 법안을 두고 더욱 치열한 보조금 경쟁과 공방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태의 승자는 유럽이 잘하는 기술을 지켜낸 독일과 현실을 직시했던 토요타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유럽이 주춤하는 틈을 타 기술 격차를 벌릴 중국이 진정한 웃음을 지을 가능성이 크다. “준비 다 했는데 판을 바꿨다”라는 볼보의 절규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길을 잃어버린 유럽 자동차 산업의 현재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업계의 관심은 2035년이라는 숫자가 아닌, 그 회색 지대 속에서 누가 먼저 중국의 공세를 막아내고 수익성을 확보하느냐는 진흙탕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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