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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화의 거점, 대구] (1)고려시대-초조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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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 제공.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문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또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말도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를 강조한 표현들이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변형된다. 하지만 기록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이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며, 그 역사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게 된다. 이 때문에 인류는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1992년에 이르러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 등재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기록문화를 중시했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의 기록물도 2017년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됐다.

대구가 기록문화의 거점이었던 근거는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대표적으로 고려시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경판은 고려시대 수도인 개경 근처에 있는 흥왕사 대장전에 한동안 보관되었다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다. 조선시대에는 1601년(선조 34)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은 경상감영이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중심으로 ‘영영본(嶺營本)’을 간행하면서 서울과 전주를 포함한 전국 3대 출판 거점의 역할이 수행했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매개물은 책판(冊版)이 유일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구가 영남권 전역에 지식과 정보를 전파한 기록문화의 본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경상감영의 관할지역을 현재 행정구역으로 살펴보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부산·울산·경남지역이 모두 포함된다.

이 대목에서 두 학자의 발언이 무게를 싣는다. “고려의 초조대장경과 조선의 영영장판은 대구의 보물이자 역사이고, 미래사적 가치가 더 크다.”(정재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대구의 출판문화는 고려부터 근대까지 이어져 오면서 지속적으로 한반도 출판문화의 중심에 있었고, 그것이 대구정신을 만들었다.”(박용찬 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록은 역사 및 문화 정체성을 찾는 통로로 그 기능을 수행한다. 기록물의 탐색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를 브랜드로 만듦으로써 도시마케팅을 위한 자산으로도 쓰임새가 충분하다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直指)’를 간행한 흥덕사 소재지인 충북 청주는 1992년 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고, 2021년 대한민국독서대전을 유치하면서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주창하고 있다. 또 전라감영 소재지로 ‘완판본(完板本)’을 간행했던 전북 전주는 2011년부터 전주한옥마을에 완판본문화관을 운영하면서 ‘기록문화의 도시’를 내세우고 있다. 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 소재지인 경남 합천은 매년 ‘합천기록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때 대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출판문화, 기록문화의 발신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대구가 교육과 문화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바탕이다. 그러므로 대구시민들은 대구가 기록문화의 도시란 정체성을 부각시켜야 마땅하다. 디지털 미래사회에서 문화산업의 원천이 되는 기록문화의 거점이라는 도시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대구의 정체성을 확고히 수립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기록문화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그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본다.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된 뒤 출판

초조대장경은 중국 북송(北宋)의 관판(官版)대장경(971∼983)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간행된 한역(漢譯) 대장경이다. 송나라 태조에 의해 간행된 대장경이 991년(성종 10) 고려에 전래되자, 불교국가인 고려는 큰 자극을 받고 대장경 간행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993년(성종 12)부터 거란의 침략이 시작됐고, 1011년(현종 2)에는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을 갔으나 거란군이 송악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고려인의 단결과 외세 침입을 극복하는 염원으로 대장경판을 새기기로 서원한 뒤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남아 있다.

판각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초조대장경의 권말에 간행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1011년에 시작해 1087년(선종 4)까지 76년간 새겼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1019년에서 1087년까지 69년 동안 판각했다는 설과 함께, 1011년에서 1051년까지 41년이 걸려 완성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는 있으나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에 실린 「대선왕제종교장조인소(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에 따르면 현종 재위 기간(1009~1031년) 중인 1011년에서 1029년경까지 북송의 관판대장경과 같은 분량의 판각은 모두 마쳤음을 알 수 있다.

초조대장경은 두루마리 형태인 권자본(卷子本)이며, 한 면에 23줄 14자씩 배열돼 있다. 규모는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 당시의 한문으로 번역된 대장경으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특히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그 의미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변상도(變相圖)인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을 비롯해 정교하게 새겨진 판화가 풍부해 미술사적 가치도 크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완성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기도 하다. 불력에 의한 국가 수호를 도모하는 것이 제작의 직접적인 동기였지만, 고려의 문화적 역량이 집결된 국가적 사업이었다. 이 때문에 초조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성취로 평가되면서 고려가 문화대국이었음을 입증하는 증표가 된다. 특히 고려인들은 거란족이 쳐들어오는 전쟁 중에 이 위대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는 중국 북송의 관판대장경이 평화로운 문화적 전성기에 조성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팔공산 부인사

초조대장경 경판은 고려시대 수도인 개경 근처에 있는 흥왕사 대장전에 한동안 보관됐다가 대구 팔공산 부인사로 봉안됐다. 초조대장경이 팔공산까지 옮겨진 이유는 당시 거란족의 침략으로 개경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6년 부인사에서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던 돌 수조와 수로가 발굴되면서 초조대장경 경판을 보관만 했던 것이 아니라, 출판이 이뤄졌던 사실이 밝혀졌다. 초조대장경 인쇄본 세 종류를 비교했을 때 인쇄 상태가 모두 달랐던 점은 여러 차례 인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당시 대구가 초조대장경 경판을 관리하면서 출판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던 도시란 것을 증명한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는 ”대장경을 한 번 찍으려면 경판이 6만 장이라 하더라도 양면에 판각돼 있기 때문에 한 번에 12만 장의 종이가 필요하다”면서 “당시 출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당연히 종이, 먹, 전문인력이 필수적이었다. 그 많은 조건을 한꺼번에 갖춰야 이뤄질 수 있는 출판문화가 당시 팔공산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초조대장경을 봉안하면서 보유했던 고려시대의 뛰어난 목판인쇄문화가 대구를 출판문화의 중심으로 키워냈다”면서 “초조대장경은 대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므로 대구시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교육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가 초조대장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몽골군 침입으로 경판 소실

초조대장경 경판은 1232년(고종 19) 몽골군의 침입 때 모두 불에 타 사라졌으며, 경판으로 찍어낸 인쇄본만 국내외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남권희 명예교수를 비롯해 초조대장경을 연구한 학자들은 초조대장경 인쇄본 대다수가 일본 교토의 남선사와 대마도 역사박물관, 이키섬 안국사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초조대장경이 일본에 더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불교국가인 일본은 독자적으로 대장경을 간행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장경을 수입해 갔으며, 임진왜란 때와 일제강점기에 약탈하기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초조대장경은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전질을 모을 수가 없었다. 초조대장경을 만든 이 땅에서 전질을 모을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초조대장경 판각을 시작한지 1천 년이 되던 해인 2011년 행동으로 옮겨졌다. 대구시와 동화사가 교토의 남선사 등지에서 초조대장경 인쇄본 전질을 모은 뒤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당시 모습으로 그대로, 실물 크기로 복원해 간행하는데 성공했다. 1천 년 만에 복간된 초조대장경은 현재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돼 있다.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던 초조대장경 경판이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에 흔히 ‘팔만(八萬)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再雕)대장경’이 만들어졌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 경판은 경남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에 봉안돼 있다. 1236년(고종 23) 불력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대장경 경판을 다시 판각하는 대역사를 시작한지 16년 만인 1251년(고종 38) 9월25일(양력 10월11일)에 완성됐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세 번씩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졌다. 경판 8만1천258장에 8만4천 개의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린다.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존돼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상진 기자 sjkim@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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