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복용 후 운전하면 음주운전과 동일 처벌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벌금
운전에 지장 있는 약물 ‘운전하면 안됨’ 문구 삽입
감기 기운이 느껴질 때 무심코 집어 드는 감기약 한 알. 잠이 오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한 알인데 괜찮겠지”라며 무심코 운전대를 잡아본 경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이 행동이, 내년 4월부터는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선택이 된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라 감기약이나 수면제 및 처방 약을 먹은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될 경우, 음주 운전과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된다. 1회 위반 시에도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며, 상습적인 경우에는 형량이 더 무거워진다. 이제 “마약도 아닌데…”는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술과 마약만 문제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이나 수면 유도제 등을 복용한 뒤 운전하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는 개정 도로교통법을 통해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기존에도 약물 운전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했다. 다만 그동안은 사회적 경각심이 높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이번 법 개정은 약물 운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흐름을 반영해, 처벌 수위를 강화하여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추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약물 운전이 적발될 경우 1회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상습 법규 위반자는 2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규제가 수면제나 강한 정신과 약, 이른바 ‘센 약’에만 해당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복용하는 감기약이나 알레르기 비염약에도 1세대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 클로르페니라민 성분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디펜히드라민은 본래 알레르기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강한 졸음을 유발하는 특성 때문에 종합 감기약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에 따르면, 디펜히드라민을 복용한 상태에서의 운전은 혈중알코올농도 0.1% 수준의 음주 운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이 밖에도 불안장애나 우울증 치료제, 근육 이완제, 일부 진통제 등 다양한 처방 약이 판단력과 반응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한편, 경찰청은 대한병원협회에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졸음을 유발하는 약을 처방하거나 조제 시 처방전과 약 봉투에 ‘운전하면 안 됨’이라는 적색 문구를 삽입하도록 협조 요청을 하였다.
잇따라 발생하는 약물 운전 사례
약물 운전의 위험성은 어제오늘 갑자기 등장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2023년 실제 사고 사례를 통해 그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3년 3월 제주 서귀포시에서는 20대 여성 A 씨가 난폭운전으로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아버지 명의의 K7 승용차를 몰고 덤프트럭과 버스, 경찰차 등 차량 6대를 연달아 들이받았다. 현장에서 A 씨는 “전시 상황이라 다른 차량을 대피시키려 했다”, “경찰이 훼방을 놓았다”라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사 결과, A 씨는 마약류로 분류되는 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 즉 다이어트약을 과다 복용해 환각과 판단력 저하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약물 운전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필로폰이나 코카인 같은 불법 마약류만 운전 능력을 떨어뜨릴 만큼의 작용을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병원에서 처방받거나 약국에서 쉽게 구매하는 약물 역시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해 10월, 코미디언 이경규가 약물 운전 혐의로 적발된 사건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경규는 자신의 차량과 같은 차종의 차량을 실수로 몰고 나와 절도 의심으로 경찰에 적발됐고, 조사 과정에서 공황장애로 10년 넘게 복용해 온 처방 약을 먹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그는 약물 운전 혐의로 2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안전과 현실 사이, 타협점 있나
약물 운전은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사람이 처방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채 운전하는 것 역시 도로 위에서는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약물 운전을 둘러싼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사고 가능성이 있다면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아픈 사람이 약을 먹지 않고 운전하는 상황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면 운전을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은 지역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쉽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약이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명확히 알려진 이상 약을 복용한 뒤 운전대를 잡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정이 있었든, 법치국가에서 법이 정해졌다면 그 기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몸이 불편해 약을 복용했다면 잠시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운전대를 내려놓고 대중교통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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