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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건다는 것 [원선웅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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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기차를 타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문을 열고 앉았는데 이미 차의 ‘전원’이 켜져 있고, 그냥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출발이다. 내린 다음 문을 잠그면 알아서 꺼진다. 합리적이고 깔끔하다. 근데 뭔가 허전하다. 처음엔 그냥 낯설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계속 타다 보니 허전함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차를 켠 게 아니라, 차가 그냥 켜져 있었던 거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꽤 다르다.

이제는 먼 과거의 얘기를 잠깐 하자면, 수동 변속기 차에서 시동을 거는 건 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기어 중립 확인하고, 클러치 밟고, 키를 돌려서 계기판에 불 들어오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돌리면 엔진이 깨어난다. 익숙해지면 몸이 알아서 하는 동작들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제 나 운전한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잡혔다. 일종의 준비 동작 같은 거였다.

요즘 내연기관차도 대부분 스타트 버튼으로 바뀌었고, 전기차는 그 버튼마저 없애는 추세다. 편리함을 위한 변화라는 건 알겠다. 전기차는 엔진 소리가 없으니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헷갈릴 수 있고, 그래서 차가 알아서 꺼주는 게 안전하다는 논리도 이해한다.

문제는 그 ‘알아서’가 생각보다 자주 틀린다는 거다.

실제로 꽤 당황스런 상황이 종종 생긴다. 좁은 공간에서 천천히 움직이다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하는 순간, 차가 멈추고 파킹 모드로 전환돼 버린다. 아니면 트렁크에서 뭔가 꺼내려고 잠깐 내렸다가 다시 탔더니, 인포테인먼트가 처음부터 부팅을 시작하고 있다. 폰 연결되고 프로필 뜨고 화면 다 뜨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멀뚱히 앉아 있어야 한다.

기계가 내 행동을 보고 ‘이 사람 운전 끝냈구나’라고 판단한 건데, 나는 아직 안 끝난 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슬슬 짜증이 쌓인다. 불편함보다는, 내가 차를 쓰는 건지 차가 나를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게 더 순간 불쾌해진다.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코르크 마개 대 스크루 캡 논쟁이 가끔 나온다. 스크루 캡이 와인 보존에 더 유리하다는 연구도 있고, 실용적으로는 틀림없이 편하다. 그런데 코르크 마개를 따는 걸 고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코르크스크루 꽂고 조심스럽게 돌려서 마지막에 퍽 하고 빠지는 그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기 전의 작은 의식 같은 거랄까.

시동도 비슷한 것 같다. 키를 꽂고 돌리는 행동이 기능적으로는 버튼 하나 누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 행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운전 모드로 전환됐다. 사소하지만 없어지고 나서야 아쉬운 것들이 있다.

물론 이런 감각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그냥 구식 취향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차가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게 당연한 환경이었다면 딱히 아쉬울 것도 없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다. 차가 내 의도를 대신 판단하려 할 때, 틀리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다. 편의를 위해 운전자에게서 가져온 통제권인데, 그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편의도 없고 통제권도 없는 상황이 된다. 그게 지금 꽤 많은 전기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시동 버튼 하나쯤이야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운전이라는 경험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뭔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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