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인증해도 납득 어려워…
제조사는 침묵, 국회는 외면
국민청원 5만 명 지지에도
2022년 강릉에서 발생한 SUV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를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이 갑자기 앞차를 들이받은 뒤 도로를 벗어나 배수로에 빠지면서야 멈췄고, 운전자인 할머니가 크게 다쳤으며 동승자였던 12살 이도현 군이 숨졌다. 사고 직후부터 유가족은 차량 급발진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높게 봐 유가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가족은 사고 원인을 입증하기 위해 블랙박스 음향 분석과 국내 최초 현장 재현 시험까지 진행하며 차량 결함을 입증하려 했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은 소비자가 결함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높다”며 유가족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급발진 논란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국내 자동차 안전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도현 군의 아버지는 “제조사는 침묵으로 진실을 숨기고 국가는 외면으로 방조하며 법은 기업 편에 서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국민을 지키는 법이 왜 존재하지 않는가”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다. ‘도현이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됐고 국민청원에서 5만 명 이상 지지를 얻었으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진척을 보지 못한 채 계류 상태에 머물러 있다.
3년 싸움에도 돌아온 것은 패소

추가 취재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6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개정안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소비자 입증 책임 완화는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의무화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일부 차량에만 장착된 EDR은 사고 직전과 직후의 속도, 엔진 회전수, 페달 작동 여부 등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무화되지 않아 경찰이나 법원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이미 EDR 분석을 통해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존재한다. 2007년 도요타 차량 급발진 사고에서 미국 법원은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300만 달러 배상을 명령한 바 있다.
억울함 증명하려 같은 차를 산 아버지

강릉 사고 이후 유가족은 같은 기종의 차량을 다시 구입해 매일 운행하며 결함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도현 군의 아버지는 “동일 옵션, 동일 연식 차량에 페달 블랙박스가 장착된 상태에서 급발진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은 기일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유가족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교통사고를 넘어 자동차 안전 문제와 법적 책임 구조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급발진 사고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명확한 원인 규명과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제조물 책임법의 구조적 한계는 소비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조사가 결함 여부를 입증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진실은 여전히 미궁, 흐르는 시간

강릉 사고는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됐다. 유가족은 여전히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법원과 국회는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자동차 안전 문제와 법적 책임 구조를 다시금 환기시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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