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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화의 거점, 대구] (3)조선시대-경상감영본(영영본)

대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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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 영영장판(1832년 판각). 영남문화연구원 제공.

기록문화의 거점으로서 대구의 위상은 초조대장경이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던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1년(선조 34) 대구에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판각한 뒤 영영본(嶺營本)을 펴내 경상도 전역은 물론, 조선 8도를 대상으로 배포했다. 영영장판에서 영영은 경상감영이며, 장판은 소장한 목판을 말한다. 그리고 영영본은 경상감영에서 간행한 책을 뜻한다.

◆경상감영, 유학 서적 중심으로 233건 간행⋯조선 8도 가운데 가장 왕성

조선은 건국과 동시에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대부들에게 필요한 책을 대규모로 보급했다. 책을 보급하는 과정은 한양에서 전국에 보낼 책을 전부 만들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조선 8도를 관리하는 관청인 감영에서 필요한 책을 목판으로 간행해 감영이나 향교, 서원, 유림에 보급했다. 경상도에서는 대구에 자리한 경상감영이 한양에서 활자나 목판으로 출간된 서적을 다시 목판으로 대량 출간해 배포하고, 그 책판을 보관해뒀다가 책이 더 필요하면 다시 간행했다.

그 당시 책의 간행은 감영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감영을 연구한 김무진 성천역사문화연구소장(전 계명대 사학과 교수)은 “감영은 조선 통치체제의 단위이자, 당시의 사회문화가 반영된 기구”라면서 “감영의 역할 크게 두 가지다. 세금 징수와 치안 유지 등 해당지역을 통치하는 역할과 함께, 교육과 출판을 통해 주민들을 교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경상감영은 영영본을 출간하는 것 이외에도, 1721년(경종 1)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기관인 ‘낙육재(樂育齋)‘를 설치해 독서와 학술연구를 장려했다. 낙육재는 대구에 설립된 관립도서관의 효시다. 이곳에서는 경상도의 유능한 선비를 선발해 기숙하도록 하면서 공부를 시켰다.

경상감영은 대구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일대에 위치했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와 함께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하는 경상도 전역을 관할하는 관찰사가 거주하면서 업무를 수행했던 공간이다. 경상감영은 조선 초기 경주부에 설치됐다가 1519년(중종 14) 경상도가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분리되면서 상주와 경주에 존재했다. 이후 성주, 대구, 안동 등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가 1601년(선조 34) 경산, 하양, 화원 등이 대구부에 합속되면서 대구에 설치됐다. 그 뒤 1608년(선조 41)부터 1684년(숙종 10)까지인 감영의 혁파기간을 제외하고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경상도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눠지기 전까지 존속됐다.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한 이유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가 전략적 요충지와 교통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고,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의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술국치로 1910년부터 경북도청으로 쓰였던 경상감영은 1966년 경북도청이 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한 뒤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됐으며,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상감영에서의 출판이 기록상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9년(1427년) 7월18일자 기사다. ‘경상도 감사가 새로 간행한 『성리대전』을 바쳤다’는 내용이다. 명나라에서 성리대전이 발간된 지 4년 만에 조선 정부가 입수하고, 책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진상하라고 왕명이 내려진 지 채 2년이 되기 전에 경상감영에서 모두 70권이나 되는 성리대전의 책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상감영에서 출간된 영영본은 목판의 간행본을 기준으로 현재 233건이 확인되고 있다. 이 수치는 정확한 건수가 확인되지 않는 전라감영과 강원감영(55건), 함경감영(97건) 등 다른 감영에서 간행된 책보다 많은 편이다. 경상감영의 서적 간행이 조선 8도 감영 중에서 가장 활발했던 것이다. 경상감영에서 출판이 융성했던 것은 영남 유림의 활동이 왕성했던 만큼, 책을 읽는 수요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상감영 간행물, 즉 영영본의 주제별 분포를 보면 다른 지역의 감영에 비해 종수로 보나, 비율로 보나 유학 서적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사서삼경은 44건이나 간행됐다. 영영장판 간행본을 기준으로 전체 233건 가운데 유학 관련 책은 모두 111건이다. 이밖에 의서, 병서, 농서 등 실용분야 책도 17건이나 간행됐다. 특히 17세기 중반 효종 때부터 경상감영 남쪽의 객사 앞에서 약령시가 운영됐던 만큼, 의서인 『동의보감』은 두 차례나 간행됐다. 그리고 한국 고서의 전반적인 경향과 마찬가지로 문집류도 많다. 관찰사는 출판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해당 감영에서 자신의 선조 문집을 간행하려고 했고, 주위에서 자기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감사에게 청탁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문집류와 족보류, 연보류처럼 특정 인물 또는 문중과 관련된 책판은 감영 밖의 서원이나 사찰에 보관되기도 했다. 경상감영 소장 책판목록에 따르면 대구 외곽인 동화사, 용천사, 용연사 등 사찰에서 책판을 판각한 뒤 관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영영본을 찍어낸 영영장판은 9세기 말에 101종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연구됐다. 소장처를 구분해 보면 감영에서 68종, 서원에서 6종, 사찰에서 27종을 각각 소장했다.

정재훈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전통시대나 지금이나 책은 지식과 문화를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릇이며, 서적의 가치나 중요성은 매체가 다양해진 오늘날보다 기술적 수준이 낮았던 전통시대에 더욱 높았다”며 “조선시대 중앙정부에서 경상도를 인재의 보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하게 인식한 데는 경상감영에서 왕성하게 간행된 영영본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감절요』 영영장판(1832년 판각)의 간기(刊記). 음각으로 ‘세재임진영영신간(歲在임壬辰嶺營신新刊)’이라고 새겨져 있다. 영남문화연구원 제공.

『통감절요』 영영장판(1832년 판각)으로 간행된 영영본. 간기(왼쪽)가 음각으로 ‘세재임진영영신간(歲在임壬辰嶺營신新刊)’이라고 새겨져 있다. 영남문화연구원 제공.

‘영영장판’으로 간행된 영영본 『속명의록(續明義錄)』(1778년 간행)의 간기. 영남문화연구원 제공.

‘영영장판’으로 간행된 영영본 『사보략(史補略』(1863년 간행)의 간기. 영남문화연구원 제공.

◆실학자 유형원의 『반계수록』도 간행⋯경상감영에서 조선 8도 배포

왕성했던 경상감영의 출판이 경상도라는 울타리에 갇힌 것만은 아니었다. 영조 후반에 이르러 당시 금서로 지정됐던 실학의 효시, 반계 유형원(1622~1673)의 개혁 교과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이 왕명에 의해 100년 만에 경상감영에서 책판으로 제작된 뒤 출간돼 사고(史庫)와 홍문관을 비롯해 조선 8도에 배포되기도 했다. 그 당시 흔적이 경주최씨 집성촌인 대구 동구 옻골마을 보본당에 ‘반계수록 최초 교정 장소’란 안내문과 함께 남아 있다. 이는 반계수록에 정통한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이 대구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이 실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혁신을 주창하는 반계수록을 배포하는 분기점에 백불암이란 인물과 함께, 대구란 도시가 있었던 것이다. 대구가 혁신의 분기점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유형원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 건국 이래 누적됐던 여러 가지 모순이 극대화되는 때였다. 유형원은 이러한 조선 사회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양반 문벌제도와 노비제도, 과거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한 유학자다. 조선시대 국가 개혁안의 교과서라고 평가받는 반계수록은 19년간의 집필기간을 거쳐 1670년(현종 12) 전북 부안에서 완성됐으나, 당시 집권세력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탓에 금서로 지정됐다. 이 책에서는 토지제도의 개혁과 함께, 학문이나 행실이 뛰어난 인물에 대한 추천제 등용을 주장했다. 이는 유형원이 생각하고 있는 사회 개혁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사회와 경제, 특히 토지제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반계수록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과 더불어 조선조 2대 유가 경세서로 평가받고 있다.

유형원의 개혁사상은 영조대에 이르러 인정을 받았으며, 반계수록이 완성된 지 100년 만인 1770년(영조 46) 경상감영에서 관찰사 이미가 주관한 가운데 26권 13책 규모의 책판으로 제작된 뒤 대량 인쇄돼 전국에 널리 퍼뜨려졌다. 당시 왕명을 받아 반계수록을 간행하기에 앞서 교정을 책임진 인물이 백불암 최흥원이었다. 조선 성리학의 지형도로 볼 때 대구는 퇴계학의 본거지인 경북 북부지역의 남쪽에 위치하고, 남명학의 본거지인 경남 서부지역의 동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구유학은 영남학파의 주변부에 해당한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크게 주목할 만한 성리학자가 대구지역에 많지 않은 가운데, 백불암은 18세기 대구는 물론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대구를 빛낸 인물로 선정됐으며, 양양향교가 선정한 ‘동방유현(東邦儒賢) 218인’에 등재되기도 했다.

최흥원이 『반계수록』을 접하게된 것은 1748년() 44세 되던 해였다. 최흥원의 어머니 함안조씨 집안은 서울의 소론 명문 집안이었던 평창이씨와 혼인이 잦았고, 어머니의 외가인 평창이씨는 바로 류형원의 문화류씨와 혼인 관계가 많았다. 따라서 문화류씨는 최흥원 어머니의 진외가였으며, 류형원의 아들은 최흥원에게 조카뻘이 됐다. 이런 인연으로 백불암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던 류형원의 아들에게서 『반계수록』을 빌려볼 수 있었다. 이를 본 최흥원이 찬탄해 마지 않았고, 이를 필사해 뒀다. 당시 필사된 『반계수록』은 모두 13책이었고, 옻골마을의 숭모각에 보관돼 있었다.

백불암은 반계수록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가장 오랫동안 시행된 향약인 ‘부인동향약(夫仁洞鄕約)’을 만들어 실행하는 등 실천적 학문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그는 민생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가 56년 동안 쓴 일기에서 끊임없이 농사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점과 함께, 백성들이 부채 공출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평생 부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그의 실천적 학문 태도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이 같은 백불암의 학문적 태도와 행적을 알고 있는 조정의 중신들이 100년 전 반계수록이 집필된 시대적 상황을 당시에 맞게 반영하기 위해 대구에 있는 70대 중반의 백불암을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왕명을 받은 백불암은 처음에 경상감영을 찾아 반계수록을 교정했으나,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점을 감안해 집안의 재실인 보본당에 교정청을 설치해 교정을 봤다. 한편 백불암이 반계수록을 영영장판으로 판각하기에 앞서 필사한 교정본이 현존한다. 13책으로 필사된 교정본은 1900년대 중반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됐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돼 있다.

백불암의 9대 종손인 최진돈씨(78)는 “반계가 돌아가시고 100년 뒤에 경연 석상에서 영조가 반계수록을 접하게 되면서 ‘이 좋은 책이 왜 이때까지 출판되지 않았는가. 교정해서 출판하라’고 지시하면서 ‘대구에 있는 최흥원이 반계수록에 대한 이해가 당대에 가장 높으니까 최흥원의 교정을 거쳐 경상감영에서 책판을 만들어 펴내라’고 왕명을 내렸다”며 “이에 따라 처음에는 백불암이 경상감영에 가서 교정을 보다가 연세가 많으니까 옻골에 교정청을 설치하기로 하고, 문중 재실인 보본당 서쪽 방을 치우고 교정을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1770년 『반계수록』이 최초로 출판되기에 앞서 교정청이 설치된 대구 동구 옻골마을 보본당. 백불암 10대 종손 최기척씨 제공.

1770년 『반계수록』이 영영본으로 출간되기에 앞서 필사된 최초의 교정본.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 중이다. 백불암 10대 종손 최기척씨 제공.

1770년 『반계수록』이 영영본으로 출간되기에 앞서 필사된 최초의 교정본.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 중이다. 백불암 10대 종손 최기척씨 제공.

『반계수록』 목판 간행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김상진 기자 sjkim@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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