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시대, 도로 색이 주목받는 이유
흰색 도로가 만든 온도 변화와 관리 효과
인프라를 활용한 환경 대응의 시작
도시의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 안의 인프라는 환경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도로 역시 마찬가지다. 검은색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는 오랫동안 당연한 도시 풍경으로 여겨져 왔지만, 폭염과 기후 변화가 일상이 된 지금은 그 색깔 자체가 환경 문제와 직결된 요소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기존 도로를 새로 만드는 방식이 아닌, 색과 소재를 바꾸는 접근을 선택했다. 검은 도로를 흰색으로 바꾸는 이 실험은 시각적 변화를 위한 시도가 아니라,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도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익숙한 풍경을 바꾸는 선택이 어떤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로 색이 만든 온도 변화

LA에서 추진 중인 ‘쿨 페이브먼트 파일럿 프로젝트(Cool Pavement Pilot Project)’는 도로 표면에 흰색 코팅을 적용해 태양열 흡수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쿨실(CoolSeal)’은 본래 군사 기지에서 항공기 주변의 열 축적을 낮추기 위해 개발된 소재로, 높은 반사율을 통해 표면 온도를 낮추는 특성을 지닌다. 이를 도시 도로에 적용해 기온 상승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일반적인 검은색 아스팔트가 태양열의 약 95%를 흡수하는 것과 달리, 흰색 코팅이 적용된 도로는 약 60% 수준으로 흡수율이 낮아진다. 이에 따라 한여름 기준으로 화씨 130도(약 54℃)에 이르던 도로 표면 온도가 눈에 띄게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LA 시내 14개 구간을 대상으로 한 관측에서는 주변 기온이 약 5.5℃ 정도 낮아진 사례도 보고됐다.
유지·보수 부담을 낮춘 변화

이 변화는 도로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고온에 노출된 아스팔트는 균열과 변형이 빠르게 진행돼 보수 주기가 짧아지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도로 온도가 낮아질 경우 노면 손상이 줄어들고, 이에 따른 유지·보수 비용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폭염이 잦은 지역일수록 이러한 효과는 장기적인 예산 관리와 직결된다.
보행 환경과 도시 생활의 질 역시 영향을 받는다. 여름철 달궈진 도로는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와 반려동물, 야생동물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흰색 코팅 도로는 노면 온도를 낮춰 체감 열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며, 도시 공간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도로 색 변화가 생활 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도로가 환경 대응 수단이 되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약 20개 블록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실험에서 출발했으며, 이후 효과가 확인되면서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LA 전역으로 확산되는 단계에 들어섰고, 시 당국은 외관 변화보다 온도 저감 효과와 관리 효율성을 주요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도로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LA의 흰색 도로 실험은 개별 도시의 특이한 시도로 보기보다는, 도시 인프라를 바라보는 관점 변화의 한 사례로 해석된다. 기후와 도로 환경이 다른 지역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의 실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 일부 지역에서는 야간 안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야광 도로 페인트가 도입되고 있으며, 이는 환경 조건에 맞춰 도로 기능을 조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흐름은 도로를 통해 도시 환경에 직접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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