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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문화인)권도훈 작가를 만나다.

대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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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 출판기념회 장면(권도훈 작가)

대구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권도훈 작가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의 저서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 2천900일의 기록’이다.

지난 12일 오후 7시 ‘라일락뜨락1956’에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서는, 디자이너이자 화가인 권도훈 작가가 지난 2018년부터 이곳을 운영하며 대구 원도심의 폐가를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민족시인 이상화의 생가터임을 고증해 낸 8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소개되었다.

권 작가의 행보와 이번 출판이 지니는 의미는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으로 사라져가는 대구의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대구 근대사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점도 가치를 지닌다.

책에는 원도심 골목의 폐가를 매입해 수리하는 과정부터, 200년 된 라일락 나무를 매개로 지역사회와 소통해 온 여정이 담겨 있다. 아울러 우연히 발견한 이 빈집이 민족시인 이상화와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의 생가터임을 확인한 뒤, 공간을 재생하고 고증하며 보낸 지난 시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권도훈 작가를 직접 만나, 공간을 복원하며 겪은 그간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권도훈 작가(박성윤 기자)

◆그가 걸어온 길 – 시각디자이너에서 수채화 화가, 그리고 잊힌 역사의 파수꾼으로

권도훈 작가는 30여 년간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그중 10여 년은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대학 강단에 섰다. 오랜 생업의 궤적을 지나온 그는 서성로 골목 끝에서 오래된 폐가를 마주한 뒤 기존의 활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당에 비스듬히 누운 200년 된 라일락 나무와 길고양이들과 함께 복합문화공간 ‘라일락뜨락1956’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단순한 공간 운영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상정 장군이 대구 최초의 서양미술연구소 ‘벽동사’를 세웠던 터에서 수채화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역사적 인물들의 자취를 탐구하는 문화기획자로 나섰다.

또한, 이상화 시인의 청년 시절을 다룬 2025년 창작 오페라 ‘약속의 봄’ 대본을 직접 집필했으며, 라디오 방송 ‘대구야사’와 ‘문화예술 라일락뜨락’을 진행하며 시민들에게 잊힌 역사 이야기를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약 한 달간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의료진에게 1천 잔의 ‘희망 커피’를 직접 내려 전달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연대해 무관객 콘서트를 개최한 공로로 대구광역시장 표창을 받았다.

감염병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시민들과 함께 나눈 이러한 연대 의식은 그의 공저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에 기록되어 있다. 권 작가는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를 거쳐 현재 대구YMCA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카페 ‘라일락뜨락1956’내에 전시된 이상화 시인과 그의 형제들(박성윤 기자)

‘라일락뜨락1956’에 라일락 꽃이 만개한 모습(권도훈 작가)

◆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 – ‘라일락뜨락’ 2천900일의 경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폐가에서 피어난 문화 공동체의 뜰’을 다룬다.

이 뜨락은 점차 무명 예술가들의 무대이자 시민들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권도훈 작가는 문화예술 커뮤니티 ‘그리는 사람들’을 열어 대중에게 공간을 개방했고, 평생 학교에 가지 못해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여든의 윤화자 할머니를 초대해 그녀의 생애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아울러 권 작가는 “책을 매개로 마음을 잇는 문화 공동체 운동 ‘책연’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세대 간 연대를 이끌어냈다”며,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라일락뜨락1956은 제1회 미(美)터상 최우수상과 제23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2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대구야사(野史)를 소개한다.

권 작가가 약 3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대구야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했던 대구의 숨은 이야기들을 엮은 기록으로, 서성로와 북성로 일대에서 활동한 근대 인물들의 이면을 다룬다. 특히 100여 년 전 이 마당에서 나고 자란 네 형제, 이른바 ‘용봉인학(龍鳳麟鶴)’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권 작가는 “무장 독립운동가이자 서양화의 선구자인 맏형 이상정, 민족시인 이상화, 한국 체육의 기틀을 다지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창설한 이상백, 야생동물 연구의 선구자 이상오까지 4형제가 이룬 성취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당대 문인들의 우정과 시대적 현실도 함께 담겼다.

권 작가는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굴레 속에서 고독했던 고월 이장희, 주점 ‘아시아’를 경영했던 공초 오상순의 실패, 펜으로 일제에 항거한 빙허 현진건의 일화가 담겨 있다”며 “이 밖에도 가난 속에서 작업했던 아소 이인성, 28세로 요절한 천재 화가 김용조의 삶, 나아가 1919년 대구 3.8 만세운동의 최초 희생자인 김용해 의사의 저항과 1946년 10월 항쟁의 아픔까지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접한 독자들은 ‘대구의 빛과 그림자를 과장 없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3부는 ‘서문로에서 계산동까지, 낡은 서류가 증언하는 진실’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는 권 작가가 진행한 문헌 고증과 추적의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의 지적도, 토지대장, 호적부 등을 수없이 발급받아 교차 검증한 끝에, 서문로 2가 11번지와 12번지 일대가 4형제의 실제 생가터임을 문헌적 근거와 자필 이력서를 통해 입증해 낸다.

특히 이 장에서는 책 전체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뼈아픈 역사적 사실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룬다.

권 작가는 “1941년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와 가산 몰수 위협이 극에 달했을 때, 만주에서 무장 투쟁 중이던 이상정 장군을 대신해 남은 가족들이 가문의 터전을 지키고자 ‘월성기웅(月城基雄)’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위장하고 급히 명의를 돌려야 했던 상황을 토지대장 기록을 통해 가감 없이 공개했다”고 밝히며 객관적인 관찰자의 태도를 보였다.

이상화 시인의 삶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적도(권도훈 작가)

◆ 꽃이 진 자리에 ‘상화마을’을 꿈꾸며

권 작가는 이 마당이 아파트 숲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흩어지고 쪼개진 11번지와 12번지 일대의 생가터를 온전히 복원하여 역사문화특구 ‘상화마을’을 조성하고자 한다.

그가 제안하는 청사진은 구체적이다.

권 작가는 “이상화 시인의 저항 정신을 기리는 ‘상화문학관’과 대구 3.8 만세운동을 모의했던 사랑채 ‘담교장’을 재건하고, 맏형 이상정 장군이 대구 최초로 서양미술의 싹을 틔웠던 ‘벽동사’를 복원해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제공하자는 것”이라며, “나아가 수많은 지식인을 배출했던 ‘우현서루’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민과 청년을 위한 열린 도서관을 건립하고, 200년을 묵묵히 버텨온 라일락 고목을 마을 광장의 생태적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는 잊힌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고증하고 그 공간을 지켜내고자 한 문화기획자의 실천적 기록이다.

200년을 버텨온 라일락 고목처럼, 권 작가는 언젠가 다가올 ‘약속의 봄’을 기다리며 미래 세대와 대구라는 도시에 당부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박성윤 기자 pkj@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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