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방랑, 파도』는 치밀한 설계보다는 감정의 파동과 이미지들이 쌓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빈틈없는 서사가 아니라 그 안을 흐르는 인간의 ‘삶의 태도’ 그 자체다.
Q. 『어린 심장 훈련』(문학과지성사, 2024), 『키오스크 학교』(민음사, 2025) 이후 이번 작품을 집필하면서 작가님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고 답하고 싶지만, 작은 변화에 대해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학에 대한 사랑이 초라해졌다가 다시 충만해졌습니다. 이것이 저의 달라진(혹은 처음으로 돌아간) 점입니다.
집필 기간만 두고 보면 전작 『키오스크 학교』와 이번 책 『방랑, 파도』는 비슷한 시기에 쓰였는데요. 사실 첫 책 『어린 심장 훈련』을 낸 후 한동안 읽는 일도 쓰는 일도 버겁게 느껴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쓰고 싶은 것은 이상하게 계속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키오스크 학교』와 『방랑, 파도』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여러 계절을 지나 두 책을 완성하는 동안 서서히 그러나 더욱 분명하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나는 이 일을 가장 사랑한다, 누가 뭐라 하든 이건 내게 아주아주 긴급하고, 조심스럽고, 소중한 세계다’라고요.
여담이지만, 제가 보더라도 두 책의 성격이 많이 달라 보이는데요. 계획했던 건 아닙니다. 제 안에는 깊이 지친 마음과 명랑한 마음과 펄쩍펄쩍 뛰고 싶은 마음과 저 자신에게 낯선 방식으로 말해보고 싶다는 열망 같은 마음이 다 있는데요. 매 이야기를 쓸 때마다 바치는 마음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각기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아주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분명 어떤 면에서는 맞닿아 있다는 것을 언젠가 누군가가 발견해 주신다면 기쁠 것도 같습니다.
지금 제가 두 책에 대해 자신만만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이것저것 시도하는 동안 제 마음에는 그만큼의 아쉬움과 부끄러움도 분명 쌓여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어느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은 배울 것과 읽을 것, 새로 사랑할 것이 아직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저의 부족함을 동력으로 삼아, 쌓여 있는 마음까지 귀한 자원 삼아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살다가 언젠가는, 모든 마음이 작품 속에서 더 근사한 방식으로 얽히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소설가 이서아의 신작 [사진제공=자음과모음] ⓒ자음과모음](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3/CP-2022-0036/image-fd9b682d-45d8-4925-9024-6940fa640ed8.jpeg)
Q. 『방랑, 파도』는 세 개의 단편이 서로 다른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읽다 보면 하나의 큰 물결과도 같이 이어지는 감각이 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어떤 장면이나 이미지에서 출발했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 장면이 동시에 소설을 출발시켰습니다. 하나는 서핑이고, 다른 하나는 침대 밑의 작은 사물을 줍는 이미지입니다. 후자는 아무래도 침대 밑에 작은 물건이 굴러 들어간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목격한 이미지이자 겪어본 경험이 아닐까 하는데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바닥에 대고 그 옆을 바라보는 일이 마치 절하는 것처럼 연상돼 그 연상을 천천히 따라가며 썼습니다. 물론 실제로 절을 하는 신자가 어딘가로 고개를 돌리면 딴짓하는 중일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동시에 침대 밑의 풍경, 즉 침대 밑의 길쭉하고 어둑한 틈도 함께 연상되기에, 소설에 썼지요. 몇 번 시도해 본 적 있던 서핑 역시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물 흐르듯이 쓰게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쉽게 쓴 것처럼 느껴지지만 『방랑, 파도』에 제가 바친 마음은 지친 마음에 가깝습니다. 쓰면서 전혀 쉽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좀 힘들었어요. 말하자면 한 명의 지친 사람으로서 저는 저에게 찾아온 이미지들을 순순히 따라다녔다고나 할까요.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나 깊이 지치고 슬픈 마음이 있고, 그 마음에 충실함으로써 그 마음을 작품에 바치는 제의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빗금의 논리」를 쓰고, 「향자」를 썼는데요. 「향자」를 쓸 무렵에는 찾아온 것을 따라다니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아예 통으로 갈아엎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크게 마음고생도 했는데 그것이 기묘한 활력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향자’에 대해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를 적고 싶었거든요. 물론 “좋은 이야기”라는 건 텅 빈말에 불과하지만, ‘향자’를 사랑하고 또한 추모하는 저만의 방법은 가능한 가장 “좋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Q. 『방랑, 파도』에서는 요양원, 바다 같은 공간 또한 인상적으로 등장합니다. 작품의 배경을 구상할 때 특별히 떠올린 풍경이 있었나요.
말씀하신대로 요양원과 바다를 가장 중요하게 떠올렸어요. 아무래도 요양원에 대해 떠올릴 때는, 이번 책에 실린 에세이를 보면 아시게 되겠지만, 제가 잠깐 방문했던 그 요양원의 풍경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그 요양원은 간호직 공무원인 어머니가 근무하던 보건소와 연계된 곳이었고, 제가 요양원에 방문해 아주 잠깐 일손을 도와드리기도 한 곳입니다.
바다는 어떤 특정한 지역의 바다를 떠올리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지역의 바다는 결국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한 물결이 돼 흐르지 않나요? 마치 모두 같은 바다였던 것처럼 말이에요. 사실 바다라는 건 원래 이 세상에 하나인데,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나누어 살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바다를 떠올릴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관념이야말로 바다의 본질과 가장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쉽고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말을 정성 들여 풀어내는 방식의 유희가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다면, 이 세상에는 서류만이 남겠지요. 그 외에 공터에 대해서도 많이 떠올렸는데, 읽는 분들께서 자유로이 상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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