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을 접한 뒤 애통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까지 더불어민주당 출신 4명의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이해찬’이다. 그는 민주당의 ‘전략가’로서 고비 때마다 정무적 판단과 전략을 제시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님께서 어제(25일) 오후 향년 7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며 “고인의 탁월한 정책 기획 능력과 강한 리더십은 민주당 정부의 성공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라고 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전 국무총리님의 명복을 빈다”라며 “이 총리님은 용맹한 민주투사셨고, 경륜과 혜안의 정치인이셨다”라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서 베트남 호찌민시에 출장을 갔다가 지난 23일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25일 오후 숨을 거뒀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 민주당 전신인 평화민주당에 입당한 뒤 40여년 동안 민주당 출신 대통령 4명과 인간적, 정치적 관계를 통해 정권 창출과 운영에 크게 기여했다.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시절부터 이 전 총리의 전략적 안목은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의힘 소속인 박형준 부산시장은 2018년 JTBC 썰전에 출연해 “1987년 6월항쟁 당시 여러 혁명적 구호를 외쳐야 한다는 내부 주장이 있었지만 대중들에게 쉽고 직접적으로 각인될 수 있는 ‘직선제 개헌’으로 정리하는 데 이 전 총리의 기여가 컸다”고 짚었다.
이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빛났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역사상 첫 민선 시장을 탄생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이 전 총리를 기획본부장으로 발탁해 선거 판세를 분석하는 실무를 맡겼고 이 전 총리는 투표율과 인구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해 보고했다. 이 전 총리의 능력을 높게 산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 전 총리는 40대 교육부 장관으로서 강도 높은 입시 개혁을 주도해 ‘이해찬 세대’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이 전 총리는 1988년 국회 노동위원회와 1989년 5공화국 비리 연석청문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를 구축해 대통령 당선은 물론 국무총리로서 국정운영을 함께 이끌었다. 두 사람의 두터운 신뢰관계로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리를 ‘실세 총리’라고 평가했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이 전 총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 과정에서도 ‘킹메이커’로서 활약했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문 전 대통령에게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설득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대표가 된 고인은 스스로 “문 대통령을 설득해 대선에 나서게 했으니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자랑하는 ‘시스템 공천’도 이 전 총리가 당대표 시절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이 전 총리는 ‘투명하고 객관적 시스템 공천’을 통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겠노라 장담했고 실제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얻으며 민주당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이뤄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이 전 총리는 정치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2018년 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혜경 여사와 관련해 이른바 ‘혜경궁 김씨’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 내부에서 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었지만 이 전 총리는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감쌌다.
이 전 총리의 싱크탱크 조직인 ‘광장’이 2021년 ‘민주평화광장’으로 개편한 뒤 이 대통령 지원 조직이 되자 정치권에서는 “이해찬이 정식으로 이재명을 인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이 대통령이 당의 주류로 가는 길에 큰 보탬이 됐다.
그의 전략가적 면모는 다른 지도자를 돕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자신이 출마한 7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선거의 귀재’로 평가된다. 스스로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농담을 섞어 “선거에 왜 지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한 원로가 아니라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같은 역할을 해왔던 만큼 여권에서는 앞으로 이 전 총리의 역할을 이어받을 인물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고인을 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에 이르는 모든 민주 대통령들이 이해찬을 믿고 맡겼고, 이해찬을 어려워했고 존중하며 경청했다”며 “네 분의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세력 전체의 흔들리지 않는 상징이고 자존심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총리는 이어 “의지할 수 있어 좋았고, 여쭤볼 수 있어 좋았고, 혼날 수 있어 좋았고, 무뚝뚝한 따스함이 좋았는데 이제 안 계시면 어찌 합니까?”라며 애도를 표했다.
김대철 기자 / dc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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